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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 - 아이들

재난의 한복판에서 사랑을 꿈꾸는 일

by 유민 에디터
2026.05.31 14:25

 

 

연극 <아이들>은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찾아온 기후 재난을 배경으로 하여 전개되는 작품이다. 로즈, 헤이즐, 로빈이라는 세 명의 인물만을 무대 위에 등장시켜 그들의 대화만으로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병치하거나 뒤섞는다. 관객은 그들의 대화에 의존하여 직접 겪지 못했던 국가적 재난 사태는 물론, 그들의 내밀한 역사까지도 상상하게 된다. 그러나 일견 단순하고 진부한 듯한 위 조건들은 묘하게 흘러가는 세 사람의 관계 속에서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관객이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재난 드라마와 러브 스토리의 극적 결합만으로는 연극을 충분히 설명하기 어렵다. 둘 모두 연극의 성격과 온전히 부합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아이들>은 의심의 여지 없는 재난 드라마인가? 그러나 관객은 인물들의 대사 속에서 극도로 제한적인 상황 설명만을 들었을 뿐이다. 그들을 정신병원에서 차례로 탈출한 환자들이라고 생각해도 크게 이상할 것이 없다. 그만큼 그들은 서로 닮아있다. 거주 지역, 직업, 인간 관계, 사랑 등의 키워드로 그려지는 그들의 삶의 역사는 관객 입장에서 크게 다를 것이 없다. 일반적인 재난 드라마라면 재난 사태의 발단을 보여주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하겠지만 <아이들>은 재난의 현재 진행형이다. 관객은 온전히 재난 상황에 몰입하기보다 오히려 한 걸음 물러나 상황을 관조한다. 마치 현재 재난 속을 살아가고 있는 현대인들처럼.

 

한편 <아이들>은 러브 스토리의 논법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는 연극인가? 그런데 이 연극이 전개되어 나가는 흐름을 가만히 보고 있으면 '사랑'이라는 개념을 각자가 다르게 이해하고 있는 듯하다. 로즈와 로빈의 불륜, 둘의 관계를 알면서도 임신을 선택한 헤이즐, 서른두 살 먹은 딸 로렌을 향한 부모의 마음, 우유 짜는 소녀 피오나를 향한 성적 욕망과 수치심, 아버지 더글라스를 지키고 싶은 딸의 간절함까지 극 중 사랑은 비슷하면서도 서로 다른 양태로 드러난다. 특히 로즈가 헤이즐과 로빈에게 함께 원자력 발전소로 돌아가자고 말하는 것은 연극 전체를 관류하는 메시지로서의 사랑이다. 그 사랑이 가장 숭고하고 특별하다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아마 로즈 역시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이들을 향한 기성세대의 부채의식을 숭고한 사랑으로 읽어내는 것이 작품의 목적이 아니기에.

 

 

260521 극단 돌파구 아이들 리허설 ⓒ김보연 (006).jpg

극단 돌파구 제공 ©김신중, 김보연

 

 

다만 무대에 등장하지도 않는 '아이들'을 향한 책임이, 그 책임을 몸소 짊어지고자 하는 선택이 곧 사랑으로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쌀을 씻다가

창밖을 봤다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었다

 

그 사람이 들어갔다 나오지 않았다

옛날 일이다

 

저녁에는 저녁을 먹어야지

 

아침에는

아침을 먹고

 

밤에는 눈을 감았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 황인찬, <무화과 숲> 전문

 

 

시 <무화과 숲>은 사건을 설명하지 않는다. 누가 왜 숲으로 갔는지, 왜 돌아오지 않는지, 죽은 것인지, 화자가 그 사람을 사랑한 것인지, 그 사람도 화자를 사랑한 것인지. 시가 독자에게 제시하고 있는 상황은 그것이 '옛날 일'이기에, 화자의 기억으로만 구성된다. 마치 <아이들>이 오직 세 명의 대화와 기억으로만 구성되는 것처럼.

 

따라서 시가 진정으로 보여주고자 하는 대상은 숲으로 사라진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이다. 한 사람이 숲으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 실종 사건은 그를 기억하는 개인에게 더없는 재난이다. 그러한 재난 속에서는 사랑의 방향성을 표상하는 조각들이 유기적으로 배열될 수 없다. 독자 역시 그러한 부분을 의심하게 된다. 숲으로 사라진 사람과 그 사람을 기억하는 사람 중 60대 노인 세 명은 어느 쪽에 해당되는가? 그들이 원자력 발전소로 들어가 나오지 않는다면, 아이들은 과연 그들을 기억할 것인가? 자신들의 손으로 재난을 초래하고 그것을 책임지는 세대의 모습은 어떻게 기억되어야 하는가?

 

로즈와 헤이즐, 로빈의 삼각 관계를 통해 지속적으로 반복되는 치정과 애증, 성적 농담과 욕망은 실종 사건 이후에도 쌀을 씻는 일처럼 범속한 일이다. 마치 그들이 해안가 외딴집에서 전기와 물을 아껴 쓰고, 농사를 짓고, 술을 마시고, 요가에 심취하는 것처럼. 원자력 발전소라는 커다란 비극조차 그들의 삶을 중단시키지 못했기에 그들은 쌀을 씻으며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260521 극단 돌파구 아이들 리허설 ⓒ김보연 (089).jpg

극단 돌파구 제공 ©김신중, 김보연

 

 

숲으로 이어지는 길이 분명 존재하는데 왜 그 사람은 돌아오지 못할까. 눈에 보이는 길이 전부가 아니기 때문이다. 숲은 여러 길이 어지럽게 교차하며 길의 시작과 끝이 분명치 않는 장소다. 눈에 보이는 길만이 현재 존재하는 유일한 길이라 믿는 사람들은 타인을 쉽게 비난할 것이다. 왜 그 사람이 숲으로 들어가는 것을 막지 못했느냐고, 왜 그 사람과 동행하지 않았느냐고, 혹은 왜 그 숲으로 혼자 들어갔던 것이냐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저녁에는 저녁을 먹고 아침에는 아침을 먹는다. 무대 위 세 명의 노인도 식사를 하고 원자력 발전소에서 일하는 아이들도 식사를 한다. 연극을 관람하고 나온 관객들도 평소처럼 식사를 한다.

 

혼난다는 표현은 아이들의 언어이지만, 어른들 역시 언제라도 그 대상이 될 수 있다. <아이들> 속에서 어른들이 나누는 부도덕하고 외설적인 대화는 그것이 비록 부질없는 꿈이라 하더라도, 그처럼 끔찍한 재난 상황 속에서 60대 노인들이 아이들처럼 행동하는 것은 혼날 필요가 있을지도 모른다. 이때 연극의 후반부에서 세 명의 노인들이 서로에게서 발견한 감정은 이미 그 너머에 도달해있다. 로즈가 헤이즐과 로빈의 무책임을 단순히 비난하고자 그들을 찾아간 것이었다면, 길은 거기서 끝이다. 그러나 로즈는 훈계가 아니라 사랑을 보여준다.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 숲으로 들어가자고 말한다. 그들이 사실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로렌과 더글라스의 딸 그리고 헤이즐과 로빈의 손주까지 모두 사랑하고 있음을 보여주기 위해.

 

실내의 조명이 어두워진다. 로즈와 헤이즐, 로빈도 밤에는 눈을 감는다. 그들이 보여주는 몸짓은 일종의 꿈결 같다. 원자력 발전소로 돌아가기 위한 준비 과정이라기에는 다소 몽환적이다. 그러나 괜찮다. 사랑해도 혼나지 않는 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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