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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나만 서점 없지 [공간]

서점 주인이 장래희망이었다.

by 오은지 에디터
2026.05.28 14: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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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 세상 서점 주인을 질투한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까운 시일 내에는 내가 서점을 운영할 수 있을 리 없고, 언제가 될지 모르는 나에게 그 꿈을 넘겨버리자니 오늘의 나에게도 서점이 있었으면 좋겠다. 왜일까. 서점 주인이야말로 나의 기질과 자아와 생계가 가장 자연스럽게 어울리는 직업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일까.


자고로 서점 주인이란 봄이면 봄에 자살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사실을 떠올리며 우울해하고, 여름이면 여름이 사실은 폭력적인 계절이라는 비밀을 나눌 사람이 없어서 외로워하고, 가을이면 이 찰나의 여유와 너그러움을 온전히 즐기고 싶어서 안달을 내는, 겨울에는 붕어빵 아저씨의 투박한 손가락이 꽁꽁 얼어붙은 광경에 괜히 밥맛을 잃는 기질적 세심함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여기에 활자를 읽지 않으면 숨이 차고 호흡이 가빠져서 어쩔 수 없이 눈앞에 자음과 모음을 들이대야 하고, 글을 쓰면서는 '글이 이렇게 구려서는 정말 미칠 노릇'이라는 심정으로 자판을 두드려대다가도, 언젠가는 내가 쓴 글에 내가 혼자 울고 웃는 '북 치고 장구 치는' 자아도 필수적일 것이다.

 

그게 바로 나다. 정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기질적 세심함을 가지고 혼자 숨을 헐떡거리다가, 울고 웃으면서 타자를 치는 푸닥거리를 하면서! 심지어는 책을 팔아서 먹고 살 수도 있다니! 안 부럽고 배기겠냐는 것이다.


물론 단군 이래로 서점은 늘 불황이라는 건 알고 있다. 그러나 부자가 될 생각이었다면 애초에 서점 주인이 아니라 강남 건물주를 부러워했을 것이다. (물론 강남에 있는 건물에서 서점을 운영하는 사람이라면 말이 또 달라진다.)


그러니 내가 질투하는 것은 그들의 존재와 행위, 말재간과 글재주, 세상과 관계를 맺는 방식 그 자체다.


아래는 내가 질투에 벌개진 눈으로 들여다보는 서점들이다.

 

너무 질투나니까, 돈벼락이나 맞으셨으면 좋겠다.

 

 

 

1. 밤의 서점 (서대문구 대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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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의 서점이라는 서점이 있다. 옛날에는 연희동에 있었고, 지금은 신촌 근처에 있는 작은 서점. 이 가게 이름이 너무 좋아서 한 번 들으면 잘 잊히지 않았다. 낮의 서점보다 밤의 서점이 왠지 심적으로 안정감을 주니까. 낮에는 아무래도 너무 바쁘고, 치열하고, 명징하고, 소란스러우니까. 밤에는 고요하고 잔잔하다. 이완될 수 있다. 밤의 서점은 그런 곳이다.


밤의 서점은 격주로 뉴스레터를 보내준다. 사장님이 지금 읽고 있는 책에 대한 생동감 있는 소개, 아주 훌륭한 책을 만났을 때의 생생한 기쁨, 서점 운영의 현실적인 고됨, 그리고 사장님이 직접 쓰신 짧은 소설이나 에세이. 나는 오래전부터 이 뉴스레터를 구독하고 있었다. 글에서 묻어나는 깊이 있는 통찰과 고뇌를 읽을 때마다, 서점 주인이 되고 싶다는 마음은 자꾸만 커졌다. 서점 주인이란, 이렇게 멋진 사람이구나.


그런데 어느 날 우연히 메일함에서 뉴스레터가 발송된 시간들을 보다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수십 통의 메일 도착 시간이 정확히 '21:00'로 찍혀 있었는데, 딱 하루, '20:59'에 도착한 메일이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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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가 아니라 8시 59분에 도착한 메일.


만약 예약 발송 시스템을 썼다면 결코 일어날 수 없는 1분의 오차였다. 머릿속으로 마감 직전 다급하게 발송 버튼을 누르는 사장님의 모습이 선명하게 그려졌다. 마감 시간이 가까워지면서 허둥지둥 타자를 치는 분주함, 창작의 고통과 뿌듯함 사이에서 머리칼을 쥐어뜯는 고뇌가 그 '20:59'라는 숫자 하나에 통째로 담겨 있는 것 같아서 내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감동으로 넘실거렸다.


만약 나였다면 내키는 대로 아무 시간에나 보냈을 것이다. 어차피 돈을 받는 유료 창작물도 아니고, 구독자라고 해도 발송 시간에 불만을 제기할 수는 없으니까. 아니면 더 쉽고 자동화된 방식을 택했을지도 모른다. AI에게 시키면 딸깍 한 번에 그럴듯한 문장이 쏟아지는 세상이다. 뉴스레터를 쓰는 일이 당장 서점의 유의미한 매출로 이어지는 것도 아닌데, 시스템으로 굴러가게 만드는 것이 효율의 관점에서는 정답이니까.


하지만 그런 세상에서, 월요일 21:00라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기어이 자기 손으로, 자기 머리로, 자기 생생한 시간을 갈아 넣어 기도를 하듯 글을 쓰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것. 그 지독한 수고로움이 나를 울컥하게 만든다.

 

 

 

2. 서점극장 라블레 (마포구 염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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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외를 얻어 먹었다. 참외를 얻어먹은 이유로 소개글을 쓰고 있는 것은 절대 아니다. 내가 아무리 한 달에 참외를 10kg씩 먹는 참외귀신이라고 해도 말이다.


심지어 내게 참외를 건넨 사람은 사장님도 아닌, 그 서점에 오신 다른 손님이었다. 물론 초면이었고, 초면에 좀처럼 듣기 힘든 말인데 그분의 입에서 "참외가 너무 많아서 그런데, 참외 좀 드실래요?"라는 말이 흘러나왔다. 나는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싶어 잠시 주변을 둘러봤지만, 그 고요한 서점 안에는 나밖에 없었다.


제법 낯을 가리는 나에게는 낭패였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에게 참외를 권할 만큼 좋은 사람과 스몰토크를 이어갈 수 있는 사람이 못 되었다. 결국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참외 감사합니다… 여기 자주 오세요? 같은 하나도 재미없는, 구태의연한 답으로 그분의 참외를 욕되게 하고 말았다.


그런데 참외를 주신 손님은 아무렇지도 않게, "어휴 감사해요. 집에서 하도 참외를 많이 갖다주셔서 처치곤란이었는데, 그런데 참외 좀 더 드실래요?" 라면서 처치곤란의 참외를 처리할 사람을 제대로 만났다는 느낌으로 내게 다시 한번 참외를 권하셨다. 나는 내가 참외에 환장하는 사람임을 들키지 않기 위해서, 신중하고 엄숙한 태도로 느릿느릿하게 참외 딱 한 개에 포크를 꽂았다. 이어서 참외 주인님은 나에게 "저는 여기 자주 와요. 재미있는 일들을 많이 하세요"라면서, 내가 서점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임을 눈치라도 채신 듯 서점에 대한 힌트를 주셨다.


나는 아직도 많이 남은 참외에 눈길을 주면서, 꾸벅 감사 인사를 드렸다. 나의 스몰토크 실력이 조금 더 현란했다면 참외를 몇 개 더 주워먹을 수 있었을 것이다. 아쉽다.


참외를 우물거리며 서점을 찬찬히 둘러보았다. 서점에는 얼마 전 열렸다던 독후감 대회에 참여한 사람들의 독후감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야자를 하면서 쓰고 있기 때문에 이 글이 언제 끊어지더라도 너무 놀라지 말라'는 고등학생의 일필휘지부터 여러 손님들의 개성이 돋보이는 글들이 나를 꾀어내는 것 같았다. 다음 독후감 대회에는 나도 참여를 해볼까 하게 만드는 기분 좋은 꾀어냄은 당연히 내 지갑을 열게 했다.


두 권을 샀다. 한 권은 친구의 앞날을 응원하기 위해서, 또 한 권은 참외를 나눠먹는 서점을 가진 사장님이 부러운 나를 위해서.


사장님은 팔과 다리처럼 보이는 문양이 규칙적으로 그려져 있는 주황색, 파랑색의 아주 감각적인 포장지로 내가 산 두 권의 책에 북커버를 만들어주셨다. 그리고 주황색 책갈피와 막대과자를 선물로 주셨다. 그러고 보니 여기서 얻어먹은 것은 온통 달달한 것이었다.


집에 와서는 서점에서 보내주신다는 구독형 뉴스레터를 읽게 되었다. 정확히 내 취향을 저격하는 담담한 유머러스함에, 내 질투심은 한 번 더 폭발하고 말았다. 나는 손을 부들거리면서 오늘의 부러움은 언젠가는 꼭 재방문으로 갚으리라 다짐했다.

 

 

 

3. 서점 주인



그렇지만 밤의 서점 사장님이 월요일 20:59분에 꼼짝없이 뉴스레터를 쓰고 앉아 계실 생각을 하니까,

 

그리고 서점극장 라블레에서는 아무래도 참외를 나눠먹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니까,


서점 주인이 되고 싶다는 꿈은 역시 취소해야겠다.


다만 그들의 돈벼락을 진심으로 기도하며, 나는 조만간 그 부러움을 갚으러 또다시 책방 문을 빼꼼 열 것이다.


물론, 다음번엔 스몰토크 연습을 조금 더 해 간 상태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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