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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폭력의 연쇄를 끊어내는 개인 - 그저 사고였을 뿐 [영화]

사고라는 변명

by 윤경주 에디터
2026.04.25 1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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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그저 사고였을 뿐>의

스포일러를 담고 있습니다.

 

 

 

내 인생을 망가뜨린 사람을 우연히 마주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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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력의 형태는 다양하다. 사회학자 요한 갈퉁은 이를 '폭력의 삼각형'을 통해 제시했다. 물리적 실체가 명확한 '직접적 폭력', 제도적 억압과 차별 속 내재된 '구조적 폭력', 그리고 이들을 정당화하는 '문화적 폭력'이 그것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서로 원인과 결과가 되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끊임없이 순환한다. 체제의 억압이 개인의 가해를 낳고, 그 가해를 합리화하는 악순환을 통해 폭력은 하나의 거대한 생태계로 자리 잡는다.

 

하지만 거대한 체제 속 폭력이라 할지라도, 결국 그 참혹함의 끝에서 마주하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라는 두 개인이다. 가해자는 쉽게 일상으로 돌아갈지 몰라도, 피해자는 언제 아물지 모르는 상처를 안고 기나긴 시간을 견뎌내야 한다.

 

만약 어느 날 내 인생을 망가뜨린 가해자를 마주친다면, 나는 어떻게 반응하게 될까? 과연 그를 용서할 수 있을까?


 

어느 날, 나를 지옥으로 이끌던 삐걱 소리가 다시 들렸다. 분명 그놈이다. 하지만 만약에 아니라면? “그저 사고였을 뿐? 누군가는 그걸 평생 기억해”



 

첫 번째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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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중 도로를 달리는 한 가족의 차량이 무언가와 충돌한다. 운전자 에크발은 치인 대상이 개라는 것을 확인하고 사체를 길가 옆으로 치운 뒤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출발한다.

 

뒷좌석에 타고 있던 그의 딸은 아빠가 개를 죽였다고 말한다. 그러자 에크발은 개가 갑자기 뛰어들었다며, 자신은 보지도 못했다고 변명한다. 그의 아내는 도로가 어두워 불쌍한 동물들이 차에 치이는 것이며 '그저 사고였을 뿐'이고 이 모든 것은 신의 뜻이라고 덧붙인다. 그러자 딸은 이 말에 정면으로 반박하듯 묻는다.


 

"개를 죽인 건 아빠잖아. 그게 무슨 신의 뜻이야."



어린아이의 이 한마디는 영화를 관통하며 러닝타임 내내 귓가에 맴돈다. 폭력을 가해야 했던 것은 정녕 신의 뜻이었을까? 인간의 저지른 명백한 잘못을 그저 '신의 뜻'이라는 말로 덮을 수 있을까?


 

 

두 번째 사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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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로에서 사고를 낸 직후 차가 갑작스럽게 멈춰 서자, 에크발은 차량을 수리하기 위해 근처 정비소에 들른다. 그곳의 정비공 바히드는 에크발의 삐걱거리는 의족 소리를 듣고, 그가 과거 자신을 무자비하게 고문했던 고문관이라는 사실을 직감한 후 미행하기 시작한다.


바히드는 에크발을 납치하고 산 채로 묻으려 하지만, 흙 속에 파묻힌 에크발은 자신은 그 사람이 아니라며 억울하고 절박하게 결백을 호소한다. 눈을 가린 채 고문을 당했던 바히드의 추측은 그저 직감에 불과할뿐더러, 얼굴과 증언만으로는 그를 명확히 단정할 수 없었기에 혼란에 빠진다.


이에 바히드는 남자의 정체에 확신을 얻기 위해 다른 피해자들을 찾아 나선다. 그 과정에서 결혼을 앞둔 골리와 알리, 그들의 친구이자 사진작가인 시바, 그리고 또 다른 피해자 하미드를 만나며 과거의 참혹한 진실에 다가선다.




그저 사고였을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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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장인물들을 둘러싼 과거의 사건이 재현되거나, 구체적인 경위가 드러나지는 않는다. 관객은 오직 인물들의 대화로부터 그 상황을 유추해 나갈 뿐이다.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은 이들이 과거 정부의 탄압 아래 수감되었던 사람들이며, 그들을 끔찍하게 고문했던 정보관이 에크발이라는 사실이다.


초반의 바히드는 송두리째 망가진 자신의 인생에 대해 깊은 억울함과 분노로 복수를 다짐했다. 그러나 산통을 겪고 쓰러진 에크발의 아내와 울고 있는 딸을 마주하자, 그들을 직접 응급실에 데려다주고 병원비까지 대신 내주며 망설임 없이 가해자의 가족을 돕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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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크발은 끝까지 자신의 과거에 대해 변명하며 반성하지 않았지만, 바히드는 에크발을 묻지 않고 풀어준다. 끔찍한 폭력을 당했다는 이유로 똑같은 짐승이자 가해자가 될 수는 없었다. 그렇게 바히드는 자신에게 평생의 고통과 트라우마를 안겨준 폭력의 연쇄를 끊어냈다. 그리고 삐걱거리는 의문의 소리를 남긴 채 영화는 막을 내린다.


폭력은 폭력을 낳고, 그 굴레를 끊어내는 일은 결코 쉽지 않다. 만일 바히드가 복수를 선택했더라도, '그러면 안 됐어.'라며 개인이 겪은 참상에 관해 타인이 무책임하게 말을 얹을 순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폭력의 연쇄를 끊어낸 바히드의 결단이 울림을 주는 이유는 지금 이 순간에도 폭력은 끊임없이 벌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언제 어디서든 일상을 덮칠 수 있는 전쟁이라는 가장 거대한 폭력 앞에서, 근본적인 구조와 사회의 개선을 외면한 채 굴레를 멈추는 일은 결국 개인의 주체적인 선택으로 내몰리고 만다.

 

작품은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묻는다. 인간이 저지른 폭력은 구조에 의한 '어쩔 수 없는' 현상인가, 혹은 개인이 저지른 선택인가. 정말로 신의 뜻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타인의 삶을 빼앗을 자격이 있을까?


비겁하게 회피하는 가해자들에게 질문하고 싶다. 그것은 '그저 사고였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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