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무대 위 스포트라이트에 지워진 폭력의 그림자 [영화]

영화 <아네트>를 통해 생각해보는 예술과 폭력
글 입력 2022.03.06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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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아네트>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할리우드가 만들고, 할리우드가 죽인 스타”

 

JTBC 예능 프로그램 <방구석 1열>에서, '주성철' 편집장이 영화 <오즈의 마법사> 속 ‘도로시’ 역할을 맡았던 배우 ‘주디 갈랜드’를 두고 한 말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주디 갈랜드가 촬영하면서 겪었던 끔찍한 폭력과 어머니로부터 당한 학대에 대해 알게 되었다. 어렸을 때 영화 <오즈의 마법사>가 보여준 환상의 세계를 기억하고 있던 나에게 이러한 사실은 정말 충격적이었다.

 

비록 <오즈의 마법사>는 1939년에 제작된 정말 오래된 작품이지만, 최근 이슈가 된 ‘#FreeBritney’ 운동처럼, 아직도 화려한 예술의 현장 속 스포트라이트 이면에 있는 폭력과 학대를 지적하는 목소리는 계속되고 있다.

 

영화 <아네트> 속에도 엄청난 재능으로 대중의 환호를 받는 ‘아기 아네트’가 있다. 아네트의 아버지 ‘헨리’는 ‘아동 착취’라는 우려에도, ‘놀라운 재능을 사람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면서 세계 곳곳에서 아네트의 공연을 계획한다.

 

아네트의 마지막 공연 날, 어린 스타의 천재적인 공연을 기대하던 사람들이 듣게 된 말은 다름 아닌, “아빠가 사람들을 죽여요”라는 폭로였다. 한때는 관객들을 ‘웃겨 죽이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었던 헨리, 그는 어떻게 ‘살인자’로 대중들 앞에 다시 서게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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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스포트라이트에 지워진 폭력의 그림자 : 예술과 폭력 구분 짓기



영화 <아네트> 속 ‘아네트’는 영화의 거의 모든 장면에서 ‘마리오네트(Marionette;꼭두각시)’ 인형으로 표현된다. 아네트는 천재적인 재능을 가지고 태어났지만, 마리오네트 인형처럼 주체성인격을 존중 받지 못하고, 아버지 헨리에 의해 수동적인 존재로 전락한다.

 

헨리는 아네트의 재능으로 벌어들인 돈을 탕진하고, 아네트 또래의 아이가 마땅히 받아야 할 보살핌을 주지 않았다. 심지어 그는 아네트에게 소중한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고 간다. 헨리가 아네트에게 저지른 이러한 행동들은 명백한 폭력이자 착취였다.

 

 

[꾸미기]아네트 스틸컷_아네트.jpg

 

 

하지만 그런 폭력과 착취 속에서 무대 위에 오른 아네트의 재능은 찬란히 빛났고, 수많은 관객과 대중은 무대 위 아네트의 모습에 열광했다. 이런 모습을 보며 아네트를 마리오네트로 만든 건 비단 헨리 뿐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네트에 환호하는 대중들 역시, ‘우리는 아네트를 사랑해’ 라고 외치면서도 스포트라이트에 가려진 폭력과 착취를 묵인하고 동조하며 아네트에게 폭력을 가하는 존재였다.

 

예술의 과정에서 벌어지는 폭력은 비단 무대 뒤에서 예술인들에게 가해지는 착취와 학대만을 포함하지는 않는다. 실제로 예술 작품의 구성원으로 대중 앞에 서는 예술인들의 인격과 주체성은 대중들에 의해 쉽게 지워 지기도 한다.

 

또, 예술 작품을 통해 폭력을 목격하게 하고, 혐오와 편견을 강화시켜 폭력이 더 쉽게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 역시 누군가에게는 폭력일 수 있다. 우리는 이것을 어느 정도까지 ‘폭력’으로 짚어낼 수 있을까.

 

‘스타’라고 불리는 예술인들은 대중들에게 자신의 재능을 보여줌으로써 인기와 부를 얻지만, 불특정 다수의 어마어마한 사랑과 비난을 동시에 감당해야 한다. 또 그들의 사생활을 포함한 일거수일투족은 뉴스거리가 되어 대중들에게 소비된다.

 

영화 후반부, 호송되는 헨리를 둘러싼 사람들은 ‘안이 없으면 누가 우릴 위해 죽어 주냐’고 외치며 헨리를 비난한다. 오페라 가수이자 아네트의 어머니 ‘안’은 무대 위에서 폭력의 희생자로서 계속 죽음을 맞고, 관객들은 이를 통해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헨리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할 때 스스로를 인간이 아닌 ‘유인원’이라 칭한다. 그는 무대 위에서 스스로를 깎아내리며 관객들에게 웃음을 유발한다.

 

 

[꾸미기]아네트 스틸컷_헨리.jpg

  

 

이러한 장면을 보며, 사람들에게 어떠한 감정과 메세지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것은 ‘예술’ 이기도 하지만, 예술가에게는 엄청난 '감정 노동'이자 예술 작품 안팎에서 스스로를 대상화 하기 쉬운 환경에 놓게 되는 행위일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대상화와 효율성에 취약한 예술의 작업 환경과, (어느 쪽으로 기울어 있든) 수평적이지 못한 예술가와 다양한 관계자, 혹은 소비자 간의 관계는 예술을 폭력으로 변질시키기 쉬운 조건이 된다.

 

예술과 폭력을 구분 짓는 것은 이전부터 논쟁과 투쟁의 영역이 되어 왔다. 예술가들이 처한 노동 환경 뿐만 아니라, 예술에서 표현하고 전달하는 각각의 메시지와 이를 받아들이는 방식 등은 모두 이러한 '구분 짓기'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용인될 수 있는 ‘예술'인지, 부당한 ‘폭력’ 인지를 구분하는 기준은 시대와 사회의 변화에 따라 함께 변해 왔고, 지금까지도 이에 관한 피드백과 개선이 이루어지고 있다.

 

영화 <아네트> 속 헨리와 안, 그리고 아네트는 무대 안팎에서 다양한 폭력 앞에 놓인다. 몰입도를 높이는 신선한 연출에도, 개인적으로 영화를 보는 것이 지치고 힘들었던 것도 이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영화를 보며 등장인물들이 문화 예술의 현장에서 마주해 온 것이 '예술'인지 '폭력'인지, 용인될 수 있는 것인지 아닌지, 계속해서 구분 짓고 생각해 봐야 했다. 하지만 문화 예술을 접하는 수많은 사람들도 이러한 과정을 거치며 결국 스포트라이트 속에 지워진 폭력의 가능성을 짚어내고, 예술과 폭력을 구분하는 기준도 변화시켜 온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 : 예술이 가진 권력의 양면성


 

예술의 과정이 폭력으로 변질되는 기저에는 예술이 가진 권력 또한 존재한다. 아래의 대사는 영화 초반, 헨리의 스탠드업 코미디 쇼에서 관객들과 헨리가 주고 받는 대사이다.

 

 

"왜 코미디언이 됐죠? 헨리!"

"왜냐고? 이유를 말해주지. 사람들의 적개심을 없애기 위해.

웃기는 게 살해되지 않고 진실을 말할 유일한 방법이니까."

 

 

이 대사를 보며 오히려 사람들을 웃기기도, 울리기도 하는 문화예술은 ‘진실’을 전달하는 힘을 가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떤 것을 진실로 표현할 것인지, 즉 ‘무엇을 어떻게 보여줄 것인가’를 결정할 수 있는 힘 바로 문화예술이 가진 ‘권력’이다.

 

이러한 힘은 어떤 것을 옳거나 옳지 않은 것으로 만들 수 있고, 또 어떤 것을 진실이나 거짓으로 만들 수도 있다. 이를 통해 문화예술은 누군가를 살릴 수도, 죽일 수도 있는 어마어마한 힘을 갖는다.

 

이렇듯 예술이 가진 권력은 양면성을 띤다. 그리고 그 힘으로 인해 누군가가 폭력에 노출되고 희생된다면, 그건 예술가만의 책임은 아니다. 그 권력의 크기와 방향은 예술가 뿐만 아니라 예술을 향유하는 수많은 사람들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문화예술을 향유하는 우리 역시 문화예술이 행사하는 힘의 크기를 인지하고, 예술과 폭력에 대해 더 함께 생각하고 이야기해야 한다.

 

비록 예술 속에서 폭력을 짚어내고 그 둘을 구분하는 것은, 예술이 가지는 중요한 가치인 다양성표현의 자유에 관련된 민감한 사안일 수 있다. 그러나 문화예술이 가지는 엄청난 힘의 크기를 고려한다면, 그 힘이 폭력으로 향하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은 오히려 문화 예술의 존재와 가치를 지켜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에 예술의 과정이 누군가에게는 폭력이 되지는 않을지, 문화 예술 속에 개입된 폭력의 가능성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 문화 예술 자체와 그것을 향유하는 우리들의 자세에 대한 세심한 성찰과 논의가 이루어져야 한다.

 

 

"아빤 사랑할 게 아무것도 없어."

"널 사랑하면 안될까? 아네트"

"그건 안돼, 아빠. 슬프지만 그게 진실, 아빤 사랑할게 아무것도 없어."

 

 

영화 마지막에서야 아네트는 인형이 아닌 ‘인간’의 모습으로 헨리와 마주한다. 아네트는 헨리와의 마지막 면회에서 그가 예술과 사랑의 이름으로 행했던 폭력과 학대를 명백하게 지적하고 거부한다. 이는 아네트가 아버지뿐만 아니라 대중에게 보내는 경고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헨리는 자신이 사랑하는 존재들을 자신의 손으로 망가뜨리며 불행한 결말을 자초했다. 우리 역시 문화 예술 속 폭력의 가능성을 단지 묵인하고 이에 동조함으로써, 우리가 사랑하는 문화 예술과 예술인들을 우리 손으로 망가뜨리고 잃어버리지 않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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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든 이미지 출처 : 영화 <아네트> 공식 포스터 및 공식 스틸컷

 

 

[김효중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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