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매-경
1. 잡념을 떠나서 오직 하나의 대상에만 정신을 집중하는 경지. 이 경지에서 바른 지혜를 얻고 대상을 올바르게 파악하게 된다는 뜻의 불교적 용어.
그야말로 삼매경이다.
저 무대 위에 오른 배우가 극 속 인물로서 말을 거는 것인지, 그가 개인으로서 관객을 마주하며 민낯을 드러내는 것인지 헷갈릴 정도다. 포효하듯 외치는 대사에 담긴 것이 배우로서 표현하는 인물의 감정인지, 사실은 오늘 아침 집을 나선 어느 인간이 참지 못하고 질러대는 것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혼돈이 밀려온다.
함세덕 원작, 이철희 재창작 겸 연출의 <삼매경>이 재공연한다. 원작 희곡 <동승>을 재창작한 연극 <삼매경>은 작년 초연을 통해 관객을 만난 바 있다. 주인공의 내면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내면극의 특성에 더해 명동예술극장의 각종 무대장치를 통해 표현되는 작품의 호흡이 돋보이는 이 작품은 올해 다시 명동에서 우리를 찾아온다.
<삼매경>에서는 35년 전 연극에서 ‘도념’ 역할을 제대로 해내지 못한 배우가 시간이 지나 죽음을 맞이하면서도 그때의 실패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며 다시 한번 그것을 시도하고 싶어 하는 이야기를 담은 내면극이다. 차가운 겨울 숲, 저승길에서 이탈하여 과거의 연습실로 돌아가지만 여전히 그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는 어려움에 부딪힌다. 그는 배우라는 역할의 괴로움과 마땅히 했어야 했지만 하지 못했던 것들에 대한 고뇌에서 헤맨다.
삶이 이토록 미완성일 수 있다니. 시간을 조각내고 진리를 거스르며 도달한 모든 것이 불완전하고 미흡할 수 있는 것이라니. 절망을 참을 수가 없다. 그리고 그 절망과 고민 사이에서 배우가 우뚝 서 있다.
배우들의 몸 움직임, 소리와 표현을 통해 배경과 상황이 은유적으로 표현했다. 관객은 이번 연극을 통해 명동예술극장이 표현할 수 있는 각종 무대효과의 극치를 맛본다. 차가운 겨울 숲을 입으로, 손으로, 몸으로 표현하는 국립 극단 배우들을 통해 관객은 그가 구천을 떠도는 영혼임을 느꼈다가, 다시 1991년의 연습실로 돌아오고 또다시 죽음과 삶의 경계에 놓인다.
차가운 겨울 숲에서 등장한 배우는, 35년 전 자신이 연기했던 배역 도념과 이야기를 나누며 진정으로 그가 되지 못했던 자신을 회고한다. 시간은 빠르게 지나 그는 삼도천에 다다랐지만 여전히 그때의 생각과 절망감을 느끼는 것을 멈출 수가 없다. 결국 삶과 죽음의 이치를 거슬러 그때로 돌아가기로 한다. 그때의 실패와 배우로서의 절망을 멈추기 위해.
<삼매경>은 과거 원작인 <동승>(1991) 연극에서 ‘도념’역을 맡았던 배우 지춘성이 시간이 지나 다시 한번 배우역을 맡은 극중극으로 진행된다. 그러니 무대 위에서 연극을 펼치는 저 자가 과연 누구일지에 대해 고민해 보는 건 관객의 당연한 의중이 될지도 모르겠다. 배우의 발뒤꿈치를 콱하고 물고 있는 과거의 욕심이자 실패라고 생각한 것이 남긴 상처가 진짜 실존했던 것이 아니었을까를 되묻게 되는 정도의 몰입감을 선사한다.
반짝이는 건 치열한 사랑의 모습이다. 무엇이 그를 그토록 괴롭게 만들었는지,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그를 반대로 내몰 수 있었던 건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해 보면 그저 연기를 향한 애정이자 열정이었을 뿐이다. 연기를 사랑했고, 그러므로 발꿈치가 물린 듯 평생을 고통스러워해야 했다.
‘이까짓 것’이라고 말해봐야 소용없다. 이미 ‘이까짓 것’에 온 마음과 삶을 빼앗긴 사람에게 돌을 던져봤자 무엇하겠는가. 우리 삶도 그렇다. 그렇게 무용하고 쓸모없었던 것들을 쫓아서 온 시간을 보내느라 내던져진 현실에선 두려움뿐이었던 나날들을 똑바로 기억한다.
그러니 배우는 과거와 현재, 연극과 현실이 혼재된 기묘한 ‘삼매경’을 경험하며 ‘삼매-경’을 쫓아가는 것일지도 모른다. 연극이 막에 다다를 때 그는 깨닫는다. 실패를 깨달으면서도 그것을 멈출 수 없었던 지난날의 모든 것을. “나의 아름다운 미완성”의 가치를. 미완성을 쫓아 살아가야만 했던 삶의 가치를 말이다.
연극이 끝나고, 뒤돌아 명동예술극장을 나서는 관객들에게 말을 건네는 듯하다. 그대 삶이 ‘이까짓 것’을 쫓아 늘 괴로울지라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있는 내면을 찾고 끝내 자신을 받아들일 수 있기를 빌어주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