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나스럽다
우리는 삶을 살면서 죽음에 대한 생각 없이 시간을 보낼 순 없다. “어떻게 달리고 어떻게 멈추는지” (「준비 땅 그리고」) 정확하게 알지 못한 채 달려가고 있다. 내일이 어떤 날일지 모르는 채로, 매일 랜덤박스 열 듯 아침에 눈을 뜬다. 그 과정에서는 때론 성공의 기쁨보다는 실패의 두려움과 압박감이 크게 남는 경우가 있다. 실패의 순간에서 ‘나’다움, 즉 나스러움을 배워야 한다.
랜덤박스
내겐 매일 허들을 넘다 실패하는 광대들이 살아요
불필요한 기념일이 빼곡한 달력
숨쉴 날이 없어요
나 대신 종이에 누워 숨쉬는 사람들
밤이 되면 광대는 잠을 자고 나는 일어납니다
나는 허들을 치우고 부서진 광대들을 주워 종이 상자에 집어넣습니다
그늘을 뿌리는 거대한 인공 나무
물을 줘요 잘 자라서 더 크고 뾰족한 허들을 만들어내렴
그렇지만 모든 게 나보다 커져서는 안 돼
광대들은 일도 하지 않고 아침마다 이불을 걷어냅니다 나는 토스트처럼 튀어올라 침실을 접어 내던져요 나를 어지럽히는 벽시계와 발목에 생긴 작은 구멍들이 사라지지 않고 계속 커집니다
방이 비좁아서 나는 밖에 있습니다 밖이 끝나면 집에 돌아가 상자를 만들어야 합니다 재사용 종이는 거칠고 단단해서 반성에 알맞습니다
천장에 붙어 기웃거리는 가녀리고 얇은 나의 광대들
반성이 시작된 집은 무덤냄새가 나는 요람 같아요
나는 탄생부터 기워온 주머니를 뒤집습니다 바닥은 먼지로 가득찹니다
도무지 채워지질 않는 상자 좀처럼 변하지 않는 실패와 실종
내가 죽으면 광대들은 허들을 넘을까요
궁금해서 죽지도 못합니다
시인은 실패한 순간보다는 그다음의 순간에 주목한다. 매일 얼마나 어렵고 높은 허들이 나올지 모르는 채로 불안해한다. 심지어 허들을 넘지 못하고 실패하자 자신의 문제로 돌려 자책하는 모습도 찾아볼 수 있다. 시는 비좁은 방이라는 공간을 제시한다. “무덤냄새가 나는 요람”이라고 말하며 살아 있으면서도 죽음에 더 가까운 시적 공간을 만들었다. 무덤은 송장이나 유골을 땅에 묻은 공간이며 요람은 아이를 잠재우기 위한 공간을 의미한다. 즉, 시인은 죽음의 무덤과 탄생의 요람, 두 가지의 반대되는 성질을 하나로 묶으면서 이야기를 확장 시킨다.
「랜덤박스」의 마지막 행에 주목하고 싶다. 광대들이 허들을 넘을 가능성은 자신이 죽은 이후에나 생길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궁금해서 죽지도 못한다는 허탈한 화자의 목소리가 인상 깊다. 결국 시는 불필요한 걱정으로 잠 못 이루는 한 사람을 보여준다. 산 것도 아니고 죽은 것도 아닌 불분명한 상태의 화자를 통해서 광대와 ‘나’를 동일시한다.
화자의 삶 속에서 쉼의 공간이 되어야 하는 나무조차 인공 나무에 불과하다. 본질이 없이 그저 겉만 똑같이 흉내 낸 구조물은 시 속에서 더 발견할 수 있다. “불필요한 기념일이 빼곡한 달력”과 “나를 어지럽히는 벽시계”, 마지막으로 “재사용 종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요소들이 화자의 방에 있으면서 계속해서 광대들을 만들어 내고 있다고 보였다.
시는 직접적으로 ‘실패’를 언급한다. “변하지 않는 실패와 실종”은 시에서 부정적으로 표현된다. 광대가 허들을 넘을지 궁금해서 죽지도 못하는 그에게 변하지 않는 실패를 조건으로 부여하면서 시 밖에 존재하는 독자와 동일시했다고 느껴졌다.
광대, 그들의 직업적 조건은 실패조차 웃기게 그린다는 점이라고 생각한다. 무거운 시의 분위기와 맞지 않는 대조적인 이미지를 통해 이상함을 느끼고 독자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보였다. 류휘석 시인의 시는 「랜덤박스」와 같이 시 밖에 있는 독자를 끌어들여 온다. 내가 진정으로 실패하는 광대 없는 삶을 살고 있는지 묻게 만든다고 느꼈다.
2. 너스럽다
다음으로 볼 시는 현실의 공간에서 이야기를 펼친다. 시는 나와 다르게 행동하는 너를 영화를 보는 연인의 모습으로 풀어낸다. 이 시가 ‘너스럽다’로 표현될 수 있는 이유는 ‘나’와 ‘너’의 다름이 우리가 아닌 각각의 존재로 관계를 정리했기 때문이다.
원래 엔딩은 다 슬퍼
영화가 끝난 검은 화면에
우리는 픽셀처럼 남아
마주앉은 정면에 손을 뻗는다
어디 갔어
더욱 단단히 커튼을 치고
여기 있어
다시
시작되는 영화
생각보다 지루하겠지
믿어봐 이번에는 정말
커튼이 거대한 붓처럼 실내의 빛을 죄다 빨아들이고 있었다
우리는 문 닫힌 팔레트 속 물감처럼
표면부터 서서히 굳어가고
영화는 생각보다 더 지루했다
주인공이 울고
이제 막 엔딩이 시작되려는데
네가 화장실에 간다
물소리와 함께
장면이 멈추면
나는 홀로 정지된 주인공의 슬픔을 마주하게 된다
주인공은 정해진 만큼만 울기로 약속돼서
멈춘 동안의 슬픔은 책임질 사람이 없고
질감이 사라진 실내에 우두커니 놓인 나는
얼굴을 더듬어 내 손을 확인한다
한참 뒤에 네가 나타나
못 들었어
그러면
우리는 다시 영화 앞에 앉아
타이밍을 잘 맞춰 울어야 할 텐데
다음 영화가 자동 재생되고
다시 손을 잡아도
휘저은 서로의 손에서 거품만 묻어나
뭘 잡아도
뭘 잡은지 모르겠을 때
우리는 손톱을 떼어냈다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생살을 밀어내고 사랑하는 우리가 기어나오고 있었다
‘우리’ 사이에 가려져 있던 ‘너’와 ‘나’의 다름이 영화를 보던 중에 드러난다. 영화를 보는 두 사람은 엔딩이 시작되기 전에 잠시 영화를 멈춘다. ‘너’는 화장실을 가고 ‘나’는 남아서 정지된 주인공의 슬픔을 바라본다. 멈춰버린 주인공의 슬픔은 예정된 것보다 더 길게 잔상을 남기게 되면서 ‘나’에게 혼란을 만들었다. 결국 다시 나타난 ‘너’에 의해서 다시 영화를 재생하지만 ‘우리’가 되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지막에 떼어낸 손톱이 내가 가진 생각의 근거가 된다. 생살을 밀어내고 기어 나오고 있다는 말에 대해서 생각해 봐야 한다. 기어 나온다는 행위는 감추어져 있던 무언가가 점차 나오고 있다는 의미로 이어진다.
그렇기에 시에서 ‘너스럽다’의 의미는 이기적인 사람을 의미할 수도 있을 듯하다. “믿어봐 이번에는 정말”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누구일까? 개인적으로 화자는 아니라고 보았다. 화자는 계속 영화가 지루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이기에 재미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네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결국 두 사람의 엔딩은 슬프게 끝나리라고 짐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그들의 헤어짐을 상상할 수 있는 시였다.
3. 우리스럽다
우리스럽다, 시인은 우리라는 단어를 시에서 자주 언급한다. 시는 우리의 관계, 대화, 행동을 통해서 문장을 이어 나간다. 류휘석 시인이 체계적으로 그려낸 인상 깊은 형식의 시, 「실내등과 마른미역」은 가로로 읽거나 세로로 읽었을 때 모두 말의 의미가 문장이 되는 재미있는 시이다. 세로로 읽어보면, “점멸등을 꺼주실래요 눈이 아퍼서 미래가 사라질 것만 같은데”이다. 이 문장 자체로도 좋은 문장이며 시의 의미를 잘 담고 있다. 밝게 빛나는 점멸등을 계속 보고 있으면 눈이 시리고 아파온다. 화자는 점멸하는 실내등 아래에서 ‘너’와 같이 그릴 미래를 보고자 했다.
실내등과 마른미역
점
멸하는 실내
등 아래 태어난 일
을 축하하며 우리는 촛불을
꺼 폭발할 것처럼 끓어오른
주전자가 우리의 영혼을 데리고
실내를 배회하는 광경을 방관했다 다 같이 생일 노
래를 부르며
요람처럼 몸을 흔들며
눈 마주치지 않고 처음 듣는 것처럼 너와 나의
이름을 자꾸만 부르며
아름답게 아름답게
퍼져나가는
서로의 그림자 오늘은 마른
미역 불어난 것을 미
래로 착각하여 국그릇 바닥 보일 때까지 긁어 마시는 날
가망 없이 태어났지만
사는 일 포기하지 않아 고맙다고 앞으로도 사랑하고 사
라지지 않겠다고 다짐하는 날 책임감 없이 미래는 더 나아
질 거라 말해도 괜찮을
것 같은 날 의자를 밟고 올라선 네가 실내등을
만지다 사라진 날
같은 날 같은 테이블 점멸하는 실내 다 탄 초의 그을린
은박 나는 눈이 부셔 끝내 너를
데리고 나오지 못했다
시에서는 크게 빛을 내지 못하는 실내등과 맛없는 마른미역이 들어있는 미역국을 언급한다. 마지막에는 ‘너’를 데리고 나오지 못한 ‘나’의 역할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바라본다. 개인적으로 시가 가진 분위기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적막이 가득한 생일파티라고 생각한다. 탄생을 축하해야 하는 생일에서 화자는 가망 없이 태어난 삶에 태어났지만, 살아가겠다고 다짐하는 날을 떠올린다. 또한, 책임감 없는 미래가 더 나아질 것이라고 말하는 날, 동시에 너가 사라진 날이다. 이날은 화자에게 의도하지 않은 방관의 순간을 부여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관계성에 균열이 생긴다. 초에 불을 붙이면 발화하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 끝은 불이 꺼지는 죽음으로 생각할 수 있다. 개인적으로 「실내등과 마른미역」은 ‘나’라는 초와 ‘너’라는 불이 만나는 순간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둘은 하나가 없어지면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태가 된다. 그렇기에 ‘우리’의 역할을 중요하다고 말하는 듯하다. 시를 읽는 독자에게 위로를 전달하는 듯한 시가 된다.
시는 “사는 일 포기하지 않아 고맙다고 앞으로도 사랑하고 사라지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삶을 살면서 이러한 말을 해주고 싶거나 스스로 듣고 싶은 순간이 생기는 것은 당연하다. 그 순간 나는 누구에게 이 말을 할 것이며, 들을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된 시였다. 결국 우리가 함께 있기에 이 말은 가치를 가지게 된다.
마지막으로 이야기할 시는 시집의 제목처럼 ‘우리가 그때 했던 말’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시이다.
유기
빈 가방을 들고 돌아온 너와 술을 마셨다
지루하게 늘어진 서로의 얼굴이 테이블을 더렵혔다
자꾸 아픈 얘기를 해서 얼마나 벌고 얼마나 힘들고 그런 걸 말하게 돼서 시가 세상에서 제일 짧은 병명이 돼버려서
거기까지 말했을 때 나는 내가 제일 아프다고 말했다
그래서 너는 아직 쓰는구나 잘 몰라서 모르는 척에 능해서
자리를 옮길까?
그래 여기까지만 하자
우리는 계단 중간쯤에서 두고 온 신분증이 떠올랐다 여기까지 오는 데 정말 오래 걸렸지 힘들기도 많이 힘들었지만
등뒤에는 난간을 붙잡고 기다리는 사람들이 많았다 비키라고 이름이 없으면 돌아가라고 화가 난 채로 웅성거렸다
계단 끝에는 걱정스럽게 내려다보는 사람들이 있었다
다정하게 웃어주었다
다음을 빼앗긴 우리는 집으로 돌아갔다 정류장에 앉아 횡단보도를 바라보았다
건너야지
너 가는 거 보고
횡단보도 너머에는 뭐가 있을까 사람들은 빛 하나를 노려보며 다음을 준비하고 있었다 거기에는 뭐가 있지도 않겠지만 거기에는 죽을 일도 없겠지
죽지 않을 만큼만 다음을 생각하는 우리가 멀리서 도착하고 있었다
있잖아 나 이제는 누가 죽어야 쓸 수 있을 것 같아
뭘?
그러니까
다음에는 죽어서 만나자
너는 바닥에 고인 물웅덩이를 발로 차며 말했다 잔잔하게 누워 흐르던 우리는 순식간에 공중으로 터져나갔다
천천히 신호가 바뀌고
사람들이 다 건너는 동안
부서진 얼굴이 거리를 뒤덮었다
아무런 마음도 없는 곳에 아무렇게나 흩어진 우리는
죽음으로 시작되는 가능성을 나열하며 시간이 빨리 지나가버리길 바라고 있었다
이제 우리들의 문제다 화가 난 채로 시작하고 착해져서
돌아오는 얼굴이
우리는 의자에 흐른 얼굴을 주섬주섬 모아 주머니에 넣었다
돌아가는 길에 각자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화를 걸었다
보고 싶어
그런 말을 하고
목이 마른 채로 잠이 들었다
사랑하는 것들이 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
시는 ‘너’와 ‘나’를 등장시켜 그 사이에 있는 말을 끄집어낸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서 ‘우리’는 대화를 나눈다. 테이블에 앉아있는 순간, 횡단보도를 건너는 순간은 일상을 의미한다. 두 사람의 관계는 연인일 수도 있고 친한 친구나 오랜만에 재회한 누군가일 수도 있다. 개인적으로는 연인 관계라고 시를 읽었다. 연인의 얼굴은 테이블과 의자에 흘러 더럽힌다. “지루하게 늘어진 서로의 얼굴이 테이블을 더럽혔”고 “의자에 흐른 얼굴을 주섬주섬 모아 주머니에 넣”는다. 더럽히고 흐른 얼굴을 굳이 챙겨간 이유는 내일을 살아야 하기 때문이라고 보였다. ‘우리’에게 화를 낸 사람들도 걱정스럽게 본 사람들도 모두 각자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오늘을 살아간 얼굴, 그리고 내일을 살아갈 얼굴이기에 없어지면 안 된다. 얼굴이 없다면 감정을 드러내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사람은 시인이 말하고자 한 청년들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사람의 얼굴은 이름과 같이 신분을 증명하고 보장하는 중요한 존재이다. 시에서도 말하듯 이름이 없으면 돌아가야 하며 다음을 빼앗겨 버린다. 그렇기에 술을 마신 채 부서진 얼굴조차 주섬주섬 모아야만 하는 것이다.
두 사람은 죽음에 대해서 말한다. 누군가 죽어야지 시를 쓸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이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사랑하는 것들이 빨리 죽어버렸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자신이 사랑하는 사람을 보고 싶으면서도 죽었으면 하는 마음은 무슨 의미를 담고 있을까? 내가 사랑하는 것, 그리고 사랑하지 않는 것은 모두 죽음으로 귀결된다. 즉, 모든 생명은 죽는다라는 상태에서 시인이 사랑을 끌어들여 왔다고 생각한다. 사랑을 통해서 죽음을 부정적으로만 보지 않았다고 느껴졌다.
시의 제목인 「유기」를 내다 버리다는 의미의 유기(遺棄)와 생명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의 유기(有機)로 바라보고 싶다. 죽음을 인지하기에 생명에 초점을 맞추는 ‘우리’의 모습을 보았다. 물론 삶에서 죽음을 내다 버리면 안 된다. 한 예로, 문제점과 같이 부정적인 것을 인지한다면 해결책이라는 긍정적인 행동으로 이어지게 된다. 이처럼 죽음 역시 끝이라는 부정적 의미에서 삶의 의미를 찾는 긍정적인 행동으로 연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시 속 구절인 “시가 세상에서 제일 짧은 병명이 돼버려서”라는 말이 기억에 남는다. 시가 병명이 된다면, 가장 아파할 시는 무엇일지 고민하게 되었다. 앞으로 그 시와 시인을 찾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4. 그때 우리가 했던 말
요즘에는 하루를 흐르는 시간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온 힘을 다해 밀어내면서 살아간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우리가 말했던 그것이 무엇이었을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사실 사람마다 다르리라고 생각한다. 시인은 “우리가 처음 나눴던 인사말이 기억나지 않는다.”(「시소」)라고 말한다. 처음 나눴던 대화, 인사말을 정확하게 기억하기는 어렵다. 그렇기에 혼자서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같이, 함께 생각해 보아야 한다. 시집의 제목처럼 내가 누군가에게 지금 가진 어려움에 대해서 묻는 순간이 필요하다. 시를 읽으면서 류휘석 시인과 나 사이의 있었는지 없었는지 모를 대화가 시 속으로 연결되는 느낌을 받았다.
이번 오피니언의 제목은 ‘-스럽다’라는 말은 접미사를 활용했다. 이는 ‘그러한 성질이 있다’는 뜻을 더하여 형용사를 만들어 앞에 붙는 단어를 꾸며준다. 류휘석 시인의 시세계는 너와 나, 그래서 우리의 이야기를 삶과 죽음, 사랑으로 담아낸다고 생각한다. 이를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말을 고민하다가 ‘-스럽다’가 떠올랐다. 마치 ‘서럽다’와 같이 들리기도 하는 소리가 좋아서 류휘석 시인의 시세계를 표현할 수 있는 단어로 고르게 되었다. 나다움을 찾는 과정은 가끔 서럽게 다가올 때가 있다. 내가 누구인지 도저히 모르겠을 때, 내가 하던 것이 무너져서 정체성에 혼란이 생길 때처럼 말이다. 그런 때가 삶에 찾아온다면 잘 웃고 잘 살고 잘 사랑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잘하는 것이 어렵다면 그때에 맞게 그냥 살아도 된다. 힘들었을 때 했던 말을 기억한다면 미래에도 도움이 되리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우리스러울 수 있는 순간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볼 수 있게 된 시간이었다. 죽음 앞에서 가질 후회가 걱정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