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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영화를 보는 관객의 시선은 카메라가 포착하는 대상의 궤적을 따른다.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에서 관객의 눈이 되는 인물은 엄흥도다.

 

관객은 그의 시선을 빌려 유배지 영월의 풍경과 그 속에 던져진 한 소년을 목격한다.

    

 

 

영화를 진행시키는 인물, 엄흥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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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흥도는 처음에 노산군을 그저 마을에 음식과 비단을 가득 실은 당나귀를 가져다줄 수단으로 인식한다. 하지만 노산군의 목숨을 구하고, 이홍위와 마을 사람들에 대한 일상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단종이 마을 사람들을 호랑이에게서 구하는 등 그의 다채로운 면모를 목격한다.

 

이를 통해 엄흥도는 노산을 점차 한 명의 사람으로, 나아가 자신의 아들처럼 인식하기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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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렇게 강화되던 두 사람의 관계성은 엄흥도의 친아들 태산이가 관아에 잡혀가면서 위기를 맞는다. 한명회는 태산이를 인질로 삼아 이홍위가 ‘단종‘이 아닌 ’노산‘으로 존재하도록 유도하고, 엄흥도는 그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자신이 이홍위를 ’무엇으로 보아야 하는지‘를 깨닫는다.

 

그러고는 말한다. 자신이 누구의 말을 따라야 하는지 이제야 알았다고 말이다.

 


 

단종이자 노산, 동시에 이홍위


 

이렇듯 마을을 지킬 것인가 혹은 노산군이 단종으로 복귀하는 것을 도울 것인가, 노산이 금성대군을 만나러 가는 것을 묵인할 것인가 아니면 관아로 달려가 고발하여 마을 사람들을 지킬 것인가라는 아이러니 속에서 고뇌하는 주인공은 바로 엄흥도다.

 

영화의 전개 또한 엄흥도의 시선에서 진행되며, 관아로 향하는 대신 노산이 금성대군을 만날 수 있도록 길을 터주는 그의 선택에 따라 이야기는 달라진다. 하지만 이 모든 서사의 중심에는 결국 단종이자 노산이며, 동시에 이홍위인 한 인물이 존재한다.

 

관객은 엄흥도가 그를 셋 중 무엇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 함께 반응하게 된다. 범의 눈을 가진 ’단종’에게서는 범접할 수 없는 왕족성을, 마을 사람들의 시시콜콜한 이야기에 즐거워하는 ‘이홍위‘에게서는 따뜻한 인간성을, 그리고 끝내 왕권 복귀에 실패한 ’노산’에게서는 깊은 연민을 느낀다.

 

이는 박지훈이라는 배우가 세 가지 자아를 입체적으로 표현한 덕분이며, 카메라가 각기 다르 성질을 가진 세 모습을 섬세하게 포착해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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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게 가장 와닿은 캐릭터는 ‘이홍위‘였다.

 

사실 역사적 인물에게 인간적인 면모를 발견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장항준 감독의 <왕과 사는 남자>는 그동안 폐위된 불쌍한 왕으로만 박제되어 그려졌던 단종에게 누구보다도 휴머니즘적인 시각으로 접근한다. 덕분에 관객은 엄흥도와 마을 사람들의 시선을 빌려 노산을, 그리고 열일곱 어린 나이의 소년 이홍위를 오롯이 인식하게 된다.


이러한 영화의 휴머니즘적 시각은 <왕과 사는 남자>의 포스터에서도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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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포스터는 처음부터 의도된 기획이 아니라, 촬영장에서 어린아이처럼 물장난을 치는 배우 박지훈의 천진난만한 모습을 보고 나온 아이디어라고 한다. “열일곱 소년이라면 이런 물장난 한 번 치지 않았을까” 하고 말이다.


<왕과 사는 남자>는 현재 천만 영화 반열에 오르며 한국 영화의 새로운 2026년을 열어주었다. 덕분에 필자 또한 가족과 다함께 영화관을 찾았는데, 오랜만에 활기 넘치는 영화관의 풍경을 볼 수 있었다.

 

영화의 코믹포인트마다 터지는 사람들의 웃음소리, 팝콘 먹는 소리 등 살아있는 영화관의 에너지를 오랜만에 느낄 수 있어 참 좋은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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