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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극장의 시간들>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씨네큐브 광화문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68 지하2층.
씨네큐브의 25주년을 기념하며 세 개의 단편으로 이루어진 옴니버스 영화 <극장의 시간들>이 공개됐다. 영화를 사랑해서 영화관을 찾는 이들, 영화를 만드는 이들, 영화관에서 일하는 얼굴들이 담겨있다. 그들의 삶은 단조로운 것 같다가도 끓어 넘치고, 다시 또 단조로워진다. 마치 우리의 일상처럼.
<극장의 시간들>은 이종필 감독의 <침팬지>, 윤가은 감독의 <자연스럽게>, 장건재 감독의 <영화의 시간>의 이야기를 담았다. 영화를 사랑하는 마음과 그래서 영화를 생각하는 마음이 씨네큐브 1관 왼쪽 구석에 앉아서 영화를 보던 에디터에게도 어렴풋이 닿았다. 그야말로 마음이 온 것이었다.
<침팬지>. 2000년 광화문, 고도, 모모, 제제는 영화를 사랑한다는 공통점으로 친구가 된다. “영화는 오랜 친구와 같은 것이다.” 그리고 25년이 지났다. 홀로 남은 고도(김대명 분)는 그때의 기억을 남아 영화를 만든다. 그들 곁을 떠난 친구도 있다. 그들 곁엔 이제 그들이 존재하지 않는다. 남은 건 그때의 영화관, 그때 봤던 영화 그리고 헌책방에서 발견한 신기한 침팬지 이야기로부터 출발한 침팬지에 관한 이야기뿐이다.
그때 그 시절 친구들과 침팬지 이야기를 따라 침팬지를 찾으러 갔던 이야기를 영화로 만든 고도는 불현듯 현실을 마주한다. 그때는 없고, 사실은 침팬지도 없었을지도 모른다. 남은 건 또, 영화밖에 없는 것이다.
왜인지도 모르게 영화를 좋아하는 세 사람은 제집 드나들듯 영화관을 오갔다. 몇 편의 영화를 보았고, 개중 몇 개의 감상을 골라잡아 침 튀기게 이야기를 나눴고, 가끔은 알 수 없는 공상에 사로잡혀 단체로 몸을 움직이곤 했다. 그 모든 게 없어지는 건 아니지 않는가. <침팬지>는 그렇게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 그래서 영화를 만들게 된 사람과 그때 쫓았던 이상이자 상상들을 여전히 그리워하는 이의 옆모습을 담았다.
<자연스럽게>.어린이 배우들은 동네 곳곳을 뛰어다니며 영화를 찍고 있다. 감독(고아성 분)은 좀 더 자연스럽게 행동해 주기를 지시한다. 하지만 무엇이 연기이고 연기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찰나에, 자연스럽게 연기하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는 걸 모두가 깨닫는다. 배우와 스태프들은 “자연스러운 연기”가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에 빠진다.
결국 스태프들과 감독은 연기자들이 놀도록 만들기 시작한다. 자연스럽게 놀이가 시작될 때 알리지 않고 촬영을 시작하고, 연기자와 스태프 모두가 본분을 잊고 뛰어놀기도 한다. 의도를 갖고 만들어 낸 컷 속의 얼굴들도 충분히 자연스럽지만, 영화라는 세계를 구축하기 위한 “자연스럽게”는 결국 짧은 영화가 끝날 때까지 관객들에게 의문을 남긴다. 그래서, 어떤 게 “자연스러운” 것일까?
한편으론 어렸을 적부터 아역 배우 생활을 한 연기자가 카메라 가장 바깥의 감독으로 출연해 어린 배우로 나오는 출연자들에게 디렉션을 내리기 위해 이리저리 섞이는 모습이 영화와 현실을 넘나들게 만들기도 한다. 어린 출연자들은 아마 감독이었을 것이고, 감독은 아마 그들이 될 모습일지도 모른다는 허무맹랑한 상상이다. <자연스럽게>는 그렇게 영화를 만드는 이와 그 과정에서 짓게 되는 표정을 자세히 담았다.
<영화의 시간>. 영사 기사 주연은 누구보다 먼저 업무를 시작한다. 극장 매니저 세정과 극장의 청소 노동자 우연은 점심을 함께 먹고 업무를 재개한다. 그들이 일하는 모습이야말로 ‘극장의 시간’이다.
춘천에 사는 영화는 오랜만에 서울에 놀러 와 다니던 고등학교 근처를 거닐다가, 극장에 들어서게 된다. 그곳에서 고교 동창이었던 영화를 마주한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에 반가운 것인지, 그동안의 공백을 설명하지 못할 것 같은 마음에 덜컥 겁부터 났던 것인지 알 수 없는 표정이다. 우연은 그런 영화에게 영화표 한 장을 쥐여준다.
영화는 영화를 보다 잠에 들게 되고, 꿈속에서 감독은 모두가 잠든 상영관 앞으로 나와 이야기를 시작한다. 꿈이 이리저리 섞인다. 마치 잠시 힘을 잃어가고 있는 우리 극장가의 모습을 대변하고 있는 것도 같다. 누군가는 이야기하고 싶기에 영화를 만들며 이야기를 하고, 누군가는 그 이야기를 듣고 싶기에 영화관에 들어선다. 하지만 그 두 사람이 맞물리는 게 어려운 현재를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다.
우연이 들어와 영화를 깨우고, 두 사람은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극장-서울 종로구 새문안로 68 지하2층-을 나선다. 아무렴, 극장에서의 시간은 보람찬 법이다.
<극장의 시간들>이라는 이름 아래 묶인 세 편의 영화는 씨네큐브 25주년을 기념한다는 의도와 걸맞게 영화와 극장, 그리고 그것을 사랑하는 사람들을 향한 찬사와도 같은 영화다. 고도를 보며 영화를 보던 우리의 시간을, 어린 배우들의 웃음에서 우리가 사랑한 영화가 만들어졌던 시간을 가늠해 본다. 잠든 영화의 얼굴에서 우리가 사랑하는 극장의 아늑함을 떠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