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작품들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부터 그 가치에 걸맞은 평가를 받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현시점에서는 걸작이라 일컬어지는 수많은 작품들 역시 공개 당시에는 대중의 외면이나 수많은 혹평을 피할 수 없었던 경우가 결코 적지 않았다는 사실을 떠올려 보면, 비교적 최근에 개봉하여 실망스러운 인상을 남긴 여러 영화들 또한 먼 훗날에는 그 평가가 반전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런 의미에서 개인적으로 언젠가 재조명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작품들을 몇 가지 정리하는 시간을 가져 보았다. 부디 해당 영화들이 대중으로부터 그 가치를 오롯이 인정받는 순간이 찾아오기를 간절히 기원해 볼 따름이다.
<외계+인> (2022-2024)
<외계+인>은 모름지기 그 제작 소식이 들려올 때부터 한국 영화계 최고의 기대작 중 하나로서 입방아에 오르내렸다. <타짜>, <도둑들>, <암살> 등의 필모그래피를 통해 이미 대한민국의 흥행 보증 수표로 자리 잡은 최동훈 감독의 차기작이라는 사실은 말할 것도 없고, 김우빈, 김태리, 류준열 등 유명 배우들로 구성된 화려한 캐스팅 목록 역시 영화 팬들의 기대를 한껏 드높여 놓았기 때문이다. 국내 영화계에서는 아직 익숙지 않은 SF, 판타지 장르의 영화라는 점에서 일부 우려의 시선이 존재하기도 했으나, 과거 <전우치>를 통해 한국형 판타지 영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던 최동훈 감독의 작품인 만큼 그러한 우려는 기우에 불과할 것이라는 시선 또한 적지 않았다.
그러나 이러한 영화 팬들의 높은 기대는 작품의 개봉과 함께 산산이 조각나고 말았다. <외계+인>은 단번에 이해하기 어려운 난잡한 플롯과 다소간의 민망함을 자아내는 유치한 대사 등 호불호가 극명하게 갈리는 요소들이 산재해 있는 영화였고, 결국 수많은 혹평 세례를 외면하지 못한 채 최동훈 감독 최초의 흥행 실패작이라는 불명예스러운 타이틀을 차지해 버린 것이다.
다만, <외계+인>이 썩 훌륭한 작품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서도, 하필이면 그 개봉 시기가 영화 관람료 인상 시기와 맞물리는 바람에 유독 극심한 수준의 비판적 성토에 시달렸다는 사실은 다소 참작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사실 최동훈 감독이 지닌 네임 밸류로부터 파생된 거대한 기대치, 그리고 값비싼 영화 관람료에 대한 불만을 어느 정도 내려놓고 감상에 임해 본다면, <외계+인>이 오락 영화로서 선사하는 장르적 쾌감은 의외로 적지만은 않은 편이다. 적어도 SF 영화의 불모지로 일컬어지는 국내 영화계에서 이루어진 시도치고는 충분히 흥미로운 수준의 결과물이었다는 재조명을 받아 마땅하지 않을까.
<조커: 폴리 아 되> (2024)
2019년에 개봉한 <조커>는 물론 훌륭한 작품이었다. 다만, 그것이 정말로 훌륭한 ‘조커 영화’였는가에 대해서는 다소간의 의구심이 따르기도 한다. 온갖 부조리가 흘러 넘치는 사회 속에서 서서히 무력감에 잠식되며 ‘조커’로서 타락해 가는 주인공 ‘아서 플렉’의 서사는 분명 매력적인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기원이나 정체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채 사람들 사이에서 혼돈으로 군림하고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조커’라는 캐릭터가 지닌 가장 큰 매력이자 아이덴티티였다는 점을 고려해 본다면, <조커>는 ‘아서 플렉’ 개인의 인생사에 지나치게 천착함으로써 ‘조커’의 본질을 일부나마 저버린 작품이라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다행히도 그로부터 5년 뒤 개봉한 해당 영화의 속편 <조커: 폴리 아 되>는 ‘아서 플렉’이 아닌 ‘조커’의 이야기에 오롯이 집중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 ‘조커’로부터 촉발된 집단적 광기는 여러 공동체 속에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번지기 시작하고, 급기야 그들을 억누르던 사회 체제에 대한 행동적 저항과 실질적 파괴로 이어지며, 심지어는 그 광기의 출발점과도 같았던 ‘아서 플렉’이라는 개인마저 아주 간단히 그 뱃속으로 집어 삼키기에 이른다. 어쩌면 개인의 일탈, 내지는 그러한 개인을 향한 군중의 우상화 정도로 치부될 수 있었던 ‘아서 플렉’이라는 캐릭터의 서사는 사회적 혼돈을 추종하는 이들에 의해 잔혹히 무너짐으로써 또 하나의 비극을 창조하고, 나아가 진정한 ‘조커’의 탄생을 알리는 훌륭한 극적 장치로서 작용하기도 한다.
<조커: 폴리 아 되>가 저지른 유일한 실수는 관객들의 기대를 너무나도 가벼이 여겼다는 것이다. 철저하게 ‘아서 플렉’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데 집중하는 작품이었던 <조커>의 속편인 만큼, 관객들이 해당 작품에서 ‘조커’로서 본격적인 활약을 펼치는 ‘아서 플렉’의 모습을 기대했던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심리였다. 결과적으로 <조커: 폴리 아 되>는 그러한 기대로부터 완전히 벗어난 작품이 되어버렸고, 그에 따른 수많은 대중의 힐난 역시 피할 수 없는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하지만 상술한 바와 같이 해당 작품을 ‘아서 플렉’의 개인적 서사가 아닌 진정한 ‘조커’의 탄생 설화로서 바라본다면, <조커: 폴리 아 되>만큼이나 훌륭한 ‘조커 영화’는 결코 쉬이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배트맨의 아치에너미도, ‘아서 플렉’도 아닌, ‘조커’의 이야기가 바로 여기에 있다.
<너자 2> (2025)
2025년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 역대 애니메이션 영화 중 최고 흥행, 흥행 수익 20억 달러 돌파까지. 중국 애니메이션 <너자 2>가 지난 한 해 달성한 기록들이다. 본래라면 모두가 경탄해 마지않을 굉장한 기록들이겠지만, <너자 2>를 향해 쏟아지는 대중의 시선이 마냥 곱지만은 않은 듯하다. 정말로 세계적인 기록을 달성한 작품이라 칭하기에는 중국 내수 시장에 대부분의 흥행을 의존하고 있다는 점, 다양한 사유로 인해 현재 중국이라는 국가 자체에 반감을 지니고 있는 사람들의 수가 결코 적지 않다는 점 등이 해당 작품에 대한 부정적 인상에 많은 영향을 미쳤으리라는 생각이 든다.
다만, 흥행 기록의 공정성 여부나 일부 관객들의 반중 정서 등은 잠시 차치해 두고, 어쨌거나 하나의 작품으로서 이 영화를 바라본다면 <너자 2>는 꽤 훌륭한 애니메이션이다. 플롯 자체는 다소 평이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으나, 매력적인 설정과 화려한 연출, 그리고 무엇보다 관객들을 자연스레 시각적 황홀경에 빠져들게끔 유도하는 압도적인 기술력은 플롯의 단조로움마저 집어 삼키며 결과적으로 제법 흥미로운 인상을 남기는 데 성공한다. 적어도 글로벌 애니메이션 시장 내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호소할 수 있을 정도의 잠재력을 갖추고 있다는 평가를 받아 마땅해 보인다.
사실 <뮬란>이나 <쿵푸팬더>와 같이 중국을 배경으로 하는 애니메이션 IP들이 이미 국제적인 규모의 성공을 거두었던 점이나, <너자 2>의 전작인 <나타지마동강세>를 비롯하여 근래 중국 내에서 제작된 애니메이션 작품들이 영화 팬들 사이에서 소소하지만 꾸준하게 화제가 되었던 점 등을 고려해 본다면, 이러한 중국 애니메이션의 약진이 그렇게나 놀라운 현상은 아닐지도 모르겠다. 물론, 국가 주도하에 이루어지는 문화 검열이나 국제적인 반중 정서와 같은 부정적 요소들이 여전히 산재해 있는 실정이기에 글로벌 시장 내 중국 애니메이션의 미래를 마냥 긍정적으로 전망하기란 쉽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그럼에도 <너자 2>가 전 세계 관객들에게 중국 애니메이션의 매력을 알리는 근사한 출사표로서 기억될 수 있는 작품임은 비교적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