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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조화된 자연, 왜곡된 미래 [미술/전시]

유얀 왕(Yuyan Wang)이 제안하는 다르게 보기

by 이채연 에디터
2026.02.18 13:05

 

 

이른바 기후 위기의 시대, 예술은 기후 위기에 어떻게 반응하는가?

   

예술과 기후위기는 현재 미술계에서 화두 중 하나이다. 예술가들은 단순히 기후 변화를 기록하는 차원을 넘어, 인류세(Anthropocene)라는 거대한 시대적 흐름 속에서 우리가 환경을 바라보는 방식을 재구성하고 실천적인 대안을 제시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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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 광주비엔날레 《판소리: 모두의 울림》은 기후 위기를 예술적 언어로 번역하는 야심찬 시도였다.

 

이번 비엔날레는 시각중심주의를 넘어 사운드라는 비물질적 요소를 통해 인간과 비인간 존재 간의 관계를 재조명했다.

 

그 중에서도 유얀 왕의 <초록색 회색 검은색 갈색>은 기술 낙관주의의 이면을 날카롭게 해부하며, 인류세 시대 예술의 비판적 가능성을 보여주는 주목할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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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은 중국 광둥성의 한 조화(造花) 제조 공장에서 시작된다. 플라스틱으로 빚어진 가짜 식물들이 컨베이어 벨트 위를 흘러가고, 폐공장 외벽은 감시 드론을 속이기 위해 짙은 녹색으로 칠해져 있다. 고도로 설계된 액체형 나무와 수직 농업 인프라가 등장하는 장면들은 초현실적이면서도 지극히 현실적이다.

 

영상 전반에 걸쳐 반복적으로 출몰하는 것은 검은 점액질, 즉 석유다. 정제된 형태와 원시적 형태를 동시에 연상시키는 이 물질은 현대 산업 체제의 물질적 기초이자, 모든 '친환경' 기술의 아이러니한 출발점으로 기능한다. 인공 잔디에 염료를 입히고, 자연을 시각적 아름다움을 위해 재단하는 장면들은 조용히 묻는다. 우리가 보는 자연은 과연 자연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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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위기 담론은 종종 기술적 해결책에 기대거나, 반대로 기술을 전면 부정하는 도덕적 입장으로 기울어진다. 탄소 포집, 인공 숲, 수직 농장 등 기후 위기의 대안으로 제시되는 기술들은 여전히 석유 자본주의 체제 안에서 작동한다. 자연을 복구하려는 시도가 석유에서 출발해 플라스틱으로 귀결되는 역설. 왕은 이러한 기술적 해법이 자연의 본질을 복원하기보다, 인간 중심적 통제 욕망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작동함을 드러낸다. '조화'라는 이름으로 만들어진 인공 자연은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자연과의 조화를 파괴한다. 그것은 자연을 모방하되 자연이 아니며, 생명을 흉내 내되 생명성을 결여한다. 기술 낙관주의는 결국 자연을 통제할 수 있다는 인간의 믿음을 다른 방식으로 반복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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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날레의 '겹침소리' 섹션에 배치된 이 작품은 단순한 경고를 넘어선다. 예술은 논리적 설득이 아닌 감각적 충격을 통해 작동하기 때문이다. 왕의 무빙 이미지가 만들어내는 불안정한 병치와 기괴한 리듬은 관객의 직관을 일깨운다. 우리는 플라스틱 나무를 보며 불편함을 느끼고, 녹색으로 칠해진 공장 앞에서 당혹감을 경험한다. 이러한 감정적 동요는 기후 위기를 추상적 개념이 아닌 체감 가능한 현실로 전환시킨다. 예술이 가진 힘은 바로 여기에 있다. 당연시된 것들을 다르게 보게 하는 힘.


결국 유얀 왕의 작업은 다르게 보기를 제안한다. 플라스틱 잎사귀가 자연처럼 보이는 세계에서 우리는 무엇을 자연이라 부르고,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는가. 어쩌면 그 감각 자체가 이미 오염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자연을 ‘조화롭게’ 만들려는 시도가 오히려 조화를 파괴하듯, 우리가 자연스럽다고 믿는 판단 역시 다시 물어야 한다. 인류세의 예술은 거창한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이러한 모순을 드러내고 우리의 인식 체계를 흔드는 비판적 공간에 가깝다.

 

 

사진 출처: 광주 비엔날레 공식 홈페이지 및 25f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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