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관 10주년을 맞은 아시아문화전당은 《ACC NEXT 아시아 신진 작가전》을 통해 동시대 아시아 젊은 작가들의 예술적 실험을 조망한다.
한국, 중국, 대만 출신의 작가들은 각기 다른 문화적 기반과 매체를 경유하면서도 밀려나고 잊힌 존재들, 사회적이고 국가적인 혹은 문화적인 폭력에 의해 파편화된 주체들의 서사를 소환한다.
이 전시는 과거로부터 도래한 균열의 흔적이 지금 여기, 우리의 시간과 감각 속에서 어떻게 드러나는지를 탐문하며, 그 균열이 미래를 향해 어떤 새로운 상상과 연대를 가능하게 하는지를 묻는다. 오늘은 관심있게 보았던 두 작품을 주목해 살펴보고자 한다.
덕질로 점유된 광장의 언어: 강수지, 이하영의 <민주주의 덕질하기>
전시장 한편에는 아이돌 생일카페를 연상시키는 공간이 자리하고 있었다. 강수지, 이하영의 〈민주주의 덕질하기〉다. 이 작품은 2024년 12월 3일 비상계엄 사태 이후의 사회적 긴장과 기억을 소환하며, '덕질'의 언어로 그날의 감각을 재구성한다.
‘덕질’은 일본어 ‘오타쿠’에서 파생된 말로, 특정 대상에 깊은 애정과 관심을 가지고 활동하는 팬 문화를 가리킨다. 작가들은 이 언어를 빌려 '아이돌 생일카페'라는 익숙한 덕질 문화의 형식을 호출한다. 생일카페는 팬들이 연예인의 생일을 기념해 카페를 꾸미고 사진, 굿즈, 이벤트를 마련하는 팬 문화의 한 형태다. 작품 속 카페는 가상의 아이돌 그룹 키세스(KISSES)의 멤버 ‘민주’와 ‘주의’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며 두 이름을 합치면 '민주주의'가 된다.
작품의 이야기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광장에 모여든 젊은 여성들의 장면에서 출발한다. 형형색색의 응원봉을 흔드는 그들의 열광은 아이돌을 향한 애정과 사랑의 언어를 넘어 공적 공간을 점유하는 새로운 정치적 몸짓으로 변주된다. 덕질의 형식은 이곳에서 민주주의를 감각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전환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여성들의 연대와 공동체의 형성, 감정을 함께 나누던 덕질의 감각은 민주주의를 향한 집단적 실천으로 확장된다. 강수지와 이햐영의 작업은 덕질을 단순한 팬 활동을 넘어, 사회적 참여의 언어이자 서로를 연결하고 발화하게 하는 광장의 새로운 언어로 읽어낸다. 이들은 공적 공간으로서의 광장을 덕질의 감각으로 점유함으로써 민주주의를 다시금 살아있는 경험의 한 형태로 환기한다.
개인의 가장 내밀한 것은 가장 보편적인 것에 닿는다: 이주연의 <등 뒤로 맞대고>
외로움은 정치적인 언어가 될 수 있을까. 이주연의 〈등 뒤로 맞대고〉는 어쩌면 가장 내밀하고 사적인 감정이지만 동시에 가장 보편적인 감각이기도 한 외로움을 새로운 방식으로 사유하게 한다.
<등 뒤로 맞대고>는 특수 청소를 의뢰하는 사람과 특수 청소 업체 상담사 사이의 대화로 구성된다. 한동안 유튜브나 SNS에는 고독사, 우울증으로 인한 특수 청소 의뢰와 작업 현장을 촬영한 영상이 쏟아졌다. 사람이 겨우 몸을 누울 수 있을 만큼의 공간만을 남기고, 온갖 물건들 속에 스스로를 가둔 채 살아가는 이들의 모습이다. 작품 속 대사는 그러한 장면을 떠올리게 한다.

한편 상담사는 냉장고의 크기나 거주 형태를 묻고, 쓰레기를 치우는 과정에서 이웃들이 상황을 볼 수 있다는 사실을 고지한다. 삶의 형태를 묻는 질문의 형식을 취하지만, 대화는 철저히 형식적이고 무미건조하게 이어진다. 이후 화면은 두 인물의 퍼포먼스로 전환된다.

퍼포먼스는 두 인물이 등을 맞대고 서서 다리를 힘차게 올리는 동작으로 이루어진다. 서로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오로지 등 너머로 전해지는 존재와 온기에 의지해 균형을 유지하는 행위다. 이는 서로가 서로를 지탱할 것이라는 최소한의 믿음을 전제로 한다.
서로의 온기를 전해야 할 말들이 형식적인 언어로 남아버린 사회에서, 외로움은 더 이상 개인의 감정에 머물지 않는다. 이 작품은 그 감각이 어떻게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언어로 확장되는지, 그리고 그 지점에서 우리가 어떤 관계 맺기의 가능성을 상상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일상이 미학적이고 정치적인 의제가 되는 순간

주류 문화와 사회에서 밀려난 파편들이 이 전시에 모여든다. 그리고 그것을 다루는 젊은 작가들의 방식이 인상적이다. 이들은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 일상의 감각을 불러오고, 그것을 자신만의 문법으로 풀어내어 미학적이고 정치적인 의제로 드러낸다.
덕질이 저항의 언어가 되고, 외로움이 정치적인 발화가 되는 순간들. 역사적 사건과 신화, 전통 속에 내재된 사회적 폭력을 호출하는 방식들까지. 저마다 다른 언어로 말하지만, 그들이 소환한 사적인 경험은 결국 보편의 언어로 확장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