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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 아해의 공포와 아해였던 우리의 공포 -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 [공연]

무섭지? 괜찮아, 무서움과 함께 가는 법을 배우면 돼.

by 권현정 에디터
2026.02.12 13:32



아이는 죽음에 대해 알아야 할까?

아이는 세상의 불편한 소식은 몰라도 될까?

아이는 두려운 현실로부터 온전히 보호되어야 할 존재일까?

그저 두 눈을 가리고 귀를 막아 행복한 세상만을 보여주어야 할까?

   

아니, 애당초 그럴 수나 있을까?


연극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는 이 모든 질문에 단호하게 '아니오'라고 답한다. 사회의 갈등과 사고, 전쟁, 어른들의 다툼을 목격하며 자라는 아이들은 이미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내는 동시대 시민이기 때문이다.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든, 아이들은 어른과 똑같은 현실 속에서 공포와 불안을 마주하며 살아가는 존재인 것이다.


내가 초등학생 때의 일이다. 뉴스에서는 연일 북한과의 긴장 고조로 전쟁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들이 흘러나왔다. 그날 밤 나는 전쟁이 날까봐 도무지 잠을 이루지 못했다. 다음 날, 어떤 친구는 혹시 모를 사태에 대비한다며 학교에 비상 가방을 싸들고 오기도 했다. (간식과 여벌옷이 들어있었다)

 

어른들은 아이들이 세상 물정을 모를 거라 짐작하며 '넌 아직 어려서 몰라도 돼'라거나 심지어 그 공포가 '귀엽다'고 말하곤 한다.

 

하지만 누구보다 어른들의 분위기와 시선, 말 사이에 스며든 세상의 공포를 가장 예민하게 포착하고 오래 기억하는 존재는 또 다른 어른이 아니라, 바로 그 어른들과 일상을 함께 살아가는 어린이들이다.

 

 

오감도_포스터.jpg

 

 

 

1. 어린이가 연기하는 어린이가 아닌, '어린이 그 자체'로의 존재


 

[국립극단] 기획초청 Pick크닉 열린 객석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2026) 홍보사진06.jpg

출처 - 공놀이클럽, 이지응


 

국립극단의 '2026 기획초청 Pick크닉' 무대에 오른 공놀이클럽의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는 우리가 어린이극에 기대하는 '무해하고 밝은' 모든 관습을 짜릿하게 배반한다. 난해함의 상징인 이상의 시 '오감도'를 빌려왔지만, 극은 시를 해석하려 들기보다 아이들의 몸짓과 언어로 시를 다시 쓴다.

 

무대에는 초등학생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아역 배우 9명과, 이들의 미래이자 주변 어른이기도 한 성인 배우 5명이 등장한다. 흥미로운 것은 연출의 시선이다. 이 작품은 아이들에게 어른이 규정한 '박제된 순수함'을 강요하지 않는다. 한국 최초의 어린이 공동창작 연극으로, 오디션 단계부터 대본 개발까지 어린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아냈다.

 

대사 전 자꾸만 침을 꼴깍 삼키거나, 다음 동선을 위해 머뭇거리는 찰나의 모습조차 '어린이다움'의 본질이 된다. 산만하기도 하고 능청맞기도 한 것이 어린이임을 인정하고 무대 위에 그대로 둔다. 엉성하고도 진실된 그 순간들을 마주하다 보면, 우리가 얼마나 아이들을 거짓된 환상 속에 가두려 했는지 새삼 깨닫게 된다.

 

 

 

2. 열세 아해가 쏟아내는 오늘의 디스토피아


 

[국립극단] 기획초청 Pick크닉 열린 객석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2026) 홍보사진08.jpg

출처 - 공놀이클럽, 이지응


 

"제1의 아해가 태어나기 무섭다그리오, 제2의 아해도 달리기 무섭다그리오, 제3의 아해도 부모님 무섭다그리오…"

 

13명의 아해는 태어나는 것부터 달리기, 부모님, 집, 학교, 서울, 스마트폰, 아이돌, 나이 드는 것, 꿈, 노키즈존, 전쟁, 그리고 마침내 '나 자신'에 이르기까지 이 시대의 13가지 공포를 가감 없이 쏟아낸다.

 

아이돌 산업의 미적 욕망에 노출되고 스마트폰 속 숏폼에 빠져들며, 어른들의 기대와 불안정한 미래 사이에서 질주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수많은 문학이 예언해온 디스토피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이들이 읊는 공포는 단순한 어린이의 투정이 아니라, 성인이 된 우리와 우리의 사회가 내포한 불안으로 확장된다.

 

 

 

3. “무서워!” 연대로 이어지는 두려움의 힘


 

[국립극단] 기획초청 Pick크닉 열린 객석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2026) 홍보사진13.jpg

출처 - 공놀이클럽, 이지응


 

작품의 모든 부분이 많은 생각을 들게 했지만, 가장 뭉클한 순간은 어른 역의 배우가 '한 때 어린이였던 어른'으로 등장해 과거의 자신과 마주할 때다. 가난한 연극배우가 된 어른 '강민'은 끊임없이 위태롭게 균형을 잡아야 하는 스카이 콩콩 신발을 신고 등장한다. 어린 '강민'은 치즈크러스트 피자를 시켜 먹을 수 있냐며 미래의 자신에게 안부를 묻는다. 두 '강민'의 대화는 객석의 코끝을 찡하게 만든다.


특히 두 사람이 서로를 꽉 끌어안고 "무서워! 무서워! 무서워!"를 연신 외치는 장면에선 감동을 넘어 카타르시스가 밀려왔다. 두려움을 숨기고 살아야 했던 어른들에게 건네는 따뜻한 위로이자, 그 두려움을 통해 세대가 서로 연결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극의 마지막, “문을 열었는데 막힌 골목이어도 괜찮냐”는 물음에 아이는 “막힌 골목이어도 괜찮고, 뚫린 골목이어도 괜찮다”고 답한다. 연극은 우리에게 억지로 용기를 내라고 다그치는 대신, 무서워도 괜찮으니 그저 자신답게 살라고 말한다. “무서워봤자 나일 뿐이잖아!”라고 외치며 각자의 문을 열고 뛰어나가는 아해들의 모습에서 나는 형언하기 어려운 해방감을 느꼈다. 막힌 골목이든 뚫린 골목이든, 내가 나로서 존재하며 질주하거나 질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것으로 충분하다는 깨달음이다.

 

 

 

4. 내가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이유


 

[국립극단] 기획초청 Pick크닉 열린 객석 이상한어린이연극-오감도(2026) 홍보사진15.jpg

출처 - 공놀이클럽, 이지응



여기에 전 회차 '열린 객석(Relaxed Performance)' 운영은 이 메시지를 공간적으로 완성한다. 소음과 움직임을 포용하는 이 환경은 타인의 기침이나 아이의 울음까지 공연의 일부로 받아들이게 하며, 극장을 진정한 이해와 연결의 장으로 만든다.


공연을 마치고 지하철역으로 나오는 길, 나는 기묘한 경험을 했다. 무심코 지나치던 거리의 행인들이 모두 사랑스럽고 귀하게 보였다. 앞자리에서, 옆자리에서 훌쩍이며 눈물을 훔치던 그 이름 모를 관객도, 각자의 무서움을 안고 저마다의 질주를 이어가고 있을 소중한 '아해'라는 사실이 가슴으로 전해졌기 때문이다.


내가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이유는 바로 이런 것이다. 첫인상의 오해를 풀게 하고, 타인의 삶을 내 삶의 일부로 포용하게 하며, 마침내 나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게 하는 힘. 이상한 것을 이상하다고 말할 수 있고, 무서운 것을 무섭다고 말할 수 있고, 내가 나로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게 하는 이 작품은, 오늘 우리가 왜 다시 극장을 찾아야 하는지에 대한 명확한 답이 된다.

 

내 안의 떨고 있는 '무서워하는 아해'를 마주할 준비가 된 이들에게, 이 이상하고 아름다운 연극을 권한다.

 

 

오감도 시제1호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오.

(길은막다른골목이적당하오.)


제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4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5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6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7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8의 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9의 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0의 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1의아해가무섭다고그리오.

제12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제13의아해도무섭다고그리오.

십삼인의아해는무서운아해와무서워하는아해와그렇게뿐이모였소.

(다른사정은없는것이차라리나았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아해가무서운아해라도좋소.

그중에2인의 아해가 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그중에1인의아해가무서워하는아해라도좋소.


(길은뚫린골목이라도적당하오.)

13인의아해가도로로질주하지아니하여도좋소.

 

이상, 《조선중앙일보》, 1934년 7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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