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누군가를 보며 '저 사람의 저런 점은 닮고 싶다'고 생각한다.
대개 부러움에서 시작되는 마음이지만, 깊이 생각해보면 생존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지금의 나로는 버거운 순간을 뛰어넘기 위해, 누군가의 존재 방식을 따라 하고 싶어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런 마음은 사람에게서만 멈추지 않는다. 때로 사물과 동물을 바라보다가도, 이런 부분을 닮아가야겠다고 느낄 때가 있다.
내가 최근에 닮고 싶은 동물은 오리너구리와 벌꿀오소리이다.
날 정의하지마 - 오리너구리

포유류이지만 알을 낳고, 부리는 오리를 닮았으며, 꼬리는 비버를 떠올리게 한다. 발에는 물갈퀴가 있고, 수컷의 뒷다리에는 독을 품은 박차까지 달려 있다. 처음 발견됐을 때 박물학자들이 이 동물을 장난처럼 이어 붙인 가짜 표본이라 의심했던 것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이 어정쩡한 조합은 우연이 아니다.
오리너구리는 그때그때 살아남는 데 필요한 감각과 형태를 차곡차곡 갖추며 지금의 모습에 이르렀다. 물속에서는 부리가 전기 신호를 감지해 먹이를 찾고, 땅 위에서는 포유류처럼 체온을 유지한다. 어느 한 종의 규칙을 따르지 않았기에, 오히려 자신만의 생존 방식을 만들 수 있었다.
그래서 오리너구리는 ‘특이한 동물’이라기보다 ‘정의되지 않은 존재’에 가깝다. 포유류인지, 조류인지, 파충류인지 구분하려는 시도는 늘 실패로 끝난다. 그 어떤 분류도 이 생물을 온전히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오리너구리는 스스로를 증명하려 애쓰지 않는다. 하나의 기준에 맞춰 정리되기를 거부한 채, 그저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습으로 존재할 뿐이다. 이도 저도 아니라는 말이 약점이 되지 않는 세계에서, 오리너구리는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방식으로 살아간다.
날 얕보지마 - 벌꿀오소리

벌꿀오소리는 몸집이 크지 않고, 맹수라고 부르기에도 애매하다. 그럼에도 이 동물은 사자와 마주치고, 독사를 상대하며, 때로는 자신보다 훨씬 큰 위협 앞에서도 물러서지 않는다. 이 대담함 덕분에 벌꿀오소리는 한때 ‘세계에서 가장 용감한 동물’이라는 이름으로 기네스북에 언급되기도 했다.
하지만 벌꿀오소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 용맹함은 무모함과 다르다. 두꺼운 피부와 뛰어난 회복력, 집요할 정도의 집중력은 모두 살아남기 위해 몸에 새긴 선택들이다.
벌꿀오소리는 자신이 약하다는 사실을 모르는 존재가 아니라, 약함을 전제로 움직이는 존재에 가깝다.
이 동물은 싸움을 즐기지 않는다. 다만 물러설 이유가 없을 때 물러서지 않을 뿐이다. 먹이를 향해 나아갈 때도, 위협을 마주할 때도 태도는 같다.
도망칠 수 없다면 맞선다. 맞서야 한다면 끝까지 간다. 그 단순한 원칙이 벌꿀오소리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내가 이 동물에게서 닮고 싶은 건 바로 그 지점이다.
두려움이 없어서가 아니라, 두려움을 이유로 멈추지 않는 태도. 상황이 나를 작게 만들수록, 오히려 더 단단해지는 방식 말이다.
벌꿀오소리는 세상을 이길 만큼 강해서 살아남은 게 아니다. 쉽게 물러서지 않는 성질 덕분에, 지금까지 버텨온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