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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모든 예술 분야 중 선뜻 다가가지 못하는 장르가 있다면 바로 ‘클래식’이다. 클래식이라는 어감자체부터 음악 공부 좀 했고, 음악 좀 안다는 사람만 들어갈 수 있는 경계선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내겐 클래식은 여전히 어렵고 손대기 힘든 분야이다.

 

조금이나마 클래식이랑 친해지기 위한 한 시도가 이번 공연이었다. 클래식 하면 떠오르는, 무대 가득 오케스트라가 자리한 풍경이 아닌 기타리스트 한 명을 중심으로 된 구성이 새롭게 다가왔다.

 

결론적으로 공연 시작부터 끝날 때까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눈 앞에 놓인 스크린과 풍경에 맞춰 나오는 음향, 곡마다 바뀌는 각색의 조명은 내가 알고있던 고정관념을 깨버렸다. 어쩌면 내가 너무 편협한 시각으로 ‘클래식’을 바라봤던 건 아닌지 스스로를 되돌아 보았다.

 

사실 장르는 중요하지 않다. 어떤 악기든 결국엔 우리가 예술과 만나는 지점까지 데려다주는 하나의 통로일 뿐이다. 아마도 예술은 이렇게 한 번씩 우리의 감각을 흔들어 주며, 닫혀 있던 문을 조금씩 열게 만드는 게 아닐까.

 

이번 공연은 나에게 그 문틈을 만들어준 소중한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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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은 크게 두 개의 장으로 나뉜다. 1부에서는 숲, 바다, 산, 서(書), 석퐁수 등 자연 요소를 우리에게 보여준다. 눈 앞 스크린에 펼쳐지는 자연 풍경과 음향, 그리고 그 위에 얹어지는 악기의 선율이 마치 내가 공연장이 아닌 그 공간에 초대된 거 같은 신기한 경험을 하게 만든다.

 

2부에서는 좀 더 깊숙이 들어가 인간의 내면과 AI 시대에 물음을 던지는 사유의 장이 펼쳐진다. ‘DAWN’을 시작으로 깊은 사유의 문이 열리고, 이어지는 ‘사유하는 공간 1, 2, 3’에서는 각각 방황, 고통, 나아감을 표현한다. 우리 모두가 아픔 속에서도 끝내 빛을 향해 걸어가길 바라는 마음이 담긴 구성이다. 이후 전자음악과 기타로 구성된 Who am A.I와 그림자의 경계에서는 불확실한 시대 속 흔들리는 정체성을 비추고, Bluehour의 고요한 선율이 그 모든 감정 위에 잔잔히 내려앉으며 공연은 부드럽고 고요하게 마무리된다.

 

자연의 장에서 사유의 장으로 넘어가는 구성 또한 일종의 배려가 아닐까 생각한다.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는 테마를 먼저 선보임으로써 ‘음악 공간’이라는 낯선 예술에 경계심을 낮추고 편안한 마음으로 음악을 향유하게 만들었다. 2부는 물리적인 공간이 아닌 관념적인 공간을 선보이는 것인지라 누구나 이해하기 어렵다. 그래서 어렵게 느껴질 장을 뒤로 미루고 먼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자연의 이미지를 통해 마음을 열어준 뒤 비로소 깊은 사유의 세계로 초대하는 듯했다.

 

악기 수가 적어 소리가 비지 않을까 하는 염려는 필요 없었다. 공간을 채우는 음향이 충분히 그 빈자리를 메우고, 악기 하나로도 이렇게 다양하게 활용될 수 있음을 기타리스트 최인을 통해 느끼게 한다. 선율을 연주하는 기법 외에도 기타 몸통을 두들기거나 넥 부분을 쓸어내리는 연주는 감탄을 자아냈다. 첼로, 바이올린, 피리 역시 과하거나 부족함 없이 각자의 역할을 정확히 해내며 전체 음악의 균형을 완성했다.

 

공연이 끝난 후, 작곡가이자 기타리스트 최인은 ‘악기는 도구에 불과할 뿐 여러분에게 새로운 공간을 느끼게 해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은 공연 내내 내가 느꼈던 감정과 정확히 맞닿아 있었다. 익숙한 형식이 아닌, 공간과 사유를 넘나드는 방식으로 음악을 전한다는 것이 바로 그가 구현하고자 했던 ‘새로운 공간’이었을 것이다.

 

예술은 형식보다 감각이고, 설명보다 체험이었다. 한 명의 연주자와 몇 개의 악기가 만들어낸 세계가 이렇게 넓고 깊을 수 있다는 사실이, 공연장을 나서는 발걸음 끝에 오래 머물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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