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작은 존재들에게 생존 전략을 배웁니다 [동물]

글 입력 2022.09.22 1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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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따금 울컥울컥 떠오르는 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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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지나도 잘 잊히지 않는 말이 있다. 잊으려 애써도 그림자처럼 계속 따라붙는 그런 말들. '재능이 없다'는 말은 지금까지도 나를 괴롭힌다. 감수성이 예민한 사춘기 시절에 들은 말은 마음속에 오랫동안 남아있다. 나는 무엇이든 열심히 하는 학생이었지만, 성실도에 비례한 결과물을 얻지 못하는 학생이었다. 선생님들은 그런 나를 위로하면서 동시에 의아하게 생각했다. 그들은 난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넌 재능이 없다’

 

일찌감치 포기하고 애써 노력하지 않았더라면 무능하다는 평가 정도는 피할 수 있었겠지만, 그조차도 나에게는 어려웠다. 결국엔 최선을 다하되,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로 했다. 그렇지만 일말의 희망은 놓지 않았다. 지금 당장은 아니어도 언젠가 재능을 발견하게 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10년이라는 시간이 지났고, 여전히 나는 재능을 찾지 못했다.


조금씩 초조해지기 시작한다. 기다린 시간이 오래되어서도 있지만, SNS를 보면 세상에 다재다능한 사람들이 많음을 실감하기 때문이다. 분야는 각기 다르지만, 남들에게 내놓을만한 재능 하나씩은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그들을 보며 환호하고 감탄했다. 겸손은 미덕이라는 시대는 저물고, 자기표현이 경쟁력이 된 시대가 되었다. 치열한 경쟁 사회에서 특출한 재능이 없는 나는 살아남을 수 있을까. 그런 의문들이 스멀스멀 피어오른다.

 

 

 

동병상련의 마음으로 보기 시작한, <작은 존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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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불안감이 극에 달할 때쯤, 넷플릭스 시리즈 <작은 존재들>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다. 이 다큐멘터리에 눈길이 간 이유는 동물을 유달리 좋아해서도, 귀여운 섬네일에 이끌려서도 아니었다. ‘작은 존재들’이라는 제목이 나를 의미하는 듯했고, 그들의 이야기가 지친 나에게 위로가 될 거라는 작은 기대감 때문이었다.


<작은 존재들>은 도심에 사는 소동물들의 생존기를 다룬 픽션이 가미된 다큐멘터리이다. 에피소드마다 배경과 주인공이 바뀌지만, 에피소드를 하나로 묶는 공통적인 이야기 구조가 있다. 그들의 이야기는 마치 슈퍼 히어로물처럼 영웅 서사 구조로 전개된다. 연약한 존재가 낯선 환경에 놓여 위기를 겪다가, 모험을 감행하며 성장하는 이야기. 그리고 결국엔 살아남고 승리하는 해피 엔드.

 

그중에 가장 인상적인 에피소드는 1화의 애리조나 사막의 '캥거루쥐' 이야기였다. ‘캥거루쥐’는 주로 사막이나 초원에서 살아 한국에서는 생소한 동물이다. 이름에서 힌트를 얻어 캥거루처럼 꼬리로 균형을 잡고 두 발로 깡충깡충 뛰어다니는 모습을 생각하면 된다. 크기는 10cm~20cm 정도이며, 무게는 0.35~1.8kg에 불과하다. 광활한 사막과 그곳을 누비는 포식자들을 떠올리면 무척 작고 연약한 존재들이다. 강자만이 살아남는 야생의 세계에서 그들은 어떻게 살아남을까.


 

아기 캥거루쥐, 혼자가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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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캥거루쥐'는 방울뱀에게 습격을 당해 엄마와 집을 잃고, 혼자 사막을 헤맨다. 먹이와 새로운 집을 찾기 위해 정처 없이 걷지만, 별다른 수확을 얻지 못한다. 대신 그를 노리는 수많은 포식자를 만난다. 생화학 무기를 가진 독도마뱀부터 타란툴라, 사격을 즐기는 인간, 튼실한 날개와 다리를 지닌 매까지. '아기 캥거루쥐'는 그들로부터 필사적으로 도망친다.


어느새 깜깜한 밤이 되고, 갈 곳 없는 '아기 캥거루쥐'는 캠핑카 밑에서 잠을 청한다. 그렇게 평화롭게 잠이 드나 싶더니 살벌한 BGM과 함께 이번엔 전갈이 등장한다. 지칠 대로 지친 '아기 캥거루쥐'는 무기력할 뿐이다. 그렇게 그의 운명도 끝이 나나 싶었는데, 늑대처럼 포효하는 전갈쥐가 나타난다. 전갈쥐는 즉시 전갈에게 달려들어 자신의 영역에서 침입자를 몰아낸다.


전갈쥐의 용맹스러운 모습을 본 '아기 캥거루쥐'는 깨달았다. 자신의 것을 지키려면 더는 도망가면 안 된다는 사실을 말이다. 해가 밝자 '아기 캥거루쥐'는 엄마와 함께 살았던 집으로 향한다. 가는 길에 무서운 매도, 인간도, 방울뱀도 만날 것이 뻔하지만 개의치 않았다. 방울뱀과 대적할 만한 힘도 무기도 없는 '아기 캥거루쥐'는 대체 무슨 생각인 걸까.

 

 

 

기지를 발휘해 얻은 값진 승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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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 캥거루쥐'는 자신을 미끼로 매를 방울뱀의 굴로 유인한다. 자신은 방울뱀과 직접 싸우지 못하니 대등한 힘을 가진 매를 끌어들여 방울뱀을 내쫓으려는 속셈이었다. 계획대로 매는 캥거루쥐를 잡아먹기 위해 방울뱀의 영역까지 오고, 굴속에 있던 방울뱀은 먹잇감의 냄새를 맡고 굴 밖으로 나온다. 매와 방울뱀을 한 장소에 모이게 했으니 '아기 캥거루쥐'는 상황을 지켜보기 위해 몸을 숨긴다.


한 영역에서 왕이 둘이 될 수 없는 법. 매와 뱀 사이에서 마치 서부극의 한 장면처럼 살벌한 분위기가 오간다. 카리스마 넘치는 눈빛을 가진 매와 혀를 날름거리며 위협적인 소리를 내는 방울뱀의 대결. 그렇게 한동안 신경전이 계속되더니 뱀이 매의 기세에 움츠러들고 이내 도망친다. 그렇게 방울뱀이 영역을 떠나 '아기 캥거루쥐'는 빼앗겼던 집을 되찾는다. 위풍당당 자신의 집으로 돌아간다.


*


'아기 캥거루쥐'의 승리는 어느 히어로물 영화의 한 장면보다도 짜릿했다. 마치 동족의 모습을 보듯 눈가가 촉촉해지며 마음이 벅차오르기도 했다. 큰 존재들의 승리는 화려하고 멋지지만, 작은 존재들의 승리는 감동과 희열을 주었다. 캥거루쥐는 피식자의 운명을 타고났지만, 늘 빼앗기기만 하는 피식자의 운명에 순응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힘의 질서를 어기며 그들과 맞서 싸우려고 하지도 않았다. 물리적 힘의 차이를 받아들이고, 집을 되찾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찾았을 뿐이다.


운명을 거역하지 않지만, 순응하지도 않는다.

 

말장난 같은 말속에 그들의 생존 전략이 담겨 있었다. 빠르게 변화하는 경쟁 사회에서 포식자가 되지 못하는 나에게도 필요한 전략이기도 하다. 재능이 없는 나를 비관하고 재능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며 시간을 낭비하지 않기로 한다. 대신 내가 가지고 있는 능력에 집중하고, 나의 능력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자 한다. 그 과정이 미련해 보일 수도 있고, 그 과정으로는 유의미한 결과에 늦게 도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연약한 아기 캥거루쥐가 극적으로 승리하는 장면처럼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찾아올 거라 믿는다.

 

 

*사진은 넷플릭스 유튜브 계정에 탑재된 Tiny Creatures 공식 예고편 영상을 캡처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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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연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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