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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W에서 한 뼘. [도서/문학]

"율의 시선"은 과연 어디를 향하는가

by 손가은 에디터
2025.12.24 12:42

 

 

소설을 읽는다는 것은 한 사람의 시선을 잠시 빌려 세계를 바라보는 일.

 

김민서 작가의 <율의 시선>은 바로 그 바라보는 “시선” 자체를 이야기의 중심에 두는 작품이다. 이 소설은 자극적인 사건이나 흥미진진한 갈등 서사를 사용하여 독자를 끌어들이기보다, 한 인물이 세계를 인식하는 방식에 천천히 함께 걷도록 유도한다. 제목이 암시하듯이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무엇이 일어났는가보다 그것을 어떻게 바라보았는가이다. 율은 말이 많지 않고 내면 또한 직접적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대신 그의 시선이 머무는 자리마다 감정과 의미가 조용히 쌓인다. 독자는 율의 눈을 통해 장면을 바라보며 그 인물이 쉽게 결론 내리지 않는 세계 앞에서 함께 멈춰 선다. <율의 시선>은 그렇게 읽는 독자의 속도까지 바꾸는 소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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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본다는 것

 

<율의 시선>에서 가장 먼저 인상 깊은 것은 율이 행동하는 인물이기보다 바라보는 존재로 더 크게 작용한다는 것이다. 율은 세계를 단정하지 않고, 앞서 나서 해석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율은 언제나 한 발짝 물러서서 사물과 사람, 그리고 순간들을 바라본다. 이런 작품의 문장은 빠르게 결론으로 도달하지 않고 마치 율의 눈이 무언가를 이해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것처럼, 머뭇거리며 감정의 결을 따라간다. 율의 시선은 날카롭기보다는 섬세하다. 어떠한 큰 사건보다 사소한 장면에 오래 머문다. 그 순간의 머묾 속에서 읽는 독자는 ‘보는 것’이 얼마나 조심스러운 행위인지 깨닫게 된다. 이 소설에서 시선은 단순한 관찰이 아니라, 타인과 세계를 함부로 규정하지 않으려는 태도에 가깝다. 율은 세상을 이해하려 애쓰지만,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 또한 받아들인다. 따라서 그 시선의 끝은 어디로 향할지 모른다. 이런 시선은 작품을 읽는 속도 자체를 늦추게 만든다. 우리는 율처럼 쉽게 판단하지 못하고, 장면 앞에서 잠시 멈추게 되고 그 멈춤 속에서 이 작품은 말한다, 이해보다 중요한 것은, 끝까지 바라보려는 마음일지도 모른다고.

 

 

5p “W에서 한 뼘.” 이 한마디를 주문처럼 기억하고 있다.

 

45p "사실은 말이지, 북극성이라고 불리면 나도 빛날것같아서“

 

46p "이름은 단순히 부르기 위해 있는 게 아니야. 기억하기 위해 있는 거지.”

 

 

 

말해지지 않은 감정들이 머무는 자리

 

<율의 시선>에서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인물이 무엇을 말했는가가 아니라, 무엇을 말하지 않았는가이다. 이 소설은 감정을 직접적으로 설명하기보다, 침묵과 여백 속에 감정을 남겨둔다. 어쩌면 침묵 속 이야기가 가장 큰 울림을 주는 것처럼 율의 내면 역시 명확한 언어로 정리되지 않는다. 대신 그의 시선이 향하는 방향, 머무는 시간, 지나치지 않고 바라보는 태도를 통해 감정이 조용히 드러난다. 이런 율의 소통 방식은 글자를 있는 그대로 해석하기보다 감각으로 느낄 수 있도록 만든다. 말해지지 않은 감정은 독자의 마음속에서 비로소 형태를 갖는다. 소설 속 여백은 독자의 경험과 감정을 불러들이며, 각자의 방식으로 채워진다. 그 결과 <율의 시선>은 모두에게 같은 이야기로 남지 않는다. 각자가 느낀 만큼, 바라본 만큼의 이야기가 된다. 율은 침묵을 불편해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안에 머물며, 감정이 스스로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 기다린다. 이 기다림은 이 소설의 가장 인상적인 태도이자, 가장 조용한 용기처럼 느껴진다.

 

 

 

시선이 남긴 여운

 

<율의 시선>을 다 읽고 나면, 선명한 장면이나 기억에 남을 만한 문장이 떠오르기보다는, 오히려 설명하기 어려운 감각이 먼저 남는다. 그것은 아마 율이 세상을 바라보던 방식이 독자의 마음속에 조용히 스며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끝내 율이 가진 시선은 어떤 결론에 도달하지 않는다. 그는 이해했다고 말하지도, 확신에 찬 판단을 내리지도 않는다. 그 대신, 모호한 상태를 그대로 안고 머문다. 이 태도는 읽는 이에게도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독자는 소설을 덮은 뒤에도 쉽게 정리하지 못한 감정 앞에서, 자신 역시 율처럼 잠시 멈춰 서 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독자에게 감정을 강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을 느껴야 하는지를 직접 말하지 않는다. 대신 비워진 자리를 남겨두고, 그 자리를 독자의 감각에 맡긴다. 그 여백 속에서 독자는 자신의 기억과 경험을 불러와 이야기에 겹쳐 놓는다. 그렇게 「율의 시선」은 읽는 사람마다 조금씩 다른 모습으로 완성된다. 김민서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거창한 메시지보다 하나의 태도를 보여준다. 모든 것을 이해하지 않아도 괜찮고, 감정이 분명한 언어로 정리되지 않아도 괜찮다는 태도. 중요한 것은 끝까지 바라보려는 마음 그 자체라는 사실이다. <율의 시선>은 그렇게 조용한 방식으로, 독자의 일상 속까지 따라와 오래 머문다.

 

어쩌면 불투명한 시선의 끝이 선명한 서로를 비출 때, 그 시선이 맞닿는 순간 그들은 서로가 되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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