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잎이 흩날리던 봄날이었다. 매년 보던 벚꽃잎을 유독 올해는 즐길 수 없었다.
벚꽃이 피고 지는 날까지 할아버지의 마지막을 함께했으니까.
마지막 인사와 함께 절을 드리는 순간, 이상하게 바람이 우리 쪽으로 불어와 절을 하는 내 위로 벚꽃잎이 떨어졌다. 같이 벚꽃을 보자던 약속이 무색할 정도로.
그래서 나는 예감했다. 아, 이제 벚꽃잎이 떨어질 때마다 할아버지를 떠올릴 수밖에 없겠구나.
그때의 벚꽃잎은 할아버지가 나에게 보내는 위로였을까. 아니다. 내가 할아버지께 하나라도 더 해드리지 못한 후회의 눈물이었다.
어쩌면 우리의 기억들은 어떤 사물로 입혀지게 될지다. 그렇기에 이 책 '우리가 가진 슬프고 아름다운 것들'은 우리의 기억을 정물화로 섬세하게 기록한다.
세계적인 작가이자 일러스트레이터인 마이라 칼만은 자신의 가족사를 톨스토이, 슈만, 체호프, 카프카 같은 다른 예술가들의 생애 곁에 나란히 놓는다. 그가 불러온 이름들은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톨스토이, 슈만, 체호프 등 다양한 업적 뒤에 가려진 그들의 이야기는 상실과 후회, 배신으로 가득하다. 남편 로베르트 슈만을 비극적으로 떠나보내고도 일곱 남매를 홀로 키워낸 피아니스트 클라라 슈만처럼. 그리고 이 유명한 이름들 사이에는 칼만 자신의 부모님 이야기도 섞여 있다.
아버지를 견디지 못해 집을 떠나야 했던 어머니, 그리고 말년에 치매를 앓다 요양원에서 홀로 세상을 뜬 아버지.
"나의 아버지는 요양원에서 돌아가셨다. 온순하고 치아도 다 빠진 채로. 어쩌면 아버지는 상상했으리라. 그의 침대 곁에 놓인 꽃들을. 신선한 과일을.
하지만 누가 그것들을 가져다주겠는가?"
후회란 결국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끝내 해주지 못한 사소한 것들에서 비롯된다는 걸, 이 한 문장이 말해준다.
우리말로 '우리가 가진 슬프고 아름다운 것들'의 원제는 'Still Life with Remorse'로, 삶과 함께 후회를 말한다. 단순한 후회를 넘어 이 책에서는 '회한'이라는 단어로 정의되는데, 자신이 내린 결정에 대해 잘못되었다고 느끼는 깊은 탄식이 느껴진다. 옮긴이 한정원은 이를 두고 "후회는 삶의 실패가 아니라 삶의 흔적"이라고 적었다. 그 말대로 이 책은 후회를 부끄러워하거나 숨기지 않는다.
이 책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된 후회가 여전히 남아 혼란스럽게 만든 오해들의 연속, 사랑하는 또는 사랑했던 이들과 함께 만든 길, 결국 내가 다른 사람을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다는 자책까지. 이내 '만약 ~라면', '~했을 수도 있다'는 가정법으로 시작된 후회들이 겹치고 엮이며 눈 깜짝할 사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기 시작한다. 다만 이렇게 많은 인물과 사연이 짧은 호흡으로 스쳐 지나가다 보니, 몇몇 이야기는 충분히 머물기도 전에 다음 장으로 넘어가 버린다는 아쉬움도 남는다.
하지만 그 사이사이, 눈덩이만큼 불어난 후회를 잠재워줄 따뜻함도 있다. 짧은 순간순간 사이사이 놓인, 정갈하게 꽂혀 있는 꽃병 속 꽃들과 잠깐의 막간의 노래가 여러 이유로, 또는 알지 못하는 이유로 다가온다. 그렇게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후회한다. 그리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사랑하고 살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