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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그저 바라보던 명화들이 한 시대를 기록한 생생한 역사로 다시 읽히는 순간


많은 이들에게 역사는 시험을 위해 외워야 했던 과목으로 기억된다. 연도와 사건을 암기하는 방식 속에서 역사는 흥미를 잃었고, 성인이 된 이후에도 쉽게 다시 손이 가지 않는 영역이 되었다. <시간을 읽는 그림>은 바로 그 지점에서, 역사를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다른 접근법을 제시한다.


이 책은 최초 문명이 탄생하던 시기부터 현대 사회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를 대표하는 명화를 중심으로 역사를 풀어낸다. 그림은 설명의 보조물이 아니라, 시대를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언어로 기능한다. 저자 김선지 작가는 저자는 이화여자대학교에서 역사를 전공하고 동 대학원에서 미술사와 현대미술을 공부했다. 역사·과학·예술을 넘나드는 글쓰기로 《싸우는 여성들의 미술사》를 비롯해 다수의 미술 교양서를 집필하며, 현재 집필과 강연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시간을 읽는 그림>의 가장 큰 차별성은 역사와 예술이라는 두 영역을 자연스럽게 결합했다는 점에 있다. 독자는 역사를 공부한다는 부담 없이 명화를 감상하는 과정에서, 동시에 그 그림이 탄생할 수밖에 없었던 시대적 배경을 함께 이해하게 된다. 이는 특히 암기 중심의 역사 교육을 경험한 세대에게 역사를 다시 흥미롭게 접근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준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가장 인상 깊게 읽은 대목은 르네상스 이후 근대 사회를 거쳐 인상주의로 이어지는 흐름이었다. 인상주의는 오래도록 내가 좋아해 온 미술 사조지만, 그 호감은 주로 색감과 빛, 순간의 분위기처럼 감각적인 요소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이 책은 인상주의를 ‘아름다운 그림의 양식’이 아니라, 산업화와 도시화, 계급 구조의 변화 속에서 탄생한 시대의 결과물로 위치시킨다. 철도가 놓이고 도시의 일상이 재편되던 시기, 인상주의 화가들이 포착한 장면들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변화하는 사회를 살아가던 개인의 감각이 응축된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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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ustave Caillebotte, Jour de pluie à Paris, 1877. (Image via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이 책을 읽으며 특히 인상 깊었던 사례 중 하나는 귀스타브 카유보트의 '비오는 날의 파리 거리'에 대한 해석이었다. 이 작품은 그동안 여러 매체를 통해 자주 접해왔지만, 나는 그저 비 오는 날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풍경 정도로만 인식해왔다.


그러나 <시간을 읽는 그림>은 이 장면을 19세기 파리에서 ‘산책’이 하나의 문화로 자리 잡던 시기의 단면으로 읽어낸다. 정비된 도로와 넓은 보도, 여유롭게 거리를 거니는 인물들은 우연히 포착된 장면이 아니라, 도시 구조의 변화와 함께 등장한 새로운 삶의 방식이었다.

 

 

벨 에포크 시대가 탄생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제3공화국 체제하의 정치적 안정과 제2차 산업혁명으로 인한 경제적 성장이 있었다. 동시에, 이 시기는 100여 년에 걸친 혁명과 전쟁의 소용돌이에 대한 반작용으로도 이해할 수 있다.

 

- <시간을 읽는 그림>, p.286

 

 

이러한 독자의 경험을 통해 인상주의는 취향의 대상에서 이해의 대상으로 확장된다. 좋아하던 그림을 새롭게 바라보게 만드는 경험은, 이 책이 지닌 가장 설득력 있는 강점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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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Henri de Toulouse-Lautrec, La danse au Moulin Rouge, 1890. (Image via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또한 이 책은 동시대에 활동한 화가들조차 서로 전혀 다른 장면과 분위기를 포착했다는 점을 흥미롭게 보여준다. 같은 벨 에포크 시대를 살아갔음에도 르누아르는 밝고 온화한 색채로 안락한 일상의 순간을 그려냈다면, 툴루즈 로트레크는 몽마르트르의 밤과 무대 뒤편에서 드러나는 욕망과 열정의 장면에 시선을 고정했다.

 

특히 '물랭루주에서의 춤'과 같은 작품은 화려함 이면의 에너지와 긴장을 고스란히 드러내며, 근대 도시가 품고 있던 또 다른 얼굴을 보여준다. 이를 통해 한 시대는 단일한 분위기로 환원될 수 없으며, 예술은 각기 다른 시선으로 같은 시간을 기록해왔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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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가 넘쳐나는 현대 사회에서 우리는 수많은 장면을 소비하지만, 그 이면을 읽는 데에는 익숙하지 않다. <시간을 읽는 그림>은 그림 한 장이 어떻게 시대의 권력 구조와 사상, 인간의 욕망과 맞닿아 있는지를 보여주며, 이미지를 맥락 속에서 해석하는 시선을 길러준다. 과거의 명화를 다루는 이 책이 지금의 독자에게도 유효한 이유다.


그런 점에서 <시간을 읽는 그림>은 역사를 쉽게 설명하는 책이라기보다,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을 바꾸는 책에 가깝다. 그림을 통해 시간을 읽는 경험은 과거를 이해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우리가 현재를 바라보는 시선까지 확장시킨다. 역사에 흥미를 잃었던 독자, 미술을 좋아하지만 배경지식을 쌓는 것에 어려움을 느꼈던 독자 모두에게 이 책은 충분히 매력적인 출발점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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