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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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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고당도>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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십자가 진 가족


 

무언가를 바라는 것만으로도 죄가 될 수 있을까? 영화 <고당도>의 세 식구는 저마다의 십자가를 지고 있다. 그 십자가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늘어져 화살처럼 서로를 겨냥한다. 이들의 장례식장에 가득한 검은색은 스크린을 넘어 우리의 웃음 속에 스며든다. 이 영화가 ‘블랙코미디’인 이유는 단지 죽음을 유쾌하게 다루기 때문만이 아니다. <고당도>는 가족의 죽음 앞에서 드러나는 민낯을, 마치 참지 못하고 터져 나오는 실소처럼 우리 앞에 슬며시 들춰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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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7일 개막하는 제51회 서울독립영화제 페스티벌 초이스 부문 장편 쇼케이스에서 공개를 앞둔 <고당도>는 실력파 신예 감독 권용재의 단편 데뷔작이다. 영화는 뇌사 상태의 아버지를 돌보던 간호사 ‘선영’, 사채업자에 쫓겨 다니는 남동생 ‘일회’, 일회의 아내 ‘효연’, 의대에 합격한 조카 ‘동호’의 이야기를 그린다. 동호의 의대 등록금이 급했던 선영의 가족은 미리 작성해 둔 부고 문자를 발송해 버린 효연의 실수를 계기로 ‘가짜 장례 비즈니스’를 시작한다.


 


돈이 뭐길래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만큼 인간을 비인간적으로 만드는 것이 있을까. 아버지의 임종이 임박했다는 소식 앞에서 선영과 그녀의 가족들은 애써 덤덤하다. 슬픔을 감추기 위한 덤덤함이 아닌, 들뜸을 감추기 위한 덤덤함이다. 아버지의 죽음으로 선영은 돌봄 노동에서 해방되고, 일회네 가족은 중요한 목적을 달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돈 벌러 왔어.”라는 말 속에 자리한 뻔뻔함은 그들에게는 대수로운 일이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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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의 뻔뻔함은 효연이 미리 작성해 놓은 부고 문자를 실수로 발송하면서 가속화된다. 수신인은 조문객 리스트 가운데 가장 부유한 금순 고모. 의대 진학을 꿈꾸는 조카 동호가 돈 때문에 입시를 포기하는 것을 두고 볼 수 없었던 선영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는다. 비어 있는 지하 빈소를 몰래 위장해 끝내 고모의 부조금을 받아내는 이들의 모습은 씁쓸한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위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병원까지 찾아온 사채업자들을 보고 겁에 질린 일회가 부조금을 빼돌린 것이다. 결국 그들의 가짜 장례는 단순한 해프닝을 넘어 본격적인 비즈니스로 발전한다. 병원과 장례식장이 계열은 같지만 왕래는 없다는 허점을 파고드는 이들의 작전은 ‘저게 되나?’ 싶은 의구심을 불러일으키면서도 조마조마하면서 지켜보게 만드는 스릴감이 있다. ‘부조가 먼저다’라는 카피처럼, 돈을 향한 그들의 곡예 앞에서 애도는 뒷전이 되어버린다.


 


가족의 두 얼굴


 

순조롭게 진행되던 그들의 육개장 장사는 뜻밖의 사건으로 다른 국면을 맞이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줄 알았던 조카 동호의 반란이다. “저희 아빠 장례도 치러주세요.”라는 충격적인 말에는 가족의 사정을 배려해 입시에 뜻이 없는 체하면서도 내심 빚쟁이 아버지가 사라지면 모든 게 해결된다고 생각했던 동호의 마음이 담겨있다. “고모도 할아버지 죽길 바라잖아요.” 서늘하게 말하는 동호의 얼굴은 반은 빛에 드러나고, 반은 어둠에 잠겨있다. 마치 야누스의 두 얼굴처럼. 조카만은, 동호만은 가족들과 다르길 바랐던 선영의 억장이 무너진다.


그렇게 만들어진 일회의 가짜 빈소. 그동안 모두를 속여왔던 그들의 작전도 사채업자들에게는 무용지물이었다. 빈소는 순식간에 난장판이 되고, 가족들은 무자비한 폭력의 희생양이 된다. 그 참혹한 광경에 웃음은 사라지고, 블랙코미디를 넘어 지독한 부조리극으로 장르가 바뀌어 버린다. 결국 사채업자들은 정신을 잃은 일회와 함께 부조금을 챙겨 떠난다. 도중에 의식을 되찾은 일회는 사채업자들과 실랑이를 벌이다 하천에 몸을 던지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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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채업자들은 떠났지만, 119에 신고조차 하지 못하는 가족들. 그때 동호가 기지를 발휘해 탈취한 구급차에서 산소 호흡기를 가져온다. 여기서 동호의 잔인한 속내를 비추던 빛은 다시 그의 다른 이면으로 역전된다. 어쩔 땐 차라리 사라졌으면, 싶다가도 나쁜 소식을 들으면 모든 걸 제쳐두고 달려가게 하는 사람들. 부고 문자를 받고 공항에서 황급히 유턴하고, 멈춰버린 심장을 뛰게 하려고 몸을 던지게 만드는 사람들. 그것이 가족이다.


 


귀신은 누구인가


 

고인(故人) 없는 그들의 장례식에서 죽음의 그림자는 아버지 대신 자식들에게 드리운다. 장례식장 관리인의 손전등 불빛에 비친 선영의 얼굴은 공포영화에 나올 법한 비주얼로 코믹하게 연출된다. 불 꺼진 지하 빈소에 무표정하게 서 있는 선영의 모습은 그야말로 귀신 같다. 일회는 사망진단서까지 받게 된다. 가족들이 사채업자들의 눈을 피해 일회를 빈소 옆방으로 떠밀자 일회의 눈앞에서 닫히는 문은 마치 관뚜껑처럼 연출된다.


결국 생사의 문턱을 넘은 것은 뇌사 상태의 아버지가 아닌, 죽기도 전에 고인이 된 아들 일회였다. 무엇이 이토록 그들을 저승으로 내몰았을까. 가까스로 의식을 되찾은 일회가 품속에서 꺼낸 것은 돈뭉치였다. 동호를 의대에 보내겠다는 그들의 최종 목표는 결국 달성된 셈이다. 마침내 병실로 돌아와 아버지의 침대를 둘러싸고 잠든 가족들의 지친 얼굴은 뭉클한 감동을 자아낸다. 인간의 영혼을 좀먹고 산 사람들을 돈의 망령으로 만드는 자본주의 사회의 검은 손길을 뿌리치고, 그들은 어쨌거나 해냈다.


 


달고 떫은 것은


 

설익으면 떫고, 무르면 달고. 생으로도 먹고, 곶감으로도 만들고, 홍시로도 만들고, 감은 참 다채로운 과일이다. 또 어딘가 못마땅해 보이는 사람에게 우리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떫어?” 선물부터 제사상 음식에 이르기까지 <고당도>에서 꾸준히 등장하는 이 ‘감’은 특별한 상징적 위치를 점유한다. 가족이라고 해서 늘 사랑만 가득할 순 없다. 때론 달고, 때론 떫어서 마냥 좋아만 할 수도, 마냥 미워만 할 수도 없는 게 가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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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당도>의 가족에서도 감의 두 가지 맛이 난다. 선영과 일회는 아버지의 죽음을 바라면서도 연명 치료를 중단하지 못하고, 동호는 일회가 사라지기를 바라면서도 누구보다 빠르게 나서서 아버지의 목숨을 구한다. 떫은 감이라도 버리지 못한다. ‘고당도’라는 제목은 죽음을 뜻하는 ‘고(故)’와 ‘당도’의 합성어로 죽음 앞에서 드러나는 가족의 맛을 나타낸다. 일회의 구사일생을 계기로 서로의 달디단 맛에 당도한 가족들의 앞날은 어떠할까.


떫었다가, 달았다가 이리저리 헤매다 정신 차려 보면 달달한 엔딩에 당도하는 이 영화의 매력 역시 감을 닮았다. 블랙코미디라는 장르답게 무심코 웃다가도 깊은 생각에 잠기게 만드는 작품이다. 1년 365일 사랑이 넘쳐흐르는 화목한 과정은 오히려 드물 것이다. 그런 점에서 <고당도>의 주제 의식은 어느 정도의 보편성을 갖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우리 가족의 시간에 어떤 단맛과 떫은맛이 있었는지 돌이켜보는 것도 이 영화의 여운을 즐기는 좋은 방법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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