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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아이스 아메리카노 산미 있는 걸로 한 잔 주세요 [음식]

우리가 커피를 사랑하는 이유

by 김서현 에디터
2025.10.31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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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니지오. 요즘 내가 즐겨 마시는 네스프레소 커피 캡슐이다. '꽃향과 곡물향의 조화'라는 설명처럼 산미가 과하지 않을 정도로 느껴지는, 향긋한 맛을 가진 캡슐이다.


일이 없는 날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버츄오 머신으로 추출해 커피를 마시고 일이 있는 날엔 출근하자마자 커피를 내린다. 나름 하루 한 잔만 먹겠다는 나만의 약속이다. 물론 이 약속은 거의 지켜지지 않기도 한다.


커피는 커피나무에서 생산된 생두를 일정 시간 동안 볶은 뒤 곱게 분쇄하고 물을 이용하여 그 성분을 추출해 낸 음료로, 추출 방식과 재료의 조합에 따라 핸드드립, 콜드브루, 아메리카노, 라테 등 다양한 종류로 구분된다.


그렇다면 이토록 쓰고 어두운 갈색의 물은 왜 현대인들에게 필수적인 음료가 되었을까.

 

 

 

각성효과


 

매일 아침 모닝커피로 시작하며 이른바 '카페인 수혈'을 받는 사람이 많다. 커피를 마시지 않으면 도저히 정신이 차려지지 않기 때문이다. 커피로 잠을 쫓아내고 정신을 맑게 하여 일에 집중할 수 있는 몸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니까, 이제 현대인들에게 커피는 업무의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의식이 된 셈이다.


커피가 가진 카페인은 졸음을 유발하는 아데노신 호르몬과 화학적 구조가 비슷하다. 커피를 마시고 10분이 지나면서부터 혈액 속에 카페인이 나타나기 시작하고, 체내에서 아데노신을 대신해 아데노신 수용체와 결합하면 아데노신의 수면 유도 기능이 차단되는 원리이다.

 

 

 

커피 한 잔이라는 단어가 주는 시간적 관용


 

바쁘고 치열한 일상 속에서 커피 한 잔은 잠깐의 휴식을 허용하는 유일한 명분이 된다.


커피를 내리는 행위는, 고단한 하루의 시작을 알리는 의식이면서도, 동시에 역설적으로 커피 한 잔의 여유라는 틈을 만들어준다. 20초 남짓, 커피가 추출되는 모습을 바라보며 잠깐의 여유를 즐기기도 한다.


하지만 대체로 여유롭지 못한 순간에 커피를 마신다. 근무지에서 커피는 잠깐 짬을 내어 마시는 생명수 같은 존재가 되었다. 너무 바빠 커피 한 잔 내릴 여유조차 없을 때면 '오늘은 나에게 조금의 휴식도 허용되지 않았구나'하고 생각에 잠기기도 한다. 그렇게 겨우 한 모금 마시면서 동료와 나누는 짧은 대화에 조금은 긴장이 풀린다.

 

 

 

커피를 마시는 분위기 자체


 

아침 일어나자마자 직접 만든 브런치를 예쁜 접시에 담아 커피와 함께 마시는 시간을 사랑하고, 여행지에서 남들보다 조금 일찍 일어난 사람끼리 테라스에서 즐기는 모닝커피를 사랑한다.


"커피 한잔하실래요?" 이 짧은 문장에서 커피는 단순히 음료를 떠나 우리 사이 대화를 위한 귀여운 핑곗거리가 된다. 커피를 앞에 두고 주고받는 말들은 때로는 깊은 사유로 이어지기도 한다. 뜨거웠던 커피가 다 식어버리기도 하고 머리가 깨질 듯 차가웠던 커피의 얼음이 다 녹아버리기도 한다. 그만큼의 대화와 시간이 우리 사이에 녹아 있다는 느낌이 들어 어딘가 마음이 말랑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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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문화도 빨리빨리


 

한국만의 커피 문화는 사실 믹스커피와 아이스 커피에서 시작됐다.


빨리빨리의 민족답게, 동서식품에서 커피, 설탕, 프리마를 섞어 만든 커피믹스를 개발하면서 한국에서의 커피 문화는 완전히 바뀌었다. 그전까진 다방에서만 마실 수 있었던 커피를, 뜨거운 물과 종이컵만 있으면 어디서든 쉽게 즐길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렇게 커피는 노동의 현장에서 마시는 국민 음료로 자리 잡았다.


시간이 흐르며 미국의 스페셜티 커피 문화가 들어오면서 사람은 점점 커피의 맛과 향에 더 큰 관심을 가지며 자신만의 취향을 찾기 시작했다.


요즘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면 원두를 고르라는 카페를 흔히 볼 수 있다. 나는 거의 고민도 하지 않고 산미 있는 원두를 고른다. 어느 순간부터 산미 있는 원두만 찾게 된 나는, 이젠 이상하게도 고소한 커피는 자칫 탄 맛이 나는 것 같다는 편견이 굳어지려던 참이었다.


얼마 전 커피 한 잔 내릴 여유조차 없던 날, 원장님께서 1층에서 사다 주신 커피를 감사히 받아 급하게 벌컥벌컥 마셨는데, 코끝에 남는 고소한 향이 놀랍도록 선명했다. 확고했던 취향과 편견이 조금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조금의 틈도 없이 바쁜 일상 속에서도 여전히 커피 한 잔은 내게 새로운 순간을 선물했다.


물론, 절대 변하지 않는 취향도 있다. 바로 얼.죽.아.


'얼어 죽어도 아이스'라는 이름에 걸맞게 나는 시리도록 추운 겨울에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고집한다. 그리고 얼죽아협회에서 단 한 번도 탈퇴해 본 적이 없다. 뜨겁고 짠 점심 식사 후, 다시 책상 앞에 앉아야 하는 한국인들에게 물처럼 들이킬 수 있는 아이스 커피의 유행은 어쩌면 필연적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빨리빨리 마시던 커피를 드디어 여유롭게 즐기며 글을 쓰는 지금의 분위기가 너무 좋다. 커피를 내리고, 향을 맡고, 맛을 음미하는 시간 속에서 나는 잠시 사유의 시간을 갖는다. 내일은 혼자가 아닌 둘이, 텀블러가 아닌 유리컵에 커피를 내려 마시며 우리 사이의 대화를 이 향긋한 커피 안에 녹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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