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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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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25 쿠팡플레이 시리즈' 뉴캐슬 유나이티드와 토트넘 홋스퍼의 친선 경기를 다녀왔다. 이 경기는 손흥민 선수가 토트넘 소속으로 뛰는 마지막 경기이기도 했다.


축구장을 찾는 일이 처음은 아니었다. 축구 경기를 보는 것도 이제는 일상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이날은, 이상하게도 유독 가슴이 두근거렸고, 문득 울컥했다.


누구에게나 자신을 가슴 뛰게 하는 공간이 있을 것이다. 어떤 이에게는 좋아하는 가수의 공연장일 수도 있고, 어떤 이에게는 아무런 계획 없이 떠난 낯선 여행지일 수도 있겠다.


나에겐 스포츠 경기장이 그렇다. 수많은 감정이 묻어 있는 곳, 벅찬 마음을 마음껏 드러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곳.


축구 경기장은 유일하게 나를 뜨겁게 만드는 공간이다.

 

 


거대한 비현실 속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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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 검사를 마치고 입장을 위해 오르막길을 따라 걷다 보면, 서서히 경기장의 전경이 눈 앞에 펼쳐진다. 푸른 하늘 아래 푸릇푸릇한 잔디, 점처럼 보이는 수만 개의 좌석, 그 자리를 가득 채운 사람들. 경기장 전체에 쿵쿵 울려 퍼지는 음악은 경기가 시작되기도 전에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든다.


축구 경기장은 물리적으로 거대한 공간이다. 그 몇천 분의 일밖에 되지 않는 내가 그 안으로 들어서는 건, 그 자체로 비현실적인 체험처럼 느껴진다. 단지 경기 관람 전의 설렘 때문만은 아니다. 그 공간의 규모나 구조는 순간 나를 압도하고 그곳을 더 특별한 공간으로 인식하게 한다.


6만 명 이상이 모일 수 있는 이 거대한 공간은 참 신기하다. 숨 막히는 긴장 속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숨을 죽인 채 공만 바라보다가도, 골이 터지는 순간 폭죽처럼 터지는 환호가 경기장 전체를 뒤흔든다. 수만 명이 동시에 하나가 되는 장면은 언제 봐도 경이롭다.


이곳에 들어설 때면 마치 거대한 VR 체험관에 서 있는 기분이 든다. 경기장은 추억을 품고 있어, 각자의 가슴 속에 영원토록 남아있는 명장면을 다시 소환해 추억을 되새기게 하는 공간이다.

 

짜릿했던 결승 골, 내가 사랑하는 선수의 고별전, 그날의 환호와 눈물까지. 이곳은 그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잔디가 간직한 추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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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화이트 하트 레인 고별전 기념 전시물 : 센터 스팟

 

 

지난달 말, 마포구에서 진행된 토트넘 x 타이거 맥주 팝업바 '스퍼스 덴'에서는 2017년 화이트 하트 레인의에서의 마지막 경기가 열린 후 보존용으로 채취된 센터 스팟의 잔디가 전시됐다.


센터 스팟은 경기가 시작되고 재개되는 출발점이다. 수많은 역사적 장면이 이 스팟에서 시작되었다.


축구 경기장이라는 공간은 그 자체로 상징적이지만, 그 안의 모든 것이 팬들에게는 또 다른 의미가 있다.


토트넘의 옛 홈구장, 화이트 하트 레인은 16-17시즌이 끝난 후 완전히 철거되었다. 그 자리엔 현재 토트넘의 홈구장인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이 들어섰고 2019년 4월 3일 개장하였다.


2017년 5월 14일, 화이트 하트 레인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를 끝으로 문을 닫았다. 이날 경기장에 종료 휘슬이 울려 퍼진 후, 수천 명의 관중이 그라운드로 쏟아져 나와 각자의 방식으로 정들었던 홈구장에 작별 인사를 건넸다.


118년 동안 울고 웃었던, 말 그대로 '집' 같았던 곳과의 이별이라 더욱 특별할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는 경기장의 안내판을 뜯어가는가 하면, 잔디를 뽑아가는 팬도 있었다. 팬들에게 안내판과 잔디는 단순히 기념품이 아니었을 것이다. 선수들의 땀과 눈물이 떨어져 있는 곳, 팬들의 함성과 환호가 배어 있는 곳. 언제나 함께였던 '더 레인'의 일부를 가져가며 영원히 그 추억을 간직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This Keyring contains blades of grass taken from White Hart Lane's pitch; our world famous home for 118 years."


팬들의 이런 마음을 잘 알아준 걸까. 구단은 화이트 하트 레인의 피치에서 가져온 잔디로 만든 키링을 판매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7년, 토트넘 홋스퍼 스타디움에서는 새로운 추억이 차곡차곡 쌓이고 있다.

 

손흥민 선수는 개장 후 첫 경기에서 선제골을 넣으며 스타디움의 1호 득점자가 되었고, 구단 최초 아시아인 주장이 되었으며, 마침내 주장으로서 팀의 숙원이었던 유로파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7년 사이 많은 선수가 팀을 떠났고, 또 새로운 얼굴들이 찾아왔다. 그리고 그동안, 이 구장에서 수많은 상징적인 경기가 펼쳐졌다. 스포츠에 영원한 것은 없다고들 하지만, 우리가 함께한 잊지 못할 추억과 낭만은 여전히 그곳에 묻어있다.


어릴 적엔 내 몸집이 작아서 그곳이 더 크게 느껴졌을 수도 있다. 시간이 흘러 몸이 다 자라고 나서 다시 찾은 그곳은, 여전히 나를 압도했다.


나는 이곳이 내게 영원히 가슴 뛰는 곳으로 남았으면 한다. 세월이 지나고, 내 몸과 마음이 지금보다 더 커져도, 그곳에서만큼은 절대 무뎌지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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