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81년에 창단된 홍콩무용단은 현대적 감각 속에서 홍콩의 정체성과 중국 전통 춤의 미학을 결합해 온 대표적인 무용단이다. 지금까지 200편이 넘는 작품을 선보이며, 전통의 재해석과 현대적 표현 사이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가능성을 탐구해왔다.
이번 홍콩위크 2025 서울에서는 국립국악원과 홍콩 정부가 공동 주최로 선보이는 창작무용극 <천상의 리듬을 담은 춤-24절기>를 통해 그들의 예술적 시도를 다시금 확인할 수 있었다.
예술감독을 맡은 양윤타오는 고전적 신체 언어를 사유의 움직임으로 확장시키는 연출가다. 그의 작품에는 절제된 에너지와 세밀한 리듬, 그리고 몸을 통해 사유하는 무용의 본질에 대한 깊은 탐색이 깃들어 있다.
자칫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 무용의 세계가 이번 공연에서는 유난히 친숙하게 다가왔다. 계절과 시간의 흐름이라는 누구나 경험하는 그 변화를 오감으로 체감할 수 있도록 무대 위에서 섬세하게 풀어냈기 때문이다. 그 속에서 춤은 단순한 움직임을 넘어, 자연과 인간의 리듬이 맞닿는 순간의 예술로 피어났다.
소곤한 몸짓에 대해
무용은 늘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대사도, 가사 있는 음악도, 뚜렷한 이야기도 없이 오직 몸의 움직임만으로 관객에게 말을 건넨다. 그런 무용을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또 무엇을 느껴야 하는가. 그러나 그 답은 하나로 지시되지 않는다.
무대는 각 절기를 뚜렷하게 설명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감각의 여백을 남긴다. 관객은 가만히 무용수들의 몸짓을 보며 절기 자체를 그대로 읽기보다, 그 시간 속에서 살아가는 인간과 자연의 관계를 떠올리게 된다.

봄의 시작을 알리는 장면에서 흰 천을 두르고 포개어 엎드린 몸이 있다. 이 몸에서 피어나는 작은 몸짓 하나가 공기를 흔들고, 미세한 움직임이 공간의 결을 바꾼다. 그 섬세한 파동 속에서 시선은 점차 해석을 멈추고, ‘보는 행위’ 그 자체에 집중하게 된다.
그 순간, 무용은 언어 이전의 언어로 다가온다. 몸이 스스로 의미가 되는 순간이다. 관객 또한 하나의 몸으로 그 리듬을 받아들이게 되며, 무대의 일부가 된다.
24절기 계절의 흐름
〈24절기〉는 자연의 시간, 인간의 호흡, 그리고 생명의 흐름을 감각적으로 직조한 작업이다. 각 절기마다 변화하는 자연의 리듬과 인간의 삶을 감각적으로 풀어내며, 고대의 지혜와 정취를 현대적인 무대 언어로 다시 짜여졌다.
조명은 계절의 변화를 빛의 농도로 그려낸다. 봄의 연한 빛은 서서히 번지고, 여름의 강렬함은 붉게 타오르며, 가을은 음영이 깊어지고, 겨울은 차갑게 수축한다. 의상은 절기의 색과 질감을 담아 몸의 움직임과 함께 살아나고, 음악은 그 계절 사이를 유연하게 이어주는 하나의 통일된 스펙트럼이 된다.

무용수들의 몸짓은 때로는 바람에 스치는 잎사귀처럼 가볍고, 때로는 묵직하게 땅에 뿌리내린다. 군무 장면에서는 일정한 발소리가 이어지며, 마치 계절이 흘러가듯 시간의 흐름을 체현한다. 그 안에는 자연의 변화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모습, 그리고 때로는 그 변화에 맞서 버텨내려는 생의 의지도 함께 스며 있다.
의상, 음악, 무대 디자인 모두 한국의 대표적인 아티스트들이 참여해 완성도를 높였다. 전통의 정서를 기반으로 하지만, 특정 지역이나 시대에 머물지 않고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보편적인 감각으로 확장된다.
그렇게 〈24절기〉는 ‘흐름’의 예술이 된다. 계절과 계절이 맞닿는 경계, 몸과 자연이 교차하는 지점에서, 춤은 단순한 움직임이 아니라 시간의 결을 감각하게 만드는 매개로 기능한다.
계절과 무용, 그리고 바라보는 몸까지, 그저 흐르기

공연이 끝난 후 남는 것은 결국 무용이라는 것도, 시간이라는 것도 모두 흐름 속에서만 의미를 가진다는 사실이다. 계절이든 공연을 감상하는 일이든, 너무 의식하려 들면 부자연스럽고 불편해진다. 반대로 의식을 내려놓고 흐름에 몸을 맡기는 순간, 모든 것이 스스로 제자리를 찾는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언어는 잠시 내려두고, 몸의 언어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공연을 진정으로 관람할 수 있게 된다. 무용수들의 움직임 속에서 계절이 스며들고, 시간의 리듬이 공간을 메우며, 그제서야 관객 또한 자신도 모르게 그 흐름의 일부가 된다. 숨결 하나, 발끝의 떨림 하나까지 자연스레 작품의 일부가 되고, 몸과 마음이 같은 박자를 공유할 때 비로소 공연의 여운이 남는다.
무용수들의 발끝이 바닥을 스치는 소리, 팔과 몸이 공기를 가르는 진동, 조명과 그림자가 만드는 미세한 변화까지 모두 하나의 리듬으로 이어진다. 관객은 시선과 호흡을 따라 자연스레 움직임에 동조하며, 자신도 모르게 무대와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한다.
그런 점에서 결국 몸은 가장 세계적이고 보편적인 언어가 된다. 홍콩과 한국의 협업으로 이루어진 이 공연이 그러하듯, 말이 다르더라도 몸이 주는 감각과 리듬은 누구에게나 전달된다. 그것이 바로 <24절기>가 우리에게 주는 의미 아닐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