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유튜브 알고리즘이 내게 한 영상을 추천했다. “로스쿨 자퇴, 새로운 시작!”이라는 제목이었다. 꽤나 이목을 끄는 문장이라 홀리듯 클릭하게 되었다. 영상 속 인물은 유정은, 유튜브 활동명은 "댕은"으로, 로스쿨을 관두고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는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였다. 그녀의 행보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 그리고 무엇보다 응원하는 마음을 담아 구독하게 되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위해 도전하고 노력하는 사람은 언제나 빛이 난다.
얼마 후, 나는 그녀가 시작한 매거진 <스탠드포인트>를 구독하게 되었다. <스탠드포인트>는 한 달에 한 번 배송이 오는 "삶을 밀도 있게 살아가고 싶은 이들을 위한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이다. 에세이, 콘텐츠 큐레이션, 인터뷰 등 각 호마다 다루는 주제는 다르지만, 모두가 ‘자기만의 가치관’을 형성하고 살아가도록 돕는다는 공통된 목표를 지닌다. 그녀가 매거진의 작가로 글을 쓰는 모습과 내가 아트인사이트의 에디터로 글을 기고하는 모습에서 묘한 동질감을 느꼈다.
나는 책을 읽는 것 외에는 온라인으로 글을 읽는 것이 익숙했기에 우편함 속에 내 이름과 주소가 적힌 봉투를 꺼내 종이의 질감을 느끼며 매거진을 펼치는 경험은 새로웠다. 산타클로스는 크리스마스에 선물을 주지만, 나는 한 달마다 나에게 선물이 배달되는 기분이었다.
Vol.1 : New me, New start, New Life
창간호이기에 궁금증이 컸다. 매거진이지만 구성이 특이하다. 접었을 때는 A4 반절의 크기이지만 펼치면 A2크기가 된다. 한쪽 면에는 직접 촬영한 사진의 포스터가 있고 반대쪽에는 글이 있어서 글을 다 읽은 후에는 인테리어용으로 매거진을 벽에 부착할 수 있다.
이 호에서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왜 이 매거진을 시작했나요?"에 대한 답변이다. 로스쿨과 라이프스타일 매거진은 언뜻 보기에는 거리가 멀어 보이지만, 그녀는 “100% 좋아하는 것을 따라왔다”고 한다. 또한, 매거진에서는 태도를 갖추기 위해서는 그것을 왜 하는지에 대한 자기만의 이유가 있어야 하며 작가는 "꾸준히 쓰는 사람이 되고 싶어서, 그리고 누군가의 삶에 활력을 주고 싶어서" 이 매거진을 쓰고 있다고 한다.
나 또한 내가 글을 쓰는 이유를 다시 떠올렸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이야기와 비주얼이 있는 콘텐츠라면 사랑했었는데, 성인이 되고 미대를 졸업한 후에 오히려 문화예술과 멀어지게 되었다. 글을 쓰면서 이를 회복하고 싶었다. 그리고 다양한 사람들이 문화예술을 바라보는 시각을 나누고 서로의 감상을 공유하는 이 공간이 좋아서, 나 또한 에디터가 되어 내가 보고 느낀 예술을 글로 전하고 싶었다. 지금은 단 한 명이라도 내 글을 통해 예술과 가까워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쓴다.
Vol.4 : Collection 수집
뉴욕 여행과 수집을 주제로 한 호였다. 가장 재미있었던 콘텐츠는 작가가 수집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그린 마인드맵이었다. 무엇을 수집하느냐를 보면 그 사람을 더 잘 알 수 있다.
나 역시 수집광이다. 한때는 '수집'과 '취향'이 소비 관점에 편중되어 있다는 것이 불편했다. 내가 산 물건과 내가 듣는 음악 같은 것들이 나를 표현한다는 게 물질적이고 표면적이며, 심지어 나를 포장하는 껍데기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면 수집이란 결국 ‘선택’이다. 수집할 때면 다른 후보 중에서 내 마음에 드는 것을 내 의지대로 선택하기 때문이다. 매거진에서는 "무언가를 하나하나 모은다는 건 그에 대한 애정, 나아가 자신의 삶에 대한 애정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라고 한다. 나는 절판된 만화책을 구하기 위해 중고나라 알림을 실시간으로 확인하고 매일 핀터레스트에서 이미지를 모은다. 지류 티켓, 포스터, 영수증 같은 사소한 것들도 내 삶의 조각처럼 아카이빙한다. 같은 맥락에서 내가 경험한 전시, 영화, 그리고 책에 대해 블로그에 글을 쓰는 것도 그 모든 것이 휘발되지 않고 쌓이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렇게 수집한 물건, 이야기, 이미지, 감정들은 결국 나만의 취향을 만들고, 나를 '고유한' 나로 존재하게 한다.
Vol.18 : 사랑
글을 쓰는 현시점에서 가장 최근 호이다. 한동안 구독을 쉬었지만, 이때까지 다루던 주제와는 사뭇 결이 다른 '사랑'이라는 키워드가 눈에 들어왔다. 이번 호에서는 사랑이라는 포괄적인 개념 안에서 자기애, 연애, 그리고 세상을 사랑하는 것 - 세 가지에 대해 다루고 있다. 그중에서도 "나 사랑하기"에 관한 글이 가장 공감되었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잘 모르는 상태에서도 그럭저럭 아껴줄 수는 있겠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사랑일 뿐일 거예요. 무섭고 어렵더라도 부딪쳐서 나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진짜 자기애가 피어오른다!" 시간이 흐를수록 타인과 잘 지내기 위해서는 스스로와 잘 지내야 함을 느낀다. 그리고 나를 알아간다는 일에는 정답이 없기에 막막함과 자유로움이 동시에 따라온다. “행복하게 웃을 수 있으면 성실, 그렇지 않으면 강박”이라는 구절도 기억에 남는다. 나 또한 성취감에서 오는 뿌듯함이 자기애의 바탕이 되기에 때로는 성실하게, 때로는 강박적으로 일에 몰입할 때가 있다. 어려운 과제에 직면했을 때 그것을 헤쳐나가는 과정에서는 힘이 들지만, 결과물이 나왔을 때는 '내가 이만큼 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과 함께 스스로가 자랑스러워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눈에 보이는 성취가 없는 상황에서는 어떻게 자기애를 키울 수 있을까? 나의 방법은 성취를 세분화하는 것 이다. 일에서 성과가 없더라도 취미인 요가에서 조금이라도 더 발전하면 만족한다. 요가를 하지 못한 날에는 요리를 하거나 일기를 쓰면서 내가 좋아하는 활동들로 채워가려고 한다. 이렇게 바쁘게 살다가도 가끔은 나에게 충분한 휴식의 시간을 "선물”하며 마음을 다독인다. 일상 속에서 긍정적인 마음으로 자기애를 기르는 일은 평생에 걸친 숙제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이 숙제를 꾸준히 이어가다 보면, 삶의 밀도가 조금씩 깊어진다.
끝으로...
작가는 자신의 삶을 정의할 수 있는 문장으로 스티브 잡스의 스탠포드 졸업식 연설에서 나온 말을 인용한다.
"Connecting the dots.”
이 문장처럼 그녀는 도전을 연결하여 가치를 만들고, 그렇게 만든 자신의 세계를 사람들과 공유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전하고 있다. 나 또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꿈꾼다. 새로운 변화를 앞두고 용기가 필요한 나에게 위로가 되는 문장들을 발견하여 공유하며 이 글을 마친다.
"유연한 마음가짐으로 내가 몰랐던 세계에 뛰어들면, 그 안에서의 경험들이 내 안에 모여 자연스럽게 근사한 미래가 펼쳐지고는 했어요.
이런 경험을 차곡차곡 쌓아가다 보니 이제 새로운 시도를 할 때 두렵지 않아요. 두려워하는 시간이 아까워지더라고요. 설령 이번 기회에 잘 풀리지 않더라도, 이 경험 하나(dot)는 나의 내면에 남아 언젠가 멋진 선의 한 점으로 자리할 것이라는 걸 알고 있으니까요"
- <스탠드포인트>, 유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