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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가을이 왔다는 걸 온몸으로 체감하는 날들이다.

   

나는 가을을 무척이나 좋아한다. 여름은 너무 뜨겁고, 겨울은 너무 춥다. 봄은 설레기도 하지만 새로운 시작이라는 건 때로는 부담이 되기도 하는 법이다. 그렇기에 가을은 나에게 있어 아무런 긴장을 하지 않아도 되는, 편안한 계절이다.


나의 애착 향수는 딥디크의 ‘필로시코스’다. 은은한 무화과 향이 상쾌했다가도, 곧이어 차분하게 남는다. 언제나 가장 좋아하는 향이지만, 여름에 뿌리기에는 무거운 향이라서 잠시 외면했었다. 그렇지만 무더운 여름을 버텨낸 우리에게 보상과 같은 계절이 오지 않았는가. 게다가 무화과는 가을에 제철이다. 필로시코스를 뿌리고 나가면, 막연하게 하루가 잘 풀릴 것 같은 예감이 든다.


하교할 때는 버스를 타는 편이다. 지하철을 탈 수도 있지만, 버스를 타면 99%의 확률로 앉아서 갈 수 있는 데다가 경치도 구경할 수 있다.

 

사실 버스를 타면 멀미가 나서 핸드폰을 보지 못한다. 따라서 자동으로 창밖을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가게 되는데, 이것이 나의 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 되어준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고가도로 구간이 나오면 속으로 기뻐하면서 지나가기도 한다.

 

그리고 이 짧은 버스 여행은 가을에 가장 좋다. 살짝 창문을 열어서 바람을 느낄 수도 있고, 지나가는 나무에 든 단풍을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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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가을은 독서의 계절이라고 한다. 요즘은 한강의 <서랍에 저녁을 넣어 두었다>를 읽고 있다. 젊을 때 부지런히 해야 하는 일 중 하나가 시집을 읽는 것이 아닐까? 시는 감정의 폭을 넓혀주기도 하고, 때로는 삶에 대한 통찰을 보여주기도 한다. 한강 작가의 화법처럼 잔잔함 속에 힘이 있는 시들을 읽다가, 다시금 가을과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했다.


가을은 활자를 읽고, 더 나아가 사색하기에 참 좋은 계절이다. 나는 쓸모 없는 생각, 그리고 간혹 쓸모 있는 생각까지, 머릿속이 쉬지 않는 편이다. 생각이 너무 많으면 불행하다고도 하지만, 나는 어쨌든 사색의 순간이 좋다. 쓸모 없어도 괜찮다. 그 순간에는 쓸모가 없을지라도, 한번 들었던 생각은 언젠가 꺼내 쓸 수도 있는 법이다. 물론 기억력이 안 좋다면 틈틈이 기록하는 것은 필수다.


이 날씨에 가장 어울리는 음악은 아무래도 재즈가 아닐까. 음악 속에 여유가 느껴지기 때문에 계절과 잘 맞는다. 이번 주에 많이 들은 아티스트는 Thundercat으로, 그는 재즈 베이시스트로 출발했지만 다양한 장르를 넘나든다.

 

그의 음악을 듣게 된 것은 단순히 음악 앱의 알고리즘 추천 때문이었는데, 처음 듣고 독창성에 충격을 받아서 전곡을 찾아 듣게 되었다. 재즈적인 요소가 느껴지기도 하지만, 결코 한 장르로 국한할 수 없는 것이 매력이다.

 

이처럼 제철 음악을 찾아 듣는 것 또한 삶을 즐기는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마음의 온도란 것이 있다면, 내 마음의 온도는 그렇게 높은 편이 아닌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과도한 열정을 보여야 하는 상황에는 늘 스트레스를 받는다. 그러나 삶에서는 치열하게 노력해야만 얻어지는 것들이 대부분이기에, 애써 마음에 불을 붙이고 살아본다.


그렇지만 가을은 조금 느려도, 조금 식어도 괜찮을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일 년 중 한 계절 정도는 낭만을 좇으면서 살아도 되지 않을까?


나에게 과열을 종용하지 않는 계절, 그러니 사랑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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