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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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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스타성 있는 예술가, 눈길을 끄는 전시가 있다. 이들은 어떻게 주목받기 시작했을까? 우리는 왜 이들을 매력적이라고 여기는가? 신간 『줄 서서 보는 그림의 비밀』이정우 작가는 인기 있는 작품과 예술가 뒤에는 언제나 뛰어난 전략이 있다고 말한다. 문화예술 콘텐츠 스타트업인 ‘널 위한 문화예술’의 치프 에디터, 현대미술 웹매거진 ‘빋피BidPiece’의 편집장으로 활동하며 대중에게 쉽고 재미있게 예술 이야기를 전해 온 그가 이번 책에서는 브랜딩의 관점으로 예술을 이야기한다.

 

‘예술가’라 하면 대중과는 상관없이 자기만의 길을 가는 외골수를 떠올리기 십상이지만, 현실에서는 어떤 식으로든 존재감을 알려야 예술가로서의 삶을 지속할 수 있다. 자기의 철학을 잘 담으면서도 사람들의 반응을 끌어내는 것이 시대를 막론하고 예술가들의 과제였던 것도 그 때문이다. 렘브란트부터 살바도르 달리, 가장 최근의 뱅크시까지 이 책에서 다루는 11명의 예술가도 마찬가지다. 이정우 작가를 만나 우리가 간과했던 ‘예술의 전략’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평범한 직장인도 자기 자신을 브랜딩하는 시대에 이미 성공한 예술가들의 전략은 도움이 될 것이다.

 

 

 

예술을 바라보는 다른 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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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 서서 보는 그림의 비밀』은 작가님의 첫 단독 저서입니다. 전략과 브랜딩의 관점으로 예술을 이야기하는 책인데, 책을 쓰게 된 계기와 함께 주제를 어떻게 정하셨는지 들려주세요.


'널 위한 문화예술’ 에디터로 일하며 예술가들이 어떤 식으로 아이디어를 작품으로 만들고 그걸 세상에 내놓는지를 배웠어요. 살펴보니, 소위 ‘잘 된’ 예술가들한테는 한 개에서 두 개 정도의 브랜드 키워드가 있더라고요. 관련된 주제로 책을 쓰면 재미있겠다고 생각하다가 퇴사하고 한 편씩 글을 쓰기 시작했어요. 그게 이번 책의 바탕이 되었습니다.

 

 

예술을 상업적인 관점에서 논하는 건 종종 터부시되곤 하는데요, 쓰면서 이런 부분에 대한 염려는 없었는지 궁금합니다.


오늘날 미술계가 이미 미술시장의 영향을 많이 받고 있기에 상업적인 관점 자체는 전혀 이상할 게 없다고 생각했어요. 제프 쿤스는 대놓고 본인 작품의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해 골몰한다고 얘기하고, 무라카미 다카시도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나를 좋아할지를 고민하는 데 거의 모든 시간을 쓴다고 말하니까요. 그만큼 오늘날 메이저 예술가들에게는 상업적 성공이 중요해진 거죠.


때로 상업적 관점은 우리가 예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기도 해요. 물론 경제적 효용만이 예술의 목적과 가치는 아니지만, 오늘날 예술 세계는 너무나 방대해서 무작정 감상하려면 어디부터 어떻게 봐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거든요. 그럴 때 ‘이 작품이 얼마짜리다’, ‘이 작가의 키워드는 무엇이다’ 같은 상업적인 지표가 작품 감상의 시작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술가의 브랜딩에 초점을 맞춘 이번 책은 어떤 독자를 떠올리며 썼는지도 궁금해요.


예술가와 예술 애호가들이 읽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저도 미술을 전공했다 보니 주변에 예술가가 되려는 친구들이 있는데, 예술계 안에 있는 예술가 당사자라서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어요. 오히려 브랜딩의 관점에서 들려주는 예술 이야기가 이들이 예술 활동을 계속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예술 애호가들도 기존의 미술사적 관점에서 벗어나 상업적인 관점, 브랜딩 마케팅 관점으로 예술을 신선하게 바라볼 수 있을 거예요.

 

 

책에서 11명의 예술가들을 소개하는데, 그중 작가님이 좋아하는 예술가 한 명의 이야기를 대표로 좀 더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뱅크시를 꼽고 싶어요. 뱅크시는 원래 언더그라운드 문화인 그래피티 씬에 있었지만 거기선 배척당했어요. 뱅크시의 스텐실 기법이 그래피티 정신과 맞지 않는다고 여겨졌거든요. 고민 끝에 뱅크시는 아예 정통 미술계로 넘어갔어요. 대신 거기서 자신을 아웃사이더이자 미술계 트러블메이커로 브랜딩했죠. 작품을 미술관에 걸기 위한 일반적인 과정을 거치는 대신 대영박물관에 몰래 작품을 두고 가는 ‘도둑 전시’를 했고, 경매 현장에서는 자기 작품을 파쇄해버렸습니다. 


뱅크시는 활동 초반부터 예술이란 소외된 자들에게는 평안을, 권력자들에게는 불안을 줘야 한다고 말하고 다녔어요. 브랜딩을 조금씩 바꿔가면서도 그런 예술관을 유지한다는 게 인상적이에요. 얼굴이 공개되지 않았다는 점을 이용해 최근에는 기부를 하며 슈퍼히어로 같은 이미지로도 활동하고 있죠. 여러 가지로 전략을 잘 사용하는 작가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전시가 매력적인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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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banksy 공식 홈페이지

 

 

국내 해외 상관없이 최근에 열린 전시 중 브랜딩이 잘 되었다고 생각하시는 전시가 있나요?


리움미술관에서 2023년 초에 마우리치오 카텔란의 전시를 무료로 진행하며 관객을 줄 세웠어요. 현대미술 중에서도 굉장히 상징적이고 파격적이면서도 인스타그램에 어울리는 감성을 잘 담은 전시였죠. 미술시장에 돈이 많이 들어오기 시작하고 젊은층이 미술에 관심을 갖던 시기, 대중에게 현대미술을 소개하기에 무척 적절한 전시였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한번 현대미술의 매력을 알게 된 관객들이 유료 전시로 전환되고 작품 난이도가 높아져도 계속 미술관을 찾는 듯해요. 이후 필립파레노나 이불 작가처럼 조금은 어려운 현대미술 전시도 관객이 많이 들었으니까요. 상대적으로 쉬운 작가부터 시작해 조금 더 어려운 작가를 소개하는 순차적인 큐레이팅이 좋았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전시도 매번 잘 보고 있습니다. <합스부르크 600년, 매혹의 걸작들>, <내셔널 갤러리 명화전>, <비엔나 1900, 꿈꾸는 예술가들> 등 다른 미술관과 협업한 전시들이 알찼죠. 사실 국립중앙박물관의 한국미술 소장 컬렉션도 무척 훌륭한데요, 다른 미술관과의 협업 전시를 보러 온 관객이 자연스레 박물관 소장품도 알게 하는 전략이 좋더라고요. 특별전과 상설전이 서로에게 좋은 영향을 주는 기획인 거죠.

 

 

요즘은 전시장 내에서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는 일이 보편화되어 있는데, 이를 두고 의견이 분분합니다. 작가님은 이러한 전시문화에 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최근에 한 전시 오프닝에 갔더니 어떤 분들이 특정 작품 앞에서 10분 동안 사진을 찍고 또 바로 옆에 앉아서 10분 동안 사진을 고르더라고요. 사진을 찍는 행위 자체는 추억을 남기기도 좋고 미술관도 홍보에 도움이 되니 괜찮은데, 이 정도는 자제를 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미술관의 일은 관객이 내 인스타그램 피드 첫 번째 장으로 올리고 싶은 작품을 큐레이션을 하는 것이지, 억지로 포토존을 만든다거나 해시태그 이벤트를 하는 건 아니라고 생각해요. 이런 시도는 오히려 마케팅에 역효과가 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럼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작품이나 예술가 중 브랜딩의 관점으로 봤을 때 아쉬움이 남는 것이 있다면 무엇일지 궁금해요.


마이클 크레이그 마틴이 떠올라요. 데미안 허스트와 트레이시 에민의 스승이자 영 브리티시 아티스트(Young British Artist, YBAs 1990년대 영국을 중심으로 활동했던 젊은 아티스트를 총칭함)에 개념미술 쪽으로 큰 영향을 준 예술가인데, 그 영향력에 비해서는 많이 알려지지 않아서 아쉽죠. 예술가보다 교수의 정체성이 더 앞에 있어서 그런 게 아닐까 싶어요. 교수라는 사회적 지위가 있다 보니 이 책에 나오는 예술가들에 비하면 자신을 드러내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전략이 좀 부족했던 게 아닐까요?

 

 

책에서 다룬 다양한 사례들로 미루어볼 때,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예술 작품의 공통점이 있다면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결은 달라도 정말 열심히 작업하는 예술가였다는 공통점이 있어요. 자기 작품에 관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오랫동안 집중해 작업했죠. 책을 쓰면서 부끄럽기도 했어요. 전략의 힘이 크다고 생각했는데, 알면 알수록 모든 훌륭한 전략 뒤에는 진정성을 담아 작품을 만드는 시간이 있었기 때문이죠. 기본이 바탕이 되지 않았다면 어떤 전략도 효과가 없었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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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banksy 공식 홈페이지

 

 

책에서 소개한 예술가들의 전략 중 오늘날 다른 분야에도 적용해볼 만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뱅크시는 내가 이 작품을 왜 만들었고 여기에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써 내려간 책이 5권 정도 있어요. 자신의 삶을 이야기로 만들고, 자신의 정체에 대한 단서를 던지며 작품의 설득력을 더하는 것이죠. 방향성을 잡지 못한 예술가나, 진로를 정하지 못한 분이 있다면 이렇게 자서전을 써서 내 서사가 어떻게 구성되어야 매력적인지 또는 설득력 있는지 고민해보는 것도 좋은 방법인 것 같습니다.

 

 

그럼 작가님이 지금의 일을 할 때 전략적으로 접근하는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지도 궁금해요.


최근에 침착맨 채널에 출연했을 때 왜 현대미술을 다루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물론 좋아서이기도 하지만 일종의 전략이기도 해요. 고전미술은 이미 나이 많은 남자 교수님들이 꽉 쥐고 있어서 제가 들어갈 틈이 없거든요. 현대미술은 사람들이 관심은 있는데 생각보다 다루는 사람이 아직 많지 않아요. 젊고 경력 적은 여자인 제가 다뤄도 봐줄 사람들이 있겠다는 계산이 있었죠. 결과적으로 미술 쪽에서는 양정모 교수님만 출연했던 침착맨 채널에 제가 두 번째로 출연했으니, 전략을 잘 세운 거 아닐까요. (웃음)

 

 

 

예술과 대중 사이에서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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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전공자는 ‘그림 그리는 사람’, ‘그림 사는 사람’, ‘그림 이야기하는 사람’ 중 하나가 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어요. 작가님이 그중 ‘그림 이야기하는 사람’이 된 계기가 궁금해요.


미술 대학에 가자마자 잘하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그림 실력만으로 상대가 안 되겠다는 걸 느꼈어요. 나만의 무기를 만들어야겠다 생각하다가 우연히 너를 위한 문화예술에서 에디터 생활을 시작하며 ‘그림 이야기하는 사람’이 된 것이죠. 

 

 

‘그림 이야기하는 사람’으로 사는 건 어떤가요?


한동안은 생활비를 벌기 위해 미술학원 일을 병행하며 글을 썼어요. 스타트업 사장처럼 지냈던 것 같아요. 세상이 뭘 필요로 하는지 고민하며 쉽게도, 어렵게도 써보며 여러 시도를 했습니다. 이용자 수가 많은 유튜브도 도움이 될 거라 생각해 열심히 했죠. 돌이켜 보니 좋은 기회는 유튜브를 통해 얻은 게 많네요. 결과가 바로 나오지 않아 힘들기도 했지만 글 쓰고 콘텐츠 만드는 것이 보람있어서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꽤 오랫동안 예술의 언어를 대중의 언어로 해석하며 지금은 어느 정도 노하우가 생겼을 듯한데 글 쓸 때의 원칙이 있나요?


미술 쪽 글은 유독 어렵고 일반 독자 입장에서 와닿지 않는 내용이 많아요. 그래서 저는 첫 문장에 하고 싶은 말이 명확하게 담겨야 한다는 걸 원칙으로 삼았어요. 정보를 재미있게 전달하기 위해 스토리텔링도 적극 활용합니다. 그래서 글을 쓰기 전에 지금 다루려는 예술가에게 어떤 이야깃거리가 있는지부터 살펴봐요. 그 이야깃거리에 미술이론 내용을 자연스럽게 녹일 수 있다면 가장 좋죠. 어려운 정보도 좀 더 쉽게 전할 수 있고요.

 

 

앞으로 다뤄보고 싶은 주제가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일단 대중과 미술을 연결하는 커뮤니케이터 역할은 계속하고 싶습니다. 그 맥락에서 예술이라는 게 우리 일상 가까이에 있는 존재라는 것을 상기시킬 수 있는 새로운 책을 써보고 싶어요. 예를 들어, ‘사물의 미술사’라는 제목으로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사물들을 다룬 예술작품을 소개하는 거죠. ‘사과’라는 목차가 있다면 거기서 사과를 다룬 예술 작품들을 큐레이션하는 식으로요.

 

 

마지막으로 독자분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콘텐츠를 만들며 어떤 이야기가 재미있을까 늘 고민하는데 “아는 사람의 모르는 이야기가 흥미롭다”라는 말이 기억나요. 저도 이 책에서 우리가 아는 예술가들의 몰랐던 전략을 소개했는데요.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이고, 자기 피알 시대에 잘 맞는 책이라고 생각해요. '빡센' 미술계에서 이름을 알린 예술가들 이야기가 각자의 삶에 도움이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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