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erview] 신맛 나는 치즈의 낯설고 이상한 이야기 세계로 – 황석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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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하는 인간과 스토리텔링
이야기는 인간의 보편 욕망이다. 우리는 이야기한다. 친구와 썰을 풀고, 직장동료와 뒷담화를 하고, 영화나 책에 나온 스토리를 보며 감동한다. 미국의 영문학자 존 닐은 인류를 호모 나랜스(이야기하는 인간)라고 이름 붙였다. 그 말대로 인간은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나가며 삶을 통합시켜나간다. 이야기는 기억의 도구이자 유희의 도구이자 삶의 도구이다.
어린 시절 형과 함께 방바닥에 누워 눈을 감으려고 하면, 잠시 뒤 뒤척이던 옆자리로부터 목소리가 들려오곤 했다. ‘자- 잘 들어봐. 우리는 지금부터 우주로 떠나는 우주비행사야. 너는 먹고싶은 음식을 일단 골라야해. 골랐어? 그럼 이제 우리는 모험을 떠나는거야. 꽉 잡아야해. 푸슈슈슈융-’ 기억해보면 형의 이야기를 따라 펄럭이는 이불을 로켓삼고 온갖 연기를 하며 잠 안 오는 밤을 헤쳐나가던 어린시절이 있었다.
그런가하면 잠 안 오는 어느 밤에 별 생각없이 보냈던 짧은 메시지로부터 시작한 대화가 있었다. 답장은 또 빤한 연락으로 이어지고, 연락은 어느새 전화가 되어 밤새 서로의 지나온 삶의 이야기를 탐구하기 바빠졌다. 그 후로도 너는 전화를 걸어 종종 재밌는 이야기를 해달라고 말했고, 우리의 시간은 또 하나의 이야기가 되어갔다.
이야기는 사물에 가치를 부여하기도 한다. 같은 제품이라도 임금님한테 진상했던 특산품이었다든가, 몇십 년간 이어진 어느 지역의 무엇을 활용한 원조 맛집이라든가, 녹차 먹은 돼지처럼 컨셉이 있고 이야기가 있는 제품들은 시장에서 더 비싼 가격에 팔린다. 트럼프가 아침마다 사용했다던 애프터쉐이브처럼 단순한 제품에도 이야기가 녹아들면 조금 더 매력적으로 보이고 한 번이라도 관심이 더 가게 된다.
이야기는 우리가 커나가면서 자연스레 터득하게 되는 생존의 수단이고, 지나온 시간을 기억하는 수단이고, 그 자체로 즐거운 놀이거리다. 그리고 무엇보다 이야기는 우리의 마음을 흔든다. 우리의 지갑을 열고 마음을 열게하는 힘, 길가에 채이는 흔한 돌멩이에도 생명력을 부여하는 힘, 뻔하디 뻔한 유치한 사랑에도 매력을 부여하는 힘, 스토리텔링이다.
여기 조금은 낯설고 이상한 이야기들이 모인 공간이 있다. 어느 날 일어나보니 내가 악마가 되어있고, 호텔에서는 투숙이 아닌 투신을 제안하고, 지렁이는 변기에서 낚시를 한다. 주인장의 얼굴은 밝고 경쾌한 느낌의 노란색을 가진 치즈인데, 피부에는 구멍이 숭숭 나있고 왠지 사연이 많은 표정을 하고 있다.
신맛이 나는 치즈처럼, 이상하고 낯선 이야기를 하고싶다는 스토리텔러 작가 신치즈, 황석현을 만났다.
스토리텔러 작가 신치즈, 황석현을 만나다
안녕하세요. 자극적이고 휘발성 강한 콘텐츠 세상 속에서, 조금은 ‘불편’하지만, 긴 여운을 줄 수 있는 이야기를 쓰고 싶은 신치즈라고 합니다.
2. 작가님의 치즈는 왜 신맛인가요? 신치즈라는 활동명을 만든 이유를 들려주세요.
캐릭터가 매력이 있으려면 상처가 많아야한다고 봐요. 신치즈 캐릭터도 치즈니까 얼굴에 구멍도 많고, 어디 한 구석에 그림자도 있고 그렇잖아요. 곰돌이 푸라든지 스펀지밥같은 캐릭터들을 생각해보면 노란색이 주는 경쾌한 이미지가 있는데, 저는 노란 치즈에 낯선 무언가를 주고 싶었어요. 신 맛이 나고 쉬어버린 것 같고, 맛도 향도 이상한 것 같고 사연이 많아보이는 캐릭터.
밝은 노란색이지만 상처도 많고, 사연 많아보이고, 슬퍼보이는 캐릭터를 통해서 더 깊이있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그럼 이 치즈는 왜 신맛이 되어버린 걸까요? 어떤 사연이 있었길래.
누구나 사연이 있잖아요. 근데 이 친구는 유독 사연에 민감하다는 생각이 들어요. 감수성이 풍부하고, 피부가 얇은 느낌, 그게 쌓이고 쌓이다보니까 신맛이 나게 되버린게 아닐까 생각해요.
제가 브랜딩 쪽을 하니까 이름 짓는 것에 민감해요. 이름이 할 수 있는 역할이 두 가지가 있어요. 하나는 각인시키는거. 그러려면 창의적이어야하고, 낯설어야 하잖아요. 이질적인 것들이 합쳐졌을 때 그렇게 되는 것 같아서 치즈가 시다면 그런 느낌을 주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 같아요. 정체성을 확실히 주는게 이름의 또 다른 역할인 것 같은데, 제가 하는 이야기가 형식은 경쾌하지만 내용이나 메시지는 그렇지 않은 느낌이라 잘 맞는 이름이라고 생각했어요.
신치즈라는 캐릭터는 작가님인가요? 신치즈가 나를 대변하는 캐릭터라고 생각하세요 아니면 별개의 독립된 존재라고 생각하세요?
저인 것 같아요. 아무리 노력해도 결국 제가 나오더라고요. 그림이든 생각이든 문장이든 제가 지금 가장 크게 하는 고민들이 배어나오는 것 같아요. 처음에는 최대한 허구에 가까운 이야기로 만들려고 했었는데 가면 갈수록 저에서 출발하는 이야기가 나오게 되는 것 같아요.
일종의 분신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해도 될까요? 혹은 내가 하고싶은 말들을 편하게 꺼내놓을 수 있는 대나무숲이라고 해야할까요?
둘 다 맞는 것 같아요. 분신이기도 하고, 대나무숲이기도 하고.
3. 대표작과 작품에서 가장 좋아하는 장면, 간단한 작품해설을 부탁드립니다.
가장 고마운 작품은 <천사와 악마>인 것 같아요. 그 작품 이후로 사람들이 반응이 좋아서 계속 해도 괜찮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천사와 악마에서 첫 장면과 끝 장면을 좋아하기도 해요. 처음에 화장실을 갔는데 갑자기 내가 악마야, 그런데 내가 정신은 어린아이잖아요. 거기서 오는 갈등이나 그런 순간의 감정이 좋은 것 같아요.
아이가 악마가 되었으니 당연히 일을 제대로 못하는데, 그러다보니 사람들이 경쟁하지 않고 거짓말하지 않고 일일이 양보하는 세상이 되어서 개개인은 행복해지지만 인간 집단은 권태에 시달리고 경쟁도 성장도 더뎌지면서 도태되거든요. 마지막 장면은 ‘내가 천사인가?’ 이런 고민을 하면서 이렇게 끝나는데, 선과 악의 경계라는게 있을까. 악은 정말 나쁜걸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작품인 것 같아서 좋았어요.
<두 번째 어린시절>이라는 작품도 좋았던 것 같아요. 해질녘에 신치즈랑 지렁이 캐릭터 렁아찌가 같이 앉아있을 때 느끼는 허탈함이 기억에 남아요. 어린시절이 그리워서 죽었던 친구를 AI로 만들었는데 추억을 주입해도 기억을 주입해도 좀 이상한거죠. 어린시절은 이미 지나가서 다시 돌릴 수 없고, 다 끝났구나 두 번째 어린시절은 없구나 그런 허탈함을 느끼게 해주는 작품이었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을 쓰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어린 시절을 그리워한다든지.
어린 시절 그립죠.(웃음) 어른과 어른이 사이인 것 같아서. 돌아갈 수도 없고. 어느 날 롯데월드에 갔는데 그냥 너무 좋은거에요. 애기들 음악이라든지 놀이공원의 환경이라든지 전부요. 그래서 예전처럼 아이같이 뛰어놀고 싶은데, 근데 나는 이미 커버렸어. 그게 너무 슬프더라고요. 거기서 온 것 같기도 하고.
맞아요. 그리운 시절이라는게 있죠.(웃음) 언제로 돌아가고 싶으세요?
현실을 생각하지 않아도 될 때? 일을 하면서 수익화나 이런걸 생각하다보면 그냥 막연히 하고싶은거 하면서 놀던 어릴 때가 그리워져요.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세상, 주로 감각하고 느끼는 세상은 어떤 모습인가요?
색으로 표현하자면 노을 질 때의 주황색인 것 같아요. 감정으로 표현한다면, 음 슬픈데 뭔가 어떤 사건이 있어서 슬프기보다는 좋은 슬픔이 있지 않나요? 높은데서 노을을 바라보면서 드는 슬픔 같은거 있잖아요. 슬픈데 나쁘지도 않고 우울하지도 않고, 슬픈데 좋다 그런 복잡한 감정. 그런게 깔려있기는 한데 요즘에는 최대한 행복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요.
4. 신맛이 난다고 표현할만한 ‘이상한’ 이야기를 쓰고 그리기 시작하신 계기와 이유가 있나요?
남들과 좀 달라지고 싶었어요. 예를 들어, 일러스트는 대부분 다 귀여운 캐릭터들이 주가 되잖아요. 저는 그러고 싶지가 않은 거에요. 그게 나랑 맞지도 않고. 나답게 쓰려고 했던 것 같아요. 솔직해지자.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이상한 불편한 이야기는 어떤 거에요?
저는 좋은 예술작품은 불편한 것 같아요. 뭔가 휙 넘어가지 않고 잠깐 멈춰서 뭐지 하다가 더 생각하게 되는 것들. 그런게 좋은 영화이기도 하고 예술인 것 같아요. 여운이 남고, 골똘히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요.
예를 들면 작가님 활동명을 보고 왜 치즈가 신맛일까 생각하는 것처럼요?
그렇죠. 너무 인스타 속 세상은 빠른 것 같아서 잠깐 멈추면 안 되나?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5. 이야기의 힘을 믿으시나요? 이야기는 우리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요?
사피엔스라는 책에 나오는데, 뒷담화라는 표현이 나오잖아요. 이야기를 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집단적인 상상을 할 수 있게 되었고, 조직으로 힘을 합쳐서 발전할 수 있었고, 그것이 인류가 다른 동물들과 달리 지구를 점령할 수 있었던 원동력이라는 말이 있거든요.
김영하 작가도 이야기가 있기 때문에 세계 반대편의 사람들까지 공감할 수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이야기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을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것 같아요. 그냥 지나치는 것을 멈칫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아닐 수 있는 것에 숨을 불어 넣잖아요. 하다못해 작은 컵이나 돌덩어리에도 숨을 불어넣어 줄 수 있는 것 같아요. 제가 브랜딩 일을 하다보니 느끼는데 브랜드에도 스토리가 있으면 더 끌리게 되는 것 같아요.
신맛 나는 치즈를 혀 위에 한 조각 올려놓고
1. 가장 여운이 남았던 작품을 골라주신다면 어떤 작품일까요?
<두번째 어린시절>은 이미 언급했으니까 넘어가고, <당신의 자살을 도와드리겠습니다>도 파격적이고 낯설게 만들었던 작품이라 기억에 남아요.
결말에서 주인공 인물이 결국 거울을 쏘고 끝나게 되는데 사실은 그냥 죽일까도 고민했어요. 하지만 사람들은 희망을 원하잖아요. 스스로도 어떤 좋은 것들을 말해야한다는 강박도 있고. 이게 예술적인 영화나 이런게 아니라 인스타그램이라는 채널에 공개하는 작품이다보니까 죽이면 안 된다는 눈치도 약간 봤던 것 같아요.
이 이야기를 다시 쓸 수 있다면 어떤 결말로 만들어 보고 싶으세요? 대화를 나누다보니 매체의 특성이나 희망에 대한 강박 때문에 타협한 결말을 많이 아쉬워하는 것 같아서요.
그러게요. 아쉬움이 있는 건 맞아요. 그런데 좀 더 생각해봐야할 것 같아요. 기회가 되면 다음에 다시 써보고 싶어요.
2. 이야기를 쓰는 작가에게 이야기는 내 삶과 밀접한 것들을 말하는 대변자이자 대리자의 역할을 하나요? 혹은 별개의 독립된 것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저는 창작이라는게 수학으로 치면 함수같아요. X가 들어와야 Y가 나오는거니까, X가 클수록 Y도 크게 나오잖아요. 작가가 돈과 시간과 여유가 있다면 자기 이야기에서 많이 벗어날 수 있는 것 같아요. 참고자료를 많이 보고 활용하고, 자기 바깥의 이야기들을 이용해서 자기 삶과 이야기를 분리해나갈만한 여유가 있을 것 같은데, 일반적인 작가라면 그 X를 자기 삶에서 가져올 수밖에 없지 않을까 생각해요.
봉준호 같은 좋은 감독들은 자기의 삶에서부터 출발하지만 거기서 많이 벗어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런데 그러려면 조사 같은 것도 많이 해야 그렇게 되더라고요. 예를 들어, 최근 개봉했던 파묘라는 영화가 있잖아요. 그것도 장례식을 하시는 분들 옆에서 공부하고 자료도 찾아보고 이러다보니 자기 삶에서 벗어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으면 결국 자기의 이야기나 나에게 밀접한 생각, 감정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작가님 작품은 허구의 상상이더라도 결국 나의 개인적인 이야기에 기반해서 만들어지는 작품이 많으신거군요.
맞아요. 자본과 시간적 여유가 없는 일반인이 창작을 하는 경우에는 내 삶과 생각이 가장 큰 영감이 아닐까 싶어요. 신치즈를 그릴 때도 그걸 고민하는 것 같아요. 내가 누구지? 내가 무슨 생각을 하지? 유행하는 밈 같은 것만 따라가는 건 개성적이지도 않고 독창적이지도 않잖아요. 저는 그런걸 안 하고 저한테만 귀를 기울이면서 나의 이야기를 꺼내려고 노력하는 편이에요.
봉준호 감독님 명언 중에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인 것이다’라는 말도 있잖아요. 우리 각자의 이야기에서도 창의적이고 독특한 이야기를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요? 앞으로도 기대하겠습니다.(웃음)
3. 이야기를 통해 하고 싶은 말이 있으신가요? 예술이 ‘비집고 나오는 자연스러움’이라고 말씀해주신 적이 있는데, 작가님을 비집고 나오는 이야기들은 어떤 말들인가요?
“비집고 나오는 자연스러움”이라는 표현은 누군가의 피에 조금이라고, 단 한 방울이라도 예술이 있다면 해야만 한다. 이런 메시지였어요. 제가 만약 회사에서 안 맞는 일을 하는데, 그림이든 음악이든 이야기이든 예술을 하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어차피 비집고 나오기 마련이니까요. 콘크리트처럼 차가운 현실에 맞춰 살다가도 몸이 근질근질할 거잖아요.
사실은 저 자신에게 한 것 같아요. 진로 때문에 저도 고민을 많이 했는데, 제 안에도 비집고 나오는 무언가가 많이 있는 것 같아요. 사실 제 일기 쓴거에요(웃음). 결국은 나에게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누군가는 같은 고민을 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그런 사람들에게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어요.
작품을 통해서 어떤 전달하고 싶은 메시지까지 있기에는 아직 너무 어리기도 하고, 지금은 매일매일 느끼는 것들을 전하고 싶은 마음이 큰 것 같아요.
최근에 ‘들키고 싶은 비밀’이라는 주제로 이야기를 한 적이 있어요. 사람에게는 남의 것을 훔쳐보고 싶은 관음도 있지만 폭로하고 싶은 욕망도 있는 것 같아요. 마음속에 꽁꽁 감쳐두었지만 사실은 말하고 싶고 알아봐주면 좋겠고 공유하고 싶은 어떤 이야기들이요. 작가님한테도 그런 것들이 있을까요?
제가 만들고 있는 작품들이 다 그런거 아닐까요? 하고 싶은 말이 있지만 쑥스러우니까 우회하고 그림의 형식을 빌려서 말하고 싶어하는건 아닐까 생각해요. 아직 어리니까 지금은 조금씩 배워가면서 그때그때 느끼는 것들을 솔직하게 표현하고 싶어요.
4. 신치즈 작가의 작품들을 관통하는 작품관을 설명한다면 어떤 문장으로 말할 수 있을까요?
모르겠어요. 아직은 틀에 갇히지 않고 열어두고 싶어요. 사람들이 뭔가 관통하는 뭔가가 있으면 쉽게 질려하는 것 같아요. 계속 변화를 주고 해야 조금이라도 오래갈 수 있어요. 저도 스타일을 계속 바꿔갈 예정이거든요. 아직 관통하는 무언가는 없는 것 같아요.
그럼 질문을 조금 바꿔서, 가장 듣기 좋았던 피드백 있으세요?
‘유명지세요.’, ‘광고 받아서 매일매일 업로드 해주세요.’ 이렇게 계속 해볼만한 동력을 주는 말들이 좋았어요. 울컥했다는 말도 좋았던 것 같아요. 누군가를 조금이라도 움직였다는게 좋았어요. 저는 솔직히 나쁜 피드백도 받고 싶거든요. 근데 팔로워분들 댓글을 보다보면 너무 좋은 말들만 해주시는게 느껴져요. 그래서 그냥 반응이 많지 않으면 별로였구나 생각하고 그래요.
5. 형식과 내용중에 어떤 것이 우선한다고 생각하세요?
이 질문은 고민이 많았는데, 음악으로 치면 형식은 멜로디인 것 같고 내용은 가사라고 생각하거든요. 제가 유희열이 하는 말을 들었어요. 그 분은 멜로디와 가사가 어울리지 않으면 가사를 바꾼대요. 그 사람은 형식이 중요한거죠. 아이유는 멜로디를 바꾼대요. 이 경우는 메시지가 더 중요한 거죠. 그러니까 사람마다 다른게 아닐까 생각해요.
그 중에서 취사선택하는거고, 결국에는 둘 다 좋아야 설득이 되는 것 같아요. 저는 봉준호 감독의 <기생충>같은 작품이 내용과 형식이 결합된 걸작이라고 생각해요.
작가님은 멜로디와 가사, 형식과 내용중에 뭘 수정하는 편이세요?
저는 가사(메시지)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하지만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건 멜로디(형식)이더라고요. 메시지를 잘 말하기 위해서는 형식이 중요하기도 한 것 같아요.
6. 생각이나 짧은 단상이 이야기로 피어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생각하세요?
뭔가 떠오를 때가 있잖아요. 좋은 문장이 있거나 할 때 그것들을 놓지 않고 물고 늘어지는거. 그런건 물살이 확 가듯 쉽게 쓸려가는 것 같은데 잽싸게 낚아채야 하는 것 같아요. 메모하거나 낚아서 정리하거나 거기에서 짜깁기해서 나오는게 이야기가 아닐까 싶어요. 메모가 중요한 것 같아요.
모든 아이디어가 이야기가 되지는 않잖아요. 좋은 아이디어를 이야기로 만들어내는 비법이 있으세요?
저는 모든게 다 이야기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여기서 어떻게 시작해야 할까를 고민하면서, 하나에 꽂혀서 파고 파고 파다보면 나오는게 이야기가 되는 것 같아요. 그 순간에 느꼈던 것들을 솔직하게 말하고 싶어요. 좀 더 시간이 지나면 어떤 작품관이나 세계관이 생길 수도 있고 나름의 비법도 찾을 수 있을 것 같은데, 아직은 그냥 그때그때 꽂히는 대로 자연스럽게 그려나가는 것 같아요.
7. 우리는 글과 그림, 이야기 그리고 작품에서 어디까지 솔직해져도 되는 걸까요?
그 사람의 영향력에 달린 것 같아요. 혼자 보는 일기라면 상관없겠죠. 하지만 파워가 있고 그 사람의 작품을 보고 따른다면 적정선에서 윤리적인 책임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프랑스에서는 인플루언서를 나라에서 공인해준다고 하더라고요. 영향력이 커지면 좀 덜 솔직해져야 하지 않을까요? 사회적 파장을 생각해서.
하지만 솔직함이 하나의 매력이지 않을까요? <자살을 도와드립니다>를 통해서 사람들이 많이 좋아해준 것도 비슷한 맥락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남들이 잘 다루지 않을 것들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다는 거요.
맞는 것 같아요. 하지만 위치가 달라지면서 점점 더 조심해야하고 더 고민해야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지금은 아직 퍼센트로 따지자면 40%정도만 솔직한 것 같아요. 하고싶은 이야기도 많고, 조심스럽기도 하고, 앞으로 다양하게 실험해볼 것 같아요.
8. 작가님이 결국 이야기를 쓰고 그림을 그리게 된 이유나 목표, 목적이 있을까요? 이야기를 통해 만들어내고 싶은 삶의 모습이 있다면?
이야기를 만들면 자기 내면을 많이 들여다보게 되잖아요. 이거 자체가 나라는 사람의 삶의 여정이 아닌가 싶어요. 나는 누구인가. 분명 목적지는 있는데 아직 뭔지 모르겠는 느낌이랄까요. 아직은 뿌예서 나중에 죽을 때쯤에야 정확히 느끼게 될 것 같아요.
9.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행복하고 의미있는 삶은 어떤 모습인가요?
데일 카네기의 자기관리론에 많이 나오잖아요. 과거랑 미래는 차단하고 지금만 살아라 라는 말을 하는데 맞는 것 같아요. 행복은 추구하거나 찾거나 찾아오는게 아니고 지금 행복하면 행복한 것 같아요. 힘들어도 그냥 지금 웃는거. 그게 행복한거 아닌가 생각해요.
좋은 말이네요. 그런데 지금 힘든데 어떻게 웃을 수 있죠?(웃음)
멀리 떨어져 보면 도움이 되는 것 같아요. 멀찍이서 떨어져서 보면 재밌더라고요. 그냥 노력하는 것 같아요. 뭔가 넓게 보면 내가 부끄럽고 흑역사같고 이런 것들도 가끔은 사랑스럽게 보이더라고요. 카메라가 뭔가 저기에 있어서 날 찍고있다고 생각하면요.
10. 작가님의 삶에서 인상에 남는 장면이나 등장인물을 소개해주세요.
그린 적 있어요. 샤갈 작품에 대한 이야기인데, 제가 군대 끝나고 프랑스에 배낭여행을 갔어요. 그때 더웠거든요. 40도가 넘는데 언덕 너머에 미술관이 있었어요. 거길 올라가서 마르크 샤갈의 그림들을 보는데, 그게 유명한 그림도 아닌데 보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영화도 아니고 그림보고 내가 왜 울지? 결국 그거 때문에 제가 전공도 예술 쪽으로 선택하기도 했고, 신기했던 경험이었어요.
왜 그때 눈물이 났다고 생각하세요?
모르겠어요. 그냥 너무 좋았어요.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 그림만 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있는 것 같아요. 정말 좋은 그림만 줄 수 있는 무언가요.
그 뒤로 다른 작품 보면서 비슷한 경험 한 적 있으세요?
부암동에 김환기 미술관이 있는데 그 작품도 좋더라고요. 이유는 잘 모르겠어요(웃음) 공간이랑 그림이 주는 무언가가 있긴 한 것 같아요. 멍해지는 기분.
치즈는 숙성될수록 깊은 맛이 난다
1. 어떤 캐릭터를 좋아하세요?
상처 많은 캐릭터. 그리고 그걸 극복하려는 욕망이 있는 캐릭터가 좋아요. 나의 해방일지에서 김지원 캐릭터가 있는데, 그 캐릭터도 엄청 상처가 많잖아요. 그런 캐릭터에 끌리는 것 같아요. 해리포터도 부모가 없는 콤플렉스를 우정이나 사랑을 통해 극복해나가고. 거기서 카타르시스가 오는 것 같아요.
<자살을 도와드립니다> 작품 결말을 아쉬워하셨던거 생각하면, 아픔을 극복해나가는 이야기를 마냥 좋아하지는 않으시는 것 같은데요?
이야기를 쓰거나 그리다보면 제가 너무 솔직해지니까, 저는 작품에 스스로도 영향을 많이 받거든요. 저는 사실 실제로는 좀 염세적인 편이에요. 하지만 나는 아직 불안정하고 완벽하지 않고 자라가고 있는데, 작품에서까지 그래버리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요. 저는 일기를 쓸 때 항상 좋게 써요. 여기서 결국 희망을 말하고 좋은 것들을 말해야 그게 내 삶에도 도움이 된다는 생각도 있어요.
2. 좋아하는 이야기의 장면/플롯이 있을까요?
아픔을 이겨내는게 좋아요. 예전에는 플롯을 이리저리 뒤튼 낯선 이야기들을 좋아했는데, 요즘은 아픔과 상처 많은 주인공이 성장하는 이야기가 좋더라고요. 아픔을 이겨내는 것에서 인간의 생명력도 느끼고 개인적으로 위로도 받는 것 같아요.
3. 앞으로 그려보고 싶은 이야기는 어떤 이야기인가요?
시도해보고 싶은건 많은데, 사람들이 현실적으로 공감되는게 뭐가 있을까 고민중이에요. 조금 더 소통을 해야겠다 생각해요. 제가 하는 것들이 불친절한 느낌이 있어서 문장이든 문체든 더 쉽게 직관적으로 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있어요. 다양하게 해보고 별로면 다시 돌아오고 여러개를 시도해보려고요. 형식적인 차원에서 더 직관적으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4. 그림이 그리고 싶어지고,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지는 삶의 순간들을 골라주세요! 창작의 동력이 되는 것들이 어떤게 있을까요?
낯선 것들이 좋아요. 낯선 생각, 소재, 문장 이런걸 봤을 때 꽂히면 ‘아 이걸 해야겠다’ 생각하는 것 같아요. <사리물때>라는 작품에서도 변기통에서 낚시를 하잖아요. 그것도 그냥 변기 보다가 생각한 거거든요. 물이 있으니까 낚시하면 재밌겠다. 그렇게 뿅하고 나오기도 하고, 시 같은데서 나오기도 하고, 도서관 가면 거의 나오더라고요. 책에서 특히 문장 하나 꽂히면 거기서 주로 시작하는 것 같아요.
5. 작업의 프로세스가 궁금해요. 하나의 아이디어가 탄생해서 작품으로 옮겨지기까지 어떤 과정을 겪나요?
저는 첫 번째 장면 후킹에 거의 다 거는 것 같아요. 최대한 낯설게. 색감이든 상황이든 문구든 낯설게 하려고 해요. 픽사 스토리텔링이랑 비슷한데, <라따뚜이> 같은 영화는 프랑스 최고급 라스토랑에 쥐가 셰프라는게 낯설잖아요. <토이스토리>도 밤에 장난감들이 일어나서 돌아다닌다는 컨셉이 낯설잖아요. 그런 식으로 하는 것 같아요. 거기서 어떻게 이야기를 풀어나갈까 생각하는거죠. 제 작품에들도 ‘호텔에서 투숙대신 투신을 제안한다면’, ‘일어났는데 내가 악마라면’ 어떨까? 라는 아이디어에서 시작했었어요.
그러고 나서는 무조건 첫 장면 먼저 만드는 것 같아요. 결말까지는 잘 안 써요. 결말은 하다 보면 나와요. 아이디어가 있으면 먼저 한 편에 해당하는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한 편을 마치면 다음편으로 넘어가요. 결말에 대한 압박 같은게 크게 없기도 하고, 전업이 아니다보니까 작업 시간이 한정되어서 얼른 올려야하니까 작품 전체를 다 만들어서 올릴만큼 보류할 시간이 없는 것 같아요.
6. 지금 차용하고 계신 형식, 디지털 아트와 인스타툰 형태 등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
친형한테 아이패드를 선물받았는데, 그게 고마워서 뭐라도 해야겠다 생각했었어요. 형한테 보답하기 위해서 시작한 것도 있고, 그 당시에 인스타툰이 유행하는데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어서 시작해본 것 같아요. 유행하는 귀여운 캐릭터보다는 나만의 것을 만들고 싶었던 마음에 지금 같은 스타일을 그리게 되었고요.
7. 가장 영향을 많이 받은 작품이나 장르, 예술가 등을 골라주세요.
찰리와 초콜릿 공장 만드신 로알드 달 좋아해요. 집에 영어공부하려고 산 시리즈가 있는데 재밌더라고요. 그 분이 하는 스토리가 장편보다는 에피소드 형식인데 그게 신치즈에 영향을 준 것 같기도 하고. 샤갈도 좋아해요. 제가 쓰는 색감 이런 건 샤갈에서 온 것 같아요. 아, 팀 버튼 영화 <가위손>도 좋아해요. 그냥 이유없이 좋아요. 판타지 좋아하고, 낯선 것들을 많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8. 앞으로의 계획을 공유해주세요!
다 해보고싶어요. 야망이 좀 있어요.(웃음) 제품도 디자인해보고 싶고 시나리오나 가사도 써보고 싶고 하고싶은게 많아서 업로드가 자꾸 늦어지는 것 같아요. 프리랜서 일을 하느라 바쁘기도 하고.
신치즈도 새로운 시도들을 많이 하면서 키워나갈 예정이에요. 릴스도 새롭게 해볼 예정이고, 대중들한테 더 많이 다가갈 수 있도록 여러 시도를 해보고 싶어요.
제 작품 좋아하시는 분들이 딱 정해져있더라고요. INFP-T같은 성향이라고 해야하나. 다들 시 좋아하고, 착하고, 말 많이 없고, 자기만의 색이 있는 걸 좋아하고 그런 분들이 많아요. 그분들한테도 너무 감사하지만 앞으로는 더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도록 다양하게 시도도 해보고 변화를 줘보고 싶어요.
9. 마지막으로 하고싶은 말을 부탁드립니다!
세상이 너무 빨리 돌아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스펙이나 자격만 추구하지 말고, 생각하는 시간을 좀 가졌으면 좋겠어요. 나이가 어려도 삶을 좀 돌아보고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 작품도 그럴 수 있는 이야기를 만들고 싶어요.
신치즈 많이 사랑해주세요!
[김인규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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