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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틱틱붐’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피아니스트 임윤찬의 '쇼팽 에튀드 OP. 25-9 나비'
최근 가수 이찬혁의 ‘파노라마’가 큰 화제를 모았다. 우리에게 남은 시간이 얼마 없다는 사실을 전제로, 인생에서 하고 싶은 일을 하자는 메시지를 담은 곡이다. 청룡영화상 시상식에서 샴페인을 마구 쏟아내는 그의 모습은 우리에게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다.
특히 그 무대는 삶의 유한한 시간 속에서, 우리가 할 수 있는, 또 해야 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특히나 나이에 따라 가능성을 제한하는 경우가 많은 현재 우리 사회에서, 그 자유로운 무대가 더욱 큰 울림을 준다. 청룡영화상이라는 권위 있는 시상식에서 자유롭게 무대를 누비는 모습은 그 자체로 강렬한 메시지가 되었다.
영화 ‘틱틱붐’은 이처럼 유한해 보이는 시간에 대한 이야기를 현실과 결부해 다룬다. 실존 인물 조나단 라슨의 자전적인 이야기를, 라슨이 만든 뮤지컬 ‘틱틱붐’과 결합해 선보였다. ‘틱틱붐’은 시계 초침이 넘어가는 소리를 표현한 제목이다. 이 빠듯한 시간의 흐름을 통해 라슨의 삶에, 특히 29살에서 30살로 넘어가는 그 시기에 얼마나 큰 영향을 주었는지 살펴볼 수 있다. 또 그가 맞이한 변화는 앞자리가 바뀌는 나이에 강박적으로 집착하는 우리 사회에서 가져야 할 태도를 알려준다.
조나단 라슨의 짧고 빠른 시간들을 담은 ‘틱틱붐’의 메시지는 ‘어떤 시간이 중요한가’보다, ‘그 시간을 어떻게 살아가는가’에 더 큰 무게를 두고 전달한다.

마지막 기회
조나단 라슨은 서른을 앞두고, 8년 동안 준비한 록 뮤지컬 ‘슈퍼비아’의 워크샵을 준비하고 있다. ‘슈퍼비아’는 오랜 시간 달려온 라슨의 목표이다. 라슨은 워크샵이 브로드웨이에서 성공할 수 있는 유일한, 마지막 기회라고 믿었다.
마지막 일주일을 앞두고, 라슨은 그 어떤 때보다 예민한 상태로 주변 사람들을 맞이한다. 여자친구 수잔과 가장 친한 친구 마이클, 그리고 그 외 주변 인물들은 마치 NPC처럼 라슨 곁에 존재한다. 라슨은 그 일주일 동안 미뤄놓은 생각으로 많은 가치를 잃는다.

관계
여자친구 수잔은 함께 이사를 할 것을 제안한다. 뉴욕의 치열한 삶에 지쳐있던 수잔은 라슨의 꿈을 지지하며 버텨왔다. 그러나, 결국 버티다 못해 새로운 삶을 시작하고자 하는 마음을 먹었다. 무용 강사 자리를 제안 받은 수잔을 보며 라슨은 함께 떠날지 말지 선택해야 했다. 그러나 라슨은 슈퍼비아를 위해 끝까지 결정을 미루고 수잔과의 관계를 잃었다.
친구
두 번째로, 친구 마이클은 라슨에게 안정적인 직장을 제안한다. 함께 공연을 꿈꿨지만 현실을 직시한 마이클은 회사의 임원이 된 후에도 라슨의 불안정한 상황을 염려하며 곁에 있어주었다. 그러나 슈퍼비아 워크샵이 순조롭지 않은 결과를 맞자 두 사람은 크게 다투게 된다. 그 때 마이클은 자신이 HIV 에이즈 양성이라는 소식을 알리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전한다. 라슨은 그제서야 마이클과 자신에게 남은 시간이 많지 않음을 깨닫게 된다.
꿈
이렇게 두 관계를 망친 그때서야 라슨은 하나에만 몰두하면서 주변을 돌아보지 못하는 삶의 결과를 깨닫는다. 라슨은 슈퍼비아가 끝난 이후, 다음 작품을 기대하겠다는 브로드웨이 관계자의 말을 듣는다. 그제서야 라슨은 삶은 어느 한 가지로 큰 변화를 맞이하지 않으며, 자기가 중점으로 둔 가치는 다른 곳에 있었음을 돌아보게 된다.
그 때부터 라슨은 미뤄놨던 관계를 돌아보며 오래된 추억을 되짚는다. 라슨이 쌓아온 시간들 그 중에서 스스로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것들은 뭐였는지. 그 생각들을 곱씹으며 관계를 다시 재건하고 자신의 꿈 또한 점검할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제야 삶을 원래대로 돌려 놓을 수 있는 가능성을 연다.
이후 라슨은 친구들과의 이야기를 담은 ‘틱틱붐’을 만들고, 결국에는 뮤지컬 ‘렌트’를 완성하며 브로드웨이에 걸출한 명작을 남겼다. 그러나 공식 오프닝 전날 밤, 안타깝게도 병으로 세상을 떠난 라슨은 그 공연을 볼 수 없게 되었다.
그가 중요하게 담고자 했던 시간과 실제 그가 살았던 시간들 사이의 간극은 우리에게 파노라마처럼 다가온다. 우리는 그의 삶을 통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다시 한 번 물을 수 있게 된다.

‘틱틱붐’의 라슨처럼 우리는 언제나 더 중요한 가치를 골라야 한다. 그 가치가 더 좋고 나쁜가를 따지는 건 스스로에게 달렸다. 나는 언젠가 피아노를 치면서, 내가 쓸 수 있는 단어가 단 88개 뿐이라면 어떤 단어를 고를까 고민해본 적이 있다. 어떤 기준으로 선택해야 할지, 어떤 상황을 중심으로 해야 할지를 떠올리다가 결국엔 아무 것도 고르지 못했다.
최근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라는 에세이를 읽으면서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이브의 연인이 이브가 세상을 떠난 후 남긴 편지를 담은 글에서, 나는 어떤 말을 남기고 어떤 말을 속으로 삼킬지 다시 한 번 고민해 보았다. 하지만 이 또한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유한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어떤 말을 고르고 내뱉어야 하며, 어떤 상황을 더 깊게 대해야 할까. 어쩌면 평생을 지속할 고민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에게는 주변 사람이, 또 어떤 사람에게는 걸출한 명작을 내는 것이 더 소중한 가치로 다가올 것이다. 각자에게 필요한 가치를 찾아가는 과정을 통해, 어떤 시간을 보내든 삶에 후회가 남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