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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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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고소설 '최척전'이 연극으로 돌아온다. 2024년 초연 당시 뜨거운 찬사를 받은 연극 <통소소리>(서울시극단, 고선웅 연출)가 2025년 9월 5일부터 28일까지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에서 다시 공연에 오른다. 연극 <퉁소소리>는 조선시대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혼란한 시대 속 뿔뿔이 흩어졌던 최씨 일가가 다시 해후하기까지 30년간의 여정을 그렸다.


 

 

혼잡한 인터내셔널의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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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아군과 적군이 있어야 성립한다. 그러나 전쟁의 실재는 적군과 아군을 혼동시키는 방식으로 작동한다. 16세기 발발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을 근대의 관점에서 평가하기는 어려우나, 양란은 분명 국제전의 성격을 띤다. 1592년 일본의 조선 침략으로 발발한 임진왜란의 동기는 ‘정명가도(征明假道)’였다. 즉, 명을 정벌하기 위하여 조선의 길을 빌려달라는 것이었다. 16세기 말은 명청교체기의 전기이기도 하다. 조선은 기존 명과의 관계와 새로이 부상하고 있던 후금(이후 청나라) 사이에서 외교적 노선을 고민해야 했다. 이에 조선은 명나라의 전투에 지원을 나서기도, 후금을 이끌던 누르하치의 배려를 받아안기도 하며 일본과의 전투를 이어갔다.


그러나 이것은 표면의 전쟁일 뿐, 전쟁의 전방과 후방에서 이 구분은 명확하지 않음을 ‘최척전’과 연극 <퉁소소리>는 보여준다. 연극 <퉁소소리>는 왜군의 침략으로 서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조선의 백성들은 왜군의 칼날에 후두두 쓰러지고, 무대는 붉게 물든다. 포로로 잡기에 너무 나이 든 노인들만이 신세를 한탄하며 강가에 앉아 있을 뿐이다. 그러나 이후 장면들에서는 다수의 의리 있는 일본인과 중국인, 베트남인이 등장하며 주인공 최척과 옥영을 살려낸다. 남장한 옥영을 거두어준 일본인 상인 돈우, 최척의 능력을 높이 평가한 명나라의 군인, 옥영과 최척의 재회를 도와준 안남(베트남)의 백성들, 최척과 아들 몽석의 도피를 도와준 조선 출신의 청나라 군인. 그들은 살기 위해 열심히 타국의 언어를 익히고, 손발을 다 써서 옆의 죽어가는 사람을 살려낸다. 전쟁이 만들어낸 인터내셔널한 공간성은 국적과 관계를 모두 혼잡하게 했다. 단지 사람만이 무대에 남았다.


인터내셔널의 혼잡함이 응집적으로 나타난 것은 중국에서 조선으로 귀향하기 위해 배에 오른 옥영, 몽선, 홍도의 태도에서이다. 그들은 일본어와 중국어를 배우고, 각 나라의 옷을 모두 준비하여 배에 오른다. 명의 정비선을 만났을 때는 중국의 차 상인이라 자신을 칭하고, 일본의 군사들을 만났을 때는 길을 잃은 일본인 어부라고 자신을 소개한다. 작은 섬에 좌초되며 해적선을 마주했을 때는 식량을 숨기고 중국인 어부라고 말한 덕에 배는 잃었지만, 목숨은 부지할 수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어떤 나라 사람이 되는 것에 도덕적 판단을 세우지 않았다. 몽선과 홍도가 결혼한 것과 같이 그것은 언제든 선택할 수 있고 선택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30년을 국외에서 보내다 다시 남원에서 재회한 인물들은 다시 모였기에 행복할 수 있겠으나, 그것이 남원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살아있다면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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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은 기존의 질서를 흩트린다. 한편 질서의 붕괴는 의외의 해방 공간을 마련하기도 한다. 일상의 세계에서 가능했던 원칙과 당위가 처참히 무너지는 순간, 사람들은 고통받는 동시에 자신의 기준이 특수한 조건에서만 가능했음을 받아드린다. 그것은 새로운 세계의 질서의 계기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해방적이다. 연극 <퉁소소리>에서 이러한 해방의 순간은 상대적으로 사회에서 억압받아 온 여성 인물들에게서 특징적으로 발견할 수 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당시 젊은 새댁이었던 옥영은 남장을 하고 피난길에 오른다. 옥영의 신분을 고려했을 때 양반집 규수가 바지를 입고 상투를 올리는 등 남정네의 차림을 하는 것은 일상적으로는 수용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과 남편의 부재라는 극단적 상황에서 옥영과 주변 인물들은 기꺼이 옥영의 ‘남성의 역할’을 받아드린다. 남성의 복장을 한 옥영은 왜군에 포로로 잡혀서도 남성으로 인식된다. 옥영은 남성 복장을 했기에 여성 대상 폭력으로부터 일차적으로 자신을 보호할 수 있었고, 일본인 상인 돈우의 뱃일을 도우며 그의 신임을 받을 수 있었다.


더욱 흥미로운 점은 옥영이 여성임이 공개된 이후 주변인들의 반응이다. 안남(베트남)에서 최척과 기적적으로 재회함에 따라 옥영이 여성임이 알려지게 된다. 돈우의 입장에서는 자신을 기만했다는 점에서 옥영이 충분히 괘씸할 수 있는 상황이었으나, 그는 이를 하늘의 뜻으로 이해하고 오히려 두 부부를 축복해준다. 최척 역시 억척같이 살아남아 재회한 자기 아내와 하늘에게 감사할 뿐 그녀를 의심하지 않았다. 


나에게 이는 ‘화냥년’이라는 단어를 생각나게 하는 대목이었다. ‘화냥년’은 ‘환향녀’에서 유래한 단어로 병자호란 당시 청나라에 인질로 끌려간 조선 여성들이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을 때, 그들의 정절을 문제 삼던 데에 기인한다. 최척은 자신의 아내가 외국 남성들 사이에서 4년간 함께 했음에도 그녀의 정절과 신의를 의심하지 않았다. 그녀가 남장한 상태였기 때문-모두에게 남성으로 인식됐으므로-일 수도 있지만, 시대 배경을 고려했을 때 전부였을 수는 없다. 오히려 생존 우선주의라는 허용 속에서 비록 남장의 방식을 빌리기는 하였으나 여성 역할과 의무의 확대·변형은 아니었을까 적극적으로 해석해본다. 더욱이 옥영의 일본 시절 경험이 이후 조선으로 항해해 오는 과정에서 중요하게 활용되었다는 점은 그녀의 경험이 단지 소비되고 사라진 일화가 아님을 짐작하게 한다.


주목해 볼 두 번째 인물은 최척과 옥영이 중국에서 낳은 둘째 아들 몽선의 아내 홍도이다. 홍도는 조실부모한 외국인 여성이다. 그러나 최척과 옥영은 홍도와 아들의 결혼을 기쁘게 허락한다. 이는 분명 전쟁의 참상을 몸으로 경험했으며 이국에서 이방인으로 지낸 그들의 경험이 반영된 결정이었을 것이다. 홍도는 또한 자기 남편보다도 먼저 시어머니인 옥영의 뜻을 받아들인 인물이기도 하다. 배를 지어 조선으로 향하자는 옥영의 말에 몽선은 극구 그녀를 말리지만, 홍도는 과감한 결정으로 운명을 만드는 길을 용기 있게 선택한다. 가난한 최척과 결혼하고자 했을 때 옥영의 어머니는 이를 극구 말렸다. 이에 옥영은 목을 매달아 자결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혼인 이후 전쟁을 겪고, 아이를 낳고, 풍진 세상에서 살아가면서 옥영은 단단히 말한다. 살아있으면 살아야 한다고. 배가 좌초되어 죽을 위기에 처했을 때 옥영은 다시 한번 죽을 결심을 하지만, 며느리 홍도는 이제껏 옥영이 해왔던 말을 다시 돌려준다. 살아있으면 살아야 한다고 말이다. 이러한 홍도의 모습은 젊은 옥영의 모습의 재현인 동시에 최씨 가문, 혹은 한 세계의 미래를 보여주는 상징과도 같다. 


 

 

전쟁 중에도 퉁소를 챙기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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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척은 아내와 함께할 때도, 두 번의 전쟁에 나서는 중에도 퉁소를 챙긴다. 연극<퉁소소리>에서도 우리는 최척의 대사만큼이나 구슬픈 퉁소 소리는 자주 맞이하게 된다. 아내와 주막에서 술을 주고받으며 시를 지었던 호시절에도, 전쟁 중 포로로 묶여 있을 때도 퉁소를 분다. 이는 안남(베트남)에서 기적적으로 아내와 재회하는 계기가 되기도, 같이 포로로 묶여 있던 큰아들 몽석을 만나게 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최척의 퉁소는 단지 극적 장치였을 뿐일까. 고선웅 연출이 ‘최척전’을 연극화하는 과정에서 퉁소 소리를 핵심 소재로 끌어올린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연극 <퉁소소리>는 전쟁 배경의 연극임에도 극 진행이 상당히 유머러스한데. 그것이 민중이 전쟁과 같은 참상에서 삶을 맞이하는 태도이기 때문 아닐까. 살아있으면 살아야 한다는 주문은 인간에게 잔인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 외에 삶에 대해 할 수 있는 말을 찾을 수 없다. 인간의 생명과 삶에 대한 오랜 이야기들은 모두 동일한 의문과 반감에서 시작하지만 좀처럼 더 나은 문장은 찾지 못한 채 각자의 경우를 풀어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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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 <퉁소소리>는 살아감에 대한 연극이다. 왜 이 비참함 속에서도 우리가 꾸역꾸역 끈질기게, 때로는 구차하게라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해 말하는 연극이다. 그 방식은 무엇이어야 할까. 그것은 최척이 좋을 때나 슬플 때나 등에 지고 다니는 퉁소와 같은 것이라고 연극은 말하고자 하는 듯하다. 종장에 이르러 연극의 배우들은 무대 뒤편에 서고 그들은 그림자가 된 뒤, 무대는 완전히 암전에 이른다. 이는 마치 책이 닫히는 듯한 모습이다. 책의 한 페이지가 된 최씨 일가의 이야기는 계속해서 우리에게 읽힐 것임을 암시하는 장면이기도 했다. 끈질기게 마침내 살아가는 우리들의 의지 앞에, 최척과 옥영에게 주어진 몇 가지의 기적들은 사소한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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