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렬 독서, 병렬 독서라는 말을 들어본 적 있는가?
‘직렬 독서’는 한 권을 시작하면 그 한 권을 모두 읽은 뒤에 다음 책을 시작하는, 한 번에 하나씩만 읽는 독서법을 말한다.
반면 ‘병렬 독서’는 여러 권을 동시에 저마다 다른 속도로 번갈아 가며 읽는 독서법을 말한다.
‘병렬 독서’라는 말은 출판사 민음사의 유튜브 채널인 ‘민음사 TV’에서 사용된 뒤 널리 퍼졌다. 책을 사 두거나 빌려 두고 끝까지 완독하지 않은 채, 여러 책을 동시에 맛보는 사람들에게는 흔히 일종의 죄책감이 따른다. 집에 쌓아놓은 것들부터 먼저 읽어야 하는데, 아직 그 책도 다 못 읽었는데... 이런 마음에 새 책의 구매와 시작을 망설이던 사람들에게 병렬 독서라는 단어는 일종의 면죄부가 되어 주었다. 자신의 독서 방법을 산만함이 아니라 하나의 개성 있는 독서법으로 인식하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더는 끝까지 못 읽는 나쁜 습관이 아니라, 멋진 이름을 가진 독서 태도가 된 것이다. 필자 역시 지독한 병렬 독서가로서 이 표현에 깊이 공감한다.
민음사TV 채널에서는 민음사 편집자들이 병렬 독서 중인 책의 목록을 살펴보는 코너가 인기를 끈다. 이번 글에서는 그 형식을 빌려, 필자의 책장 속에서 동시에 달려가고 있는 책들을 몇 권 함께 나누고자 한다.
1. 『세계 끝의 버섯』, 애나 로웬하웁트 칭, 현실문화
![[크기변환]세계끝의버섯.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8/20250824212722_ndpbkmlc.jpg)
송이버섯이 어떻게 자라고 어떻게 채취되는지 알고 있는가? 이 책에 따르면 송이버섯은 폐허에서 자란다. 더 자세히 말하자면, 플랜테이션 농장 등을 만들기 위해 기존에 있던 토착 식물들을 밀어버리고 시간이 흘러 농장도 사용하지 않게 되면 그 땅은 황폐해진 채 남겨진다. 그러면 그 황폐한 환경을 이겨낼 수 있는 소나무가 자라게 되고, 그 소나무가 30~40살이 되면 그 소나무에서 송이버섯이 자란다. 이 책의 저자인 인류학자 애나 로웬하웁트 칭은 이 송이버섯을 따라간다.
송이버섯이 자라는 환경(=폐허), 그리고 그 폐허를 만든 자본주의, 송이버섯 채집인, 판매 중개인, 수출/수입업자, 그리고 소비자까지 송이버섯의 궤적을 따라가며 자본주의와 인류에 대해 다룬다. 송이버섯을 둘러싸고 있는 공급사슬과 그에 얽힌 수많은 인물의 저마다의 사정, 역사를 살펴보다 보면 어느새 이 책에 깊게 빠져들게 된다. 인문학 분야의 서적을 좋아하는 필자는 이 책에서 매우 흥미를 느꼈다. 하지만 책에서 사용되는 언어와 개념들이 생소한 면이 있어, 이런 형식의 독서가 익숙지 않은 독자에게는 독서 난도가 높게 느껴질 수 있는 책이다. 또 책의 판형이 크고 페이지도 500쪽이 넘어 얇은 편이 아니기에 ‘진입 장벽’이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그런 장애물들에 걸려 넘어지지 않고 찬찬히 책이 하는 이야기를 들여다보면 현시대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을 느낄 수 있다.
2. 『캐리』, 스티븐 킹, 황금가지
![[크기변환]캐리.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8/20250824212732_uqwwwvrv.jpg)
지난 해, 공포 소설의 대가인 스티븐 킹의 『미저리』를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스티븐 킹 원작의 영화 <샤이닝>, <쇼생크 탈출>, <그것> 등을 매우 인상 깊게 본 바 있어 스티븐 킹의 소설 전부를 읽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따라 도서관에서 빌려온 『캐리』는 스티븐 킹의 장편 소설 데뷔작으로, 초능력을 가지고 있는 고등학생 소녀 캐리 화이트에 대해 다룬다. 주인공 캐리는 어린 시절부터 통제할 수 없이 격정적인 감정에 휩싸이면 자신도 모르게 염력을 사용하였다. 광신도적인 기독교 근본주의자 어머니 아래서 심한 억압과 통제를 받으며 살던 어린 캐리가 집 지붕 위로 엄청난 양의 돌멩이와 얼음덩어리를 떨어뜨려 이것이 지역 신문에 난 것으로 소설이 시작된다. 물론 신문 기사는 이 ‘우박 사건’이 세 살배기 여자아이가 일으킨 것이라고는 전혀 모른 채 쓰여 있다.
이 소설의 큰 특징은 서술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전개되지 않으며, 여러 유형의 텍스트가 혼재되어 있다는 점이다. 초능력자 캐리 화이트에 관한 신문 기사, 인터뷰, 논문, 저서 등 수많은 글과 캐리의 시점에서 진행되는 스토리가 번갈아서 전개된다. 독자는 처음에 캐리가 초능력자인 것을 모르지만, 캐리에 대한 정보들을 읽으며 점점 캐리가 어떤 인물인지 알게 되고, 도대체 캐리가 나중에 어떤 사건을 일으킬지 불안해하게 된다. 이러한 서술이 마치 한 인물에 대한 다큐멘터리 영상물을 그대로 활자로 옮겨놓은 듯해 매우 흥미롭다. 1/4 정도 읽은 채 계속 책장에 꽂아 두었는데, 이 글을 쓰면서 다시금 읽고 싶어졌다. 얼른 『캐리』를 마저 읽어야겠다.
3. 『에디토리얼 씽킹』, 최혜진, 터틀넥프레스
![[크기변환]에디토리얼 씽킹.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8/20250824212739_irigmfug.jpg)
잡지 에디터 경력을 가지고 있는 저자는 정보와 레퍼런스가 가득한 세상에서 편집자적 사고가 필요한 이유를 말한다. 저자가 말하는 편집이란 ‘우리가 세상을 인식하고 기억하는 방식 그 자체’이며, ‘무질서한 재료를 분류하고 조합해 새로운 의미를 부여하는 일련의 과정’이자, 우리가 우리의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방식이다.
편집자의 노하우를 한껏 담은 이 책은 재료 수집, 연상, 레퍼런스, 생략, 질문 등의 목차로 구성되며 온갖 정보의 바다인 이 세상에서 나에게 필요한 정보들을 모아 의미를 부여하고 나만의 것으로 재창조하는 과정을 다룬다. 이는 단순히 잡지 에디팅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여러 부분에 적용할 수 있는 내용이다.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인간은 누구든 성공과 실패를 고루 겪는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작은 실패의 순간을 유독 예민하게 그러모아서 ‘나는 의지박약이야’라는 자아상을 그리고, 다른 사람은 작은 성취의 순간을 유독 예민하게 그러모아서 ‘나는 마음먹으면 해내는 사람이야’라는 자아상을 그리기도 한다. 객관적 사건의 양상보다는 해석과 의미 부여가 인지적 차별점을 만든다.
‘의미의 최종 편집권이 나에게 있다’라는 것이 큰 위안이자 삶의 자산이라는 저자의 말이 낯설면서도 기분 좋게 다가왔다. 내가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조합하고 어떻게 이름 붙이냐에 따라 무궁무진한 결과물을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은.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이 시대를 사는 우리가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하는 메시지 같다.
4.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 신형철, 한겨레출판
![[크기변환]슬픔을공부하는슬픔.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8/20250824212749_acugdqzv.jpg)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은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2010년 이후 발표한 글들을 묶은 책으로, 타인의 슬픔을 바라보고 배우는 행위에 대해 사유한다. 신형철 문학평론가가 시, 문학, 영화, 음악 등에 대해 써 내려간 평론들과 5.18 민주화 운동, 제주 4.3사건, 세월호 참사 등 대한민국에서 일어난 가슴 아픈 역사를 다룬다.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술술 읽히는 문장과 차분하고 사려 깊은 톤으로 우리가 왜 타인의 슬픔을 공부해야 하는지를 설득력 있게 전한다. 타인의 슬픔이야말로 ‘인간이 배울 만한 가장 소중한 것과 인간이 배우기 가장 어려운 것’이라고 말하는 이 책은 타인의 슬픔에 무감각해지기 쉬운 현시대에 중요한 메시지로 남을 책이다. 필자는 1/5 정도를 읽은 상태인데 얼른 나머지 부분도 읽어보고 싶다.
5. 『이미지란 무엇인가』, 이솔,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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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고 단단한 판형과 빨간 표지로 딱 보자마자 ‘예쁘다’라고 생각한 책이다(책을 사 모으는 사람에게는 책이 예쁜 것 등 소장 가치를 높여주는 요소도 꽤 중요하게 작용한다). 이 책은 스마트폰과 스크린을 비롯한 새로운 미디어로 가득 찬 이미지의 시대에서 우리가 이미지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 것인지를 철학적으로 논의하고 있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과 그로부터 영향을 받은 데카르트, 흄 등 근대 철학자들은 이미지를 실재의 모방, 열화판이자 실재보다 열등한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이미지가 세상을 지배한 지금, 이러한 사상은 우리 시대성을 반영하여 재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지는 지금도 실재의 열화판인가? 2025년 지금은 온 세상의 시선 닿는 모든 곳이 이미지로 둘러싸여 있는데도? 이 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여러 철학자의 논리를 설명하며 이미지에 대해 탐색한다. 이미지란 무엇인가? 이미지는 어디부터 어디까지를 말하는가? 이것이 궁금하다면 이 책을 추천한다. 필자는 완독까지 절반 정도를 남겨두었다.
6. 『전시디자인, 미술의 발견: 작품은 어떻게 스토리가 되는가』, 김용주, 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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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국립현대미술관 소속의 김용주 전시디자이너의 저서로, 많은 이에게 생소할 ‘전시디자인’이라는 분야와 그 과정을 다루고 있다.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는 전시 기획자, 전시디자인 팀이 힘을 합쳐 만들어 나간다. 대한민국의 공공기관으로서 늘 큰 규모와 높은 완성도, 그리고 국가의 자본력을 보여준다고 생각했던 국립현대미술관의 전시들이 어떤 노고와 어려움을 거쳐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이루어졌는지 솔직하게 밝히고 있는 이 책은 시각미술 전시 분야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볼 가치가 있다. 필자는 특히 한 작가의 개인전이나 회고전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작가에 대한 진심어린 존경심과 애정이 없으면 불가능에 가깝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이 점이 몹시 인상 깊었다. 완독까지 약 1/5 정도를 남겨두고 있는데, 술술 읽히는 문장들이고 사진 자료가 많이 수록되어 있어 한 두 시간이면 다 읽을 분량이지만 나를 기다리는 책들이 너무 많아 아직 완독하지 못했다. 하지만 정말 재미있고 유익한 책이며 올해 읽은 책 가운데 나에게 가장 큰 배움을 주었다.
7. 『꽤 낙천적인 아이』, 원소윤, 민음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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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스탠드업 코미디언 원소윤은 자신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 소설인 『꽤 낙천적인 아이』를 출간했다. 원소윤은 유튜브 콘텐츠 속 코미디에서 보여준 특유의 유쾌함과 날카로움으로 한 아이의 성장기를 써냈다...라는 후기를 들었다. 사실 이 책의 내용은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책 표지와 책등, 뒤표지를 읽은 것으로도 병렬 독서 목록에 넣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활자를 읽긴 읽은 셈이니까.
원소윤의 코미디를 좋아해 그가 출연한 영상을 찾아보기도 한 필자는 소설에서도 원소윤의 매력을 물씬 느낄 수 있으리라고 기대한다. 원소윤의 ‘낙천적’ 성장기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읽어보자. 필자도 그 여정에 함께하겠다.
8. 『자몽살구클럽』, 한로로, 어센틱
![[크기변환]자몽살구클럽.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8/20250824212837_rgxpuvxt.jpg)
싱어송라이터 한로로는 지난 8월 4일 EP <자몽살구클럽>을 발매했다. 국어국문학을 전공한 그는 약 한 달 전, 같은 제목의 소설 『자몽살구클럽』을 먼저 세상에 내놓았다. 7개의 트랙으로 구성된 이번 앨범은 소설의 서사를 음악으로 옮겨온 결과물이다.
자몽살구클럽? 귀엽고 상큼한 이미지의 단어이지만 자몽과 살구의 앞 글자를 따면 다름 아닌 ‘자살클럽’이 된다. 이 소설은 죽고 싶어 하는 네 명의 아이들 소하, 태수, 유민, 보현이 서로를 살리기 위해 결성한 비밀클럽 ‘자몽살구클럽’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필자는 소설 출간 소식을 접했을 때는 가볍게 지나쳤으나, EP <자몽살구클럽>을 듣고 깊은 인상을 받아 책을 손에 들게 되었다. 아직은 초반부 몇십 페이지를 읽는 중이지만, 그 나이대 아이들이 감당해야 하는 고통과 슬픔을 정확하게 포착하려는 작가의 시도가 느껴진다. 어른들이 미처 짐작하지 못하는 자리에서 혼자 버티고 있을 어린 마음들이 얼마나 많을까. 한로로는 그 아이들에게 다가가 지켜주고, 어루만져주는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한다. 독자로서도 이 소설이 다친 마음들에 좋은 반창고가 되어주기를 바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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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렬 독서는 집중보다는 리듬에 가깝다. 한 권에 깊이 몰두하는 독서가 잠수함이나 스쿠버다이빙 등 심해 탐험이라면, 병렬 독서는 파도 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서핑이다. 책마다 다른 호흡을 따라가며, 그때그때의 마음과 지적 욕구에 맞춰 독서의 리듬을 조율할 수 있다. 이에 따라 독서는 의무가 아니라 생활에 스며드는 호흡이 된다.
또한 병렬 독서는 미완을 견디는 태도이기도 하다. 필자는 한 권을 끝까지 읽고 나서야 의미가 생기는 것이 아니라, 여러 권을 동시에 붙잡고 있는 상태 자체에 가치를 둔다. 아직 끝나지 않은 책을 품은 채, 열려 있는 사고로 천천히 여러 갈래의 흐름을 따라가는 것. 이러한 과정을 통해 독서가 조금 더 삶과 섞여있는 것, 나와 가까이 있는 것으로 인식된다면 그 자체로 충분히 의미 있지 않을까. 물론 한 권이 지겨워질 때쯤, 자연스럽게 다른 책으로 눈을 돌릴 수 있다는 점도 병렬 독서만의 은혜로운 매력이다. 병렬 독서의 세계에 함께해보지 않겠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