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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잔향] 명사

1. 실내의 발음체에서 내는 소리가 울리다가 그친 후에도 남아서 들리는 소리.

2. 남아 있는 향기.

 

- 국립 국어원 표준 국어대사전

 

     

 

1. 들어가며 – 잔향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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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기다리는 이가 '여기' 있고, 닿고자 하는 것이 '저기' 있다. 나를 '영'으로 칭하고, 저기 있는 것을 '백'이라 칭해보자. 

 

숫자 0에서 하루가 지나는 만큼 1씩 늘어난다. 1, 2, 3, 4... 10까지 셀 적에는 마냥 언제 끝이 오나 막연하기만 하다. 30쯤 달했을 땐? 서서히 설레기 시작한다. 50은 어떠한가? 시간이 이렇게 빨랐나 체감이 오면서도, 아직은 때가 아님을 안다.


76, 77, 78... 슬슬 끄트머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80, 85, 90... 이때쯤엔 또 신나기만 하지 못한다. 95다. 두근거리기 시작하다 98, 99엔 슬슬 기분이 가라앉는다. 100이 다가온다는 건 결국, 이 긴—기대감의 선상 아래로 내려와야 한다는 뜻이 아니겠나.


‘기대감’이라는 특유의 붕붕—거리는 마음은 꽤 현대음악을 닮아 있다. 어여쁘지만 아주 삐딱하다. 적당선이라는 게 없고, 확—치솟거나 저 땅끝 아래로 처박힌다.


이 불규칙하고 쨍한 색감의 것을 풍선에 비유해 보자. 동그란 풍선 하나가 터졌을 때, 상상한 만큼 혹은 그 이상으로 화려한 컨페티가 흩날리면 강한 만족감을 주겠지만, ‘펑!’ 하고 터져 나왔는데 아무것도 없거나, 도리어 물에 젖은 휴지 더미가 툭— 하고 바닥에 떨어져 신발 위로 물기가 튄다면? 그 순간, 세상의 모든 것들이 불협하기 시작한다.


실망과 환희, 양극단을 오가게 하고, 사람을 흔들어놓는 게 이 기대감이겠다. 어떤 때를 바란다는 것. 원하고 기다린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결과를 주는 건 아니지만, 그럼에도 반복해서 ‘기대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그렇다면, 클래식 안에서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을까? 팬이 특정 연주가의 공연을 기다리는 것, 자신이 좋아하는 작곡가의 연주를 기다리는 것, 공연 당일 무대를 기다리는 것, 곡이 시작되기 직전의 적막 속에서 숨 죽이는 것.


조금 더 음악 아래로 내려가 보자. 좋아하는 악장을 기다리는 것. 악보 안에서 음표와 음표 사이의 표현을 기다리는 것. 연주가의 해석을 기다리는 것. 그리고, 활과 건반과 숨결 사이마다 서려 있는 잔향을 기다리는 것.


잔향? 잔향이 무엇인데?

사전에 따르면, 실내의 발음체에서 내는 소리가 울리다가 그친 후에도 남아서 들리는 소리. 또 다른 의미로는 ‘남아 있는 향기’를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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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작년 11월 18일에 명동대성당에서 바이올린 리사이틀을 관람한 적이 있다. 당신은 성당이라는 특수한 공간 안에서 예민한 소리를 내는 악기를 마주해본 적 있는가? 활이 현 위에서 한 번 스쳐 지나가면 그 길목의 뒤울림이 일반 공연장보다 미세하게 서늘하고, 기—다랗다.


그 점을 연주가가 충분히 귀로 인식하고 있었는지, 그냥 휙—스쳐 지나갈 수 있는 영역에서도 조금 더 머물거나 깊게 파동을 그려내며 소리를 충분히 ‘기다렸다’.


그러니 자연히 그 날의 관람객이었던 나는 이런 생각을 처음 하게 되었다. 이 음들, 사실 듣는 게 아니라, 보는 게 아닐까?


저 층고 높은 천장 아래, 시린 기운을 품은 이 공간 안에서 아주 가녀려지고 울렁이는 현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 이걸 듣고 있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연주가를 응시하고 있지만, 사실 지금 눈에 담기지 않는 것에 이토록 집중하고 있지 않은가. 손만 앞으로 뻗어내지 않았을 뿐, 눈을 몇 번이나 깜빡이며 그것들을 담아내려 하지 않았던가?


외젠 이자이의 무반주 바이올린 소나타는 기승전결의 흐름이 있는 게 아니라 곡별로, 세부 악장별로 강박과 망상, 발라드, 새벽 등 7~10분 정도의 짧은 단막의 서사가 펼쳐진다.


당장 시각적 매체로 재생되지 않았을 뿐, 벽난로와 춤과 달빛과 분노는 이미 온갖 곳에 펼쳐진다. 음악은 듣는 것이 아니라 ‘마주하는 것’이라는 새로운 느낌표를 만들고 나니, 더 작은 영역의 것들이 세밀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음표와 음표 사이에서 벌어지는 서로 다른 해석법, 첫 음이 발생하고 공기 중으로 서서히 흩어지는 소리의 형태, 소리선 하나에서 나타나는 두께감, 8자 모양의 파동 등…


사실, 내게 이 장르는 음악이라기보다 개별 악기의 ‘목소리’와 ‘화음’을 담은 영화 한 편에 더 가깝다. 큰 건 아주 크게, 작은 건 아주 세밀하게— 오케스트라와 연주가들을 그렇게 응시하다 보니, 클래식 공연은 더 이상 내게 지루하거나 멀게 느껴지지 않는다.


이 재미를 알려준 ‘잔향’을 나는 늘 기다리고 있었다. 공연 전에 마음을 남길 부분을 미리 지정해 두는 버릇도, 어쩌면 그 잔향을 통해 비롯된 게 아니었을까? 그러니 자연히,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의 〈음악의 집〉 네 번째 연계 프로그램 〈소리의 향〉은 꽤 흥미롭게 느껴졌다.

 

 


2.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 – 음악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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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작년, 이자이의 무반주 바이올린으로 ‘소리를 응시하는 법’을 배운 그 같은 달 즈음에, 서초구에 음악 특화 예술교육 공간이 하나 생겼다. 바로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 서울문화재단이 운영하는 이 공간은 클래식 관련 공연과 프로그램을 다채롭고 활발하게 진행하고 있어서, 요즘 자주 드나들고 있다.


마스터클래스부터 북살롱, 사회공헌 프로그램 공연, 피아니스트의 플레이리스트를 나누는 프로그램 등… 클래식을 좋아하기만 한다면 아주— 흥미로운 기획들이 가득하다. (기획자 누구야, 진심 궁금)


이번 여름 시즌에는 상설 프로그램인 〈음악의 집〉이 7월 4일부터 8월 9일까지 운영되고 있었는데, 1층 라운지 공간에서는 하이엔드 오디오로 공연 실황을 감상할 수 있는 리스닝 룸, 자동연주 피아노, 향기 나는 책장, 음악가의 이야기와 전시, 시민이 직접 큐레이션한 플레이리스트 등 여러 콘텐츠가 준비되어 있었다. 이외에도 연계 프로그램이 네 차례 진행되었는데, 내가 방문한 날에는 마지막 회차인 〈소리의 향〉 퍼포먼스가 열렸다.


첼리스트 이금희와 작가 백정기의 협업으로, 소리와 향기를 결합한 형식의 공연이었다. 연주자가 특수 제작된 키보드를 누르면 음과 연결된 향이 분사되고, 그 위로 첼로 선율이 실시간으로 더해지며 퍼포먼스가 완성된다. 한정된 인원이 가까운 거리에서 음악과 향을 동시에 체험하는 구성이다.


첼리스트가 출연한다고 해서 당연히 첼로 연주를 듣게 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이날은 거의 DJ처럼 특수 제작 키보드를 연주해 주셔서 조금 색달랐다. 첼로 소리를 직접 듣지 못한 건 개인적으로 아쉬웠지만, (아무래도 요즘 현악기에 마음이 쏠려 있었던 터라) 한적하고 고요한 테크노 명상 클럽에 온 것 같은 분위기는 나름 좋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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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대략 시작 시간으로부터 10분 전에 도착해, 가방을 뒷자리 의자에 내려놓고 1층 라운지 공간 안쪽으로 향했다. 예전에 연계 프로그램 두 번째 회차에 참여했을 때, ‘한여름 밤의 꿈’을 떠올리게 하는 음악을 음표 자석에 적는 이벤트가 있었다. 그때 남겨둔 손글씨와 오랜만에 인사하고 싶었다.


오늘 가보니, 동그랗고 커다란 보름달이 그 곁을 지키고 있었다. 여긴 참, 무드를 잘 살릴 줄 아는 사람들이 많다. (블러드문 왜 기다리니. 여기 있는데) 자석 구경도 했고, 손도 씻었고, 물도 마셨으니, 이제 자리에 되돌아갈 시간이다. 소리의 향 퍼포먼스는 내게 어떤 감상을 남겨 줄 것인가?


공연 전에 받은 사전 안내 문자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앰비언트 뮤직을 듣는 시간이니 편한 옷을 입고 오시거나, 읽을 만한 책을 가져오셔도 좋습니다.”


앰비언트 뮤직이란 무엇인가? 분위기 중심의 전자음악으로, 전통적인 멜로디나 리듬보다 음색과 환경을 강조하는 음악이다. 딱히 개인의 해석이 개입될 틈도 없고, 뭐라 판단하기도 애매해서 그냥 듣기만— 하면 되는 그런 장르겠다. 다만, 오늘의 음악엔 아주 화려한 장치가 눈앞에 자리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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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적어도 20개 이상의 유리 공병 안에 액체 향수가 들어 있었고, 병들이 개별 선으로 키보드와 연결되어 있었다. 비주얼만 보면 어디 현대미술관에 있어야 할 것 같은 낯설면서도 미적으로 꽤 볼 만한 장치들이 줄줄이 나열되어 있었다.


사전에 ‘앰비언트가 뭔지’,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지’ 전혀 예상하지 않고 갔던 나로선 꽤 신선한 광경이었다. 

 

7시 30분, 사회자가 청중 앞에 나타나 오늘 연주될 곡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해주었다. 오늘 저 기이한 장치가 연주한 곡은 〈브라이언 이노〉의 〈Ambient 1: Music for Airports〉였다. 

 

작곡가 브라이언 이노는 이 곡을 공항에서 지루한 체류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었지만, 특유의 공간감과 분위기 덕분에 앰비언트 장르 안에서도 꽤 중요한 작품으로 자리 잡았다.

 

어떻게 듣지? 잠깐 고민했지만, 이내 이금희 첼리스트가 나타나 키보드 위를 두드렸다. 자연인 듯, 기계음인 듯— 듣기 좋은 소리에 금방 판단이 섰다. 그냥 멍—하니 소리에 따라가는 것보다, 오늘은 이 순간의 기억을 지금 바로 적어 두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소리의 향〉 퍼포먼스의 속기사가 되는 셈이다.


편한 복장을 갖춰 간 건 아니었지만, 마음만은 편하게. 다리도 꼬고, 태블릿을 꺼내 양손가락을 바삐 움직이기 시작했다.


 

 

3. 브라이언 이노, 앰비언트 1: 공항을 위한 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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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눈앞에 있는 것들을 나열해보자.


오렌지빛, 주황색빛, 쭉 이어진 공병들,

길고 꼬인 고무줄 젤리, 연두색, 빨간색, 노란색, 붉은 달.


뒤편 왼쪽 대각선에서는 매미가 쏴아—, 

오른쪽에선 지하주차장의 위잉— 소리가 들린다.

 

건반 소리는 BGM처럼 조용해서, 음악이 흐르고 있다는 사실조차 순간 잊을 만큼 잔잔하다. 앞에선 연주가 이어지고, 뒤에선 내가 양손으로 타닥이며 글을 쓴다. 누구는 좋아하는 연예인 사진을 둘러보고, 누구는 웹서핑을 한다. 나는 그 틈에서 타닥타닥, 기록을 남긴다. 유리 공병이 족히 스무 개는 되어 보이는데, 가습기처럼 하나씩 연기가 푸슝— 하고 솟는다.


저기에서 향기가 나는 걸까? 아니면, 애초에 이 공간이 향기로운 것일까? 조용한 곳에서 들으니 좋긴 하지만, 공항에서는 잘 들리지 않을 것 같은 곡이다. 약간 템플스테이의 현대화 버전 같기도 하다. 마침 내 왼쪽 뒤는 짙은 녹음(綠陰)이고, 기둥 위에는 커다란 스피커가 박혀 있다. 


화면의 핑크빛이 점차 영역을 넓히면 내 양손에도 긴 그림자가 드리운다. 검은색과 자줏빛이 엮이다가, 파란색과 하얀색이 교차해오고, 금세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뒤로 검게 물러난다. 내 앞은 침묵이고, 뒤에는 작은 두 사람의 소근거림이 왼쪽 어귀에 머문다. 오른쪽 옆에는 나처럼 무언가를 끄적이는 이가 있다.


유리 공병은 전체적으로 노랗고 황금빛 기운 안에 놓여 있는데, 안에 뭔가 개별적으로 담겨 있는 것 같기도 하다. 거리가 멀어 자세히 보기 어렵다. 음악이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사람들의 소근거림과 매미의 직선 물결이 공간을 채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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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두 번째 곡이다. 공항에서 이런 서사적인 체험이라니. 약간 테크노 파티에 온 듯한데, 몸을 움직이면 안 되고 소리에만 집중해야 하는 버전이다. 대자연의 높낮음을 그려낸 듯한 낯선 소리들이 가득하다. 아무것도 준비해 오지 않았다면 꽤 당황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향은 느껴지지 않는다. 아마 내가 너무 멀리 앉아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리 공병 장치 앞에는 두 줄의 빈백이, 그 뒤로는 세 줄의 의자가 나란히 놓여 있다. 나는 그중 세 번째 줄, 한가운데 자리에 앉아 있다. 공연 중간에 후기를 쓰니까 뭔가 웃기다. 

  

사실, 이금희 연주자의 손가락 움직임 자체는 보이지 않는다. 가끔 연두색 형광빛이 장치 위로 번뜩일 때만 그 움직임이 간헐적으로 스쳐 들어올 뿐이다.


브라이언 이노의 곡은 어떤가? 소리의 기본 음이 중심이 되기보다는, 잔향으로만 이루어진 음악을 듣는 기분이다. 가사로 표현하자면 하나면 족하다. "아—." ‘아’라는 소리가 하늘 아래 어디에서, 어디까지, 어떤 방향으로 날아오를 수 있는가?


혹시 비행기를 묘사한 걸까? 무언가를 느끼기엔 듣기 좋고, 파동은 넓고, 이명처럼 멍하게 몰입되지만—정확히 뭐라 말하긴 어렵다. 아주 암전한 백조 같은 테크노다. 이상하다. 시작의 음은 반드시 낮고, 뒤로 갈수록 점점 영역이 넓어지며 서서히 음량이 커진다. 


그래서 시작 전에 골드베르크를 틀어두었던 걸까? 모든 걸 잊고 새로 시작하라는 의미였을까? 원점에서 출발해야만, 이 대자연을 닮은 것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는 걸까?


제목은 그대로인데, 어느덧 세 번째 갈등체가 등장했다. 공항에서 이런 걸 듣는다고? 신기하다. 굳이 따지자면, 한국인의 애환 같기도 하고, 눅눅한 눈물방울이 옷깃을 꾹 적시는 느낌에 가깝다. 아까보다는 확실히 내려앉았고, 향기가 나는 듯도 하고—아닌가.


방금 라벤더 향이 스쳐 지나간 것 같다. 하지만 이 공간엔 원래도 은은한 디퓨저 향이 감돌고 있기에, 착각일지도 모른다. 이걸 제대로 느끼려면, 아마 빈백 쪽에 몸을 푹 뉘어야만 할 것이다.


엇, 이번엔 플로럴한 코튼 향이 피어났다. 옷장 안에 넣어두고 싶을 만큼 익숙하고,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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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지금 이 자리를 기록하고 있지만, 주변 사람들은 어떤가. 누구는 저 멀리 음악 감상 공간에 앉아 동영상을 보고 있고, 누구는 핸드폰 화면을 넘기고 있다. 졸고 있는 이도 있고, 그저 화면을 멍하니 바라보는 사람도 있다.


아— 갑자기 생각났다. 자랑거리다. 출입구에서 바이올린이 그려진 스티커를 받았는데, 정말 마음에 들었다. 원래는 그냥 방치하다가 잃어버리는 편인데, 이번에는 태블릿 케이스에 잘 붙여두었다. 


그런데 정말 향기가 안 나는 걸까? 이상하다. 어, 방금은 과일 향이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멀리 퍼지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걸까?


이건 소리도 아니지 않던가. 눈앞에 피어났다 사라지는 악기보다 훨씬 긴 생명력을 가진다.


음악은 아주 고요한 곳에 가두었을 때 비로소 그 가라앉는 모양을 제대로 보여주는 법이겠다. 향기도 마찬가지다. 코끝 아래로 천천히, 아주 천천히 다가온다. 어쩌면 이마저도 성급하게 판단하려는 내 성격이 드러나는 걸지도 모르겠다.


시간이 지나면 자연히 앞으로 올 텐데 뭘 그리 금방 추측하려 드는 걸까— 유리 공병이 정말 많다. 각자 이름표 하나씩 붙여 전시되어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과일 향과 플로럴한 향기는 가볍지만, 마냥 가볍기만 하진 않다. 존 케이지의 〈4분 33초〉를 자연풍의 뉴에이지 버전으로 체험하러 온 듯한 느낌이다.

 

이 공간의 중앙에는 하얀 기둥이 하나 있다. 기둥의 아랫면은 회색 스테인리스 같은 재질로 둘러싸여 있고, 그 투명한 표면 위로는 분홍, 파랑, 보라, 하양의 색이 차례로 번진다. 해변 위에 떠오른 석양 같다. 칵테일 같기도 하다. 

 

그 아래는 흩날리는 오렌지빛 촛불들이다. 왜 하필 촛불일까. 뚜껑이 회색이라 조명을 받아내며, 불의 중심 반짝임을 담아내기 때문이겠지. 아— 이제 처음의 그 코튼 향기로 다시 돌아왔다. 향기 자체는 강하지 않은데, 계속 맡고 있다 보니 코끝이 은은하게 피곤해진다. 원래 너무 좋은 냄새도 오래 맡으면 고단한 법이니까.


네 번째다. 왜 이렇게 소리가 점점 비장해지는 걸까. 문득 여기가 왜 ‘음악의 집’인지 궁금해진다. 거의 개선행진곡처럼 웅장하게 잔향들이 겹겹이 쌓여 올라간다. 내가 좋아하는 바이올리니스트의 활 소리의 중간 영역에서 피어나는 비브라토가 하나의 곡 전체가 된다면 아마 이런 느낌이겠다.


잠깐 핸드폰을 본 사이, 향기가 훅— 거세졌다. 소리도 다소 쨍해졌다. 오늘은 그냥 이렇게 자율적으로 운영되는 공연이었나 보다. 렉처형 진행을 기대한 사람이라면 다소 낯설었을 수도 있겠다. 익숙한 안내 없이 자유롭게 열린 공연은 어쩌면, 더 큰 몰입을 요구한다. 이번엔 파란색 라벤더 꽃 바디워시 향이 났다. 결국 바라보게 되는 건, 다시 핸드폰 하나다.

 

곡이 끝나고, 백정기 작가님이 나타나 이금희 첼리스트와 인사를 나누셨는데, 아— 뒤에서 소근거리던 분이 작가님이었다. (신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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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4. 돌아가며 – 들어내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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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신반포역 근처의 이 공간에 올 때면 늘 1층 화장실 옆에 있는 명언 자판기 같은 것에서 긴 글이나 짧은 글을 하나씩 뽑곤 했다. 오늘은 긴 글을 눌렀는데, 저번과 같은 것이 나와서 “에잇” 하고는 짧은 글을 다시 눌렀다. 5일엔 누구의 글귀였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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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진

 

 

그저 듣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들어내려 노력해야 합니다.

‘음악에서 무엇을 들어낼 것인가’

 

— 애런 코플런드

 

 

이 글이 적힌 영수증 재질의 종이를 손에 들자마자 나도 모르게 육성으로 “아… 알겠어요”를 외쳤다. 굉장히 저돌적이고, 내겐 강하게 와닿는 문장이었다. 나름 열심히 듣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눈앞에 한글이 나를 채찍질한다. 그래, 열심히 들어야지. 뭐든지.


오늘만 해도 어떤가. 여기 오지 않았다면 이런 앰비언트 뮤직을 어떻게 알았겠는가. 세상엔 참 다양한 장르의 ‘뮤직’이 있다. 공연 시작 전 틀어져 있었던 바흐의 골드베르크를 떠올려본다. 몇 번이었을까? 10번? 4번?


에이— 내가 어떻게 알겠나? 그냥 추측할 뿐이다.

애런 코플런드 씨가 ‘들어내려 노력하라’ 했지, 

번호를 맞추라고는 안 했다! (당당)

나는 그저 에어포트의 잔향을 기다릴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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