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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시대, 세대를 어우르는 음악이란 - 250(이오공)의 [뽕] [음악]

촌스러운 음악과 뉴에이지

by 김홍일 에디터
2025.07.09 11:37



단언컨대, 어린 시절 내가 처음으로 들은 전자음악은 '뽕짝'이었을 것이다. 아버지의 카 라디오에서 울리는 음악이 나의 음악의 한계였을 테니까. 동요는 배우기 위해서 들었을 테니 이것은 논외라고 해도, 뽕짝은 타인의 힘으로 세계의 한계를 강제로 넓힌 충격적 경험이었다고 본다. 어디로 가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지루한 컨트리 로드 속에서는 고향으로 보내달라는 구슬픈 성조보단 정신 없이 울리는 신디사이저가 울려댔다. 화장실이 급할 때도, 차가 막혀서 뻥뛰기 장사가 창문을 두들길 때도, 뽕짝은 라디오에서 끊임없이 재생되었다. 휴게소에서 천 원짜리 몇 장으로 즐길 수 있는 테이프 속에는 여러 가수들이 흥을 돋구고, 차 안은 테크노 메들리가 전복하고 있었다.


이렇듯 과거의 기억을 돌이켜보면, 뽕짝은 거부할 수 없는 음악의 장르 중의 하나이다. 제목은 몰라도, 관광버스에서 자주 들릴 법한 노래들은 어느새 촌스러운 음악이 되어버렸다. 이는 나이가 많은 사람들이 듣는다는 일종의 선입견에서 비롯한다. 어르신의 전유물이 된 뽕짝은 더 이상 들을 리 없는 시대의 뒤쳐진 장르처럼 보이곤 한다. 소위 음악 시장의 대표적인 소비 세대들은 '틀딱 음악' (나이가 많으신 분들이 틀니를 끼고, 틀니가 부딪히는 소리와 합쳐서, 나이가 많은 사람을 비하하는 말) 이라고 하면서 비하하는 것과 같은 이치인 것이다. 하지만 250의 음악 속에 잠재된 뽕짝은 충분히 세대를 관통한다. 다르게 말하면 시대를 관통하는 셈이다.


사실 흔히 들을 수 있는 뽕짝의 근원지를 살펴보면, 아마 트로트 특유의 리듬을 압축을 시킨 것으로부터 유래하지 않았을까 싶다. 자세히 살펴보면 트로트 리듬인 80~90 BPM에서 150~160BPM으로 배음을 끼워 넣은 것이다. 이러한 리듬은 이미 익숙한 리듬을 빠르게 만든 것이기에, 트로트에 친숙한 세대는 뽕짝에 대한 거부감이 다른 세대의 거부감보다 덜 하다. 하지만 뽕짝이라는 특유의 이미지는 퇴폐적, 쾌락적인 이미지를 동반한다. 이는 뽕짝의 소비처가 불분명하고, 나아가 밤에 영업하는 공간에서 울려퍼질 법한 음악이라는 선입견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미지는 세대적 호불호가 분명함과 어우러져, 뽕짝을 '촌스러운' 음악으로 만든다.


하지만 250이 추구하는 뽕짝은 우리가 흔하게 여기는 음악 장르의 이미지와 사뭇 다르다. 어른의 퇴폐를 젊은 이들의 유흥과 다를 바 없이 둔다. 다르게 말하면, 우리가 '퇴폐적'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대한 재정의인 것이다. 이러한 재정의는 세대를 관통하는 메시지로 작용하여, 청춘이라는 단어의 음악적 대치를 만든다. 또한 젊은 이의 음악만이 오로지 중심이 되는 사회를 냉소하게 꼬집는 느낌도 든다. 클럽에서 즐기는 일렉트로닉 뮤직과 뽕짝의 기본적인 차이가 무엇인가? 구조 연결, 사용하는 악기의 갯수? 방식의 차이에는 여러가지가 있겠으나, 듣는 이의 심상에 자라는 '흥'이라는 요소는 모두 동일하다고 봐야한다.


다른 시선으로 살펴보면 250은 케이팝이라는 대중음악의 앞장 선 프로듀서 중 한 명이다. 뉴진스의 앨범을 프로듀싱한 것과 더불어 그가 참여한 음악의 장르에는 젊은 세대의 소비가 월등히 많다. 그런 의미로 보았을 때, 뽕짝이라는 불분명한 장르 의 특징과 결합시킨 자신의 음악을 보여준다는 것은 새로운 도전을 넘어선 무언가라고 할 수 있다. 만약 음악이라는 예술에도 '작가주의'라는 이름의 평가 시도를 할 수가 있다면, 이오공의 시도는 격변이라고 보아도 좋다.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이질적이지만, 누구보다도 세대를 관통하기 때문이다.

 

 

 

 

앨범의 수록곡인 BANG BUS 는 제목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관광버스 안에서 흥에 못 이긴 사람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연상시키기 때문이다. 뽕짝이라는 음악의 대표적인 소비처는 아마 버스 안일 것이다. 자자는 아니지만, 버스 안에서 이뤄지는 어르신들의 춤사위는 젊은 세대들이 이해할 수는 없다. 하지만 좁은 공간에서 터져나오는 듯한 소리와 함께 퍼지는 버스의 경적 소리는 돌이킬 수 없는 곳으로 이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관광버스가 멈츨 수가 없듯, 마무리되는 그 순간까지 달리는 이미지를 고수하는 셈이다.

 


 

 

첫 번째 수록곡인 '모든 것이 꿈이었네'는 이 앨범의 거대한 주제의식과 맞닿아 있다. 젊음을 표현하는 단어 중에 '청춘'이라는 말은 '과거'를 염두해 둔 단어다. 푸르고 따듯한 봄은 어느새 지나가고, 무더운 여름이나 추운 겨울을 맞이해야 하는 인생의 첫 장을 청춘이라고 부른다면, 더더욱 과거를 전제한 말임을 알 수 있다. 분명 뽕짝이라는 형식을 빌려서, 빠른 배음을 진행하고 있음에도 슬픔의 정서가 물씬 풍기는 이유도 이러한 주제의식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곡 후반 김수일의 "내가 가수가 아니라," 라고 말하는 내레이션은 자조적인 의미보다 과거의 회한이 더욱 느껴진다고 할 수 있다.

 

 

 

 

만약 [뽕]의 주제의식이 과거의 대한 회한에 집중하고자 했다면, 이 앨범의 중후반부의 '나는 너를 사랑해'는 주제의식과 곡의 내포된 의미와 정확히 떨어진다. 정확하게 알 수 없는 가사들 속에 유일하게 전달되는 언어는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가사 뿐이다. 하지만 사랑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표현이 꽤 낯설게 느껴진다. 뽕짝이라는 장르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긍정적으로 활용하여 나타난 효과이다. 사랑을 논할 때, 나이와 성별에 구애 받지 않는다는 것과 맥락을 공유한다. 시간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지만 감정이 시간에 의하여 망가지지 않았다면, 감성의 대표격인 사랑은 시간의 영향을 받지 않을 것이다. 다르게 말하면 어른의 사랑이 젊은 이의 사랑과 똑같듯 아름다울 뿐이다. 다만 돌아오지 않을 시간과 아름다운 사랑이란 역설은 '나는 너를 사랑해'라는 곡의 주제의식을 더욱 강화하는 것이다.

 

 


 

'주세요'는 '나는 너를 사랑해'의 다음 수록곡이지만, 두 곡 사이를 공유하는 주제의식인 회한은 전혀 변하지 않는다. 처음 진행을 만든 후 몇 년을 고민하였다는 250의 인터뷰는 장르적 한계에 대한 치열한 고민이 느껴진다. 어쩌면 장르의 한계라는 것은 창작자에게 도전의 욕망을 불러 일으키는 열의로 느껴질 수 있다. '주세요'는 뽕짝의 장르적 특성과 젊은 세대의 주요 음악적 장르를 합친 음악인 것이다.

 

 

 

 

'피날레'는 제목과 아주 어울리는 음조를 가지고 있다. 특히 주목할 점은 '아기공룡 둘리' 의 OST를 부른 이수정의 청량한 음색은 마무리를 장식하는 데 가장 어울리는 선택이다. 이 앨범을 끝낼 때, 마무리를 장식한 것은 여전히 회한이다. 돌아오지 않을 과거를 논하는 것은 어쩌면 공허한 이야기일 수도 있다. 어떠한 결론이 부정적이라면, 앨범을 지배하는 회한이 듣는 이로 하여금 음악을 듣는 단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회한의 의미가 뽕짝이라는 음악의 이미지와 어우러져, 알 수 없는 감정을 자아낸다.


예술의 향유에 일정한 나이가 없자면, 소위 시니어 라고 일컫는 세대는 음악이라는예술 시장에서 상당히 소외되어 왔다. 특히 트로트와 같은 음악들이 세대의 범위 내에서 통용되지 않은 바는 여기에 있다. 어떠한 소비의 세대가 정해지지 않은 것이 정말로 올바른 길이라면, 250의 [뽕]은 세대를 가로지르는 음악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다. 나아가 [뽕]의 활용법, 혹은 새로운 장르적 한계를 파괴하는 대표적인 용례로 남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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