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이어폰 없이 한 달 살기 [음악]

글 입력 2022.07.16 13: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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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싼 돈 주고 산 이어폰을 잃어버린 지 어느덧 한 달이 되었다.

 

나를 포함한 바쁜 현대사회의 구성원들에게 이어폰이 없다는 것은 단순히 지루한 이동시간을 때울 수 있는 무언가가 없어졌다는 것 이상의 의미를 갖고 있다. 일상 속에서 가장 보편화된 문화예술인 음악과 영화, 드라마를 감상할 수 없다는 것을 넘어 현재 유행의 흐름에 뒤처지게 될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려면 이어폰 사용이 필요 없는 개인적인 공간에서 감상할 수 있는 시간을 따로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불편함 속에서도 나는 아직 새 이어폰을 구매하지 않았다. 분실에 대한 반성의 의미이다. 음악 애호가인 나에게 음악 감상에 시공간적 제약이 생긴 것은 정말 뼈아픈 일이다. 가장 큰 변화는 내가 듣고 싶은 ‘능동적’인 음악 감상에서, 어디선가 들려주는 ‘수동적’인 음악 감상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변화를 통해 얻은 것도 분명히 있었다.


가장 큰 변화는 현재 음악 시장의 흐름을 더욱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 되었다. 나만의 플레이리스트에 갇히지 않고, 주변 사람들이 듣는 음악을 함께 들으며 어떠한 음악이 어떠한 이유로 많은 사람들이 듣고 있는지에 대한 그림이 이전보다 머릿속에 더욱 뚜렷하게 그려졌다.

가장 놀란 것은, 특정 장르(록, 힙합 등)를 제외한 대부분의 음악에 생각보다 사람들의 취향이 확고하지 않았다. 다시 말하자면, 선호하는 음악이 따로 있다기보다는 좋은 음악 또는 유행하는 음악을 가볍게 듣는 사람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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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연 'POP!'의 포인트 안무(좌)와 아이브 'LOVE DIVE'의 포인트 안무(우)

 

 

이어폰 속에 갇혀있다 나와 가장 많이 체감하는 것 중 하나는 ‘음악의 시각화’이다. 분명 예전에는 어떤 노래에 대한 설명을 할 때 그 노래의 후렴구를 흥얼거리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얼마 전 친구들과 걸그룹 트와이스 멤버 나연의 신곡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는데, 아직 노래를 들어보지 않은 나에게 노래 대신 안무의 손동작을 보여주었다. 이어폰이 있었다면 집에 가는 길에 노래를 들어봤을 텐데, 집에 도착한 후 여유 시간이 생기고 나서야 노래를 듣게 되었다. 후렴구에 진행하는 그 짧은 손동작 안무에 음악 전체가 담겨 있다는 것이 새삼 놀라웠다.


이전에도 음악을 음악으로 설명하지 않는 것에 대한 편리함을 이용한 적이 있다. 외국 친구들에게 최신 K-POP과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 아이브의 ‘LOVE DIVE’에 대하여 설명해야 했었는데, 긴 말 필요 없이 깍지를 낀 손등 위에 얼굴을 대고 고개만 한 번 까딱하니까 모두가 단번에 이해하는 모습이었다.


이어폰 분실 후 요즘 내가 가장 음악을 많이 접하는 곳은 아르바이트 근무 중인 아동센터이다. 일하다 보면 아이들이 자주 최신 노래를 흥얼거리곤 하는데, 사실 이어폰을 잃어버리기 전까지는 별생각이 없었다. 그저 내가 듣는 음악과는 조금 다르니까, ‘요즘 어린 친구들에게는 저 음악이 유행하는구나’ 정도의 생각뿐이었다.

 

 

경서 '나의 X에게' MV

 

 

요즘 이 친구들에게 유행인 노래가 있다. 가수 경서의 ‘나의 X에게’라는 곡인데, 약 3개월 전 발매된 곡임에도 이제 와서 친구들이 이 노래에 꽂혀있다. 처음에는 아름다운 멜로디 때문에 내가 잘 모르는 동요일 것이라고도 생각했다. 나중에 찾아 들어보니 이 곡은 과거 미니홈피 감성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느낌이 강했다. 그럼에도 이 어린 친구들이 그 감성을 어떻게 이해하는 것이며, 전 애인과 가로수길과 한강공원에서 데이트를 했던 추억에 어떻게 공감하는 것인지 의문이었다.


이어폰이 있을 때 버스에서 한두 시간씩 음악을 듣다가, 이어폰이 없으니 집에서라도 한두 시간 음악을 감상해야겠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에 가까웠다. 버스에서 음악 감상 대신 다른 무언가를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집에 있는 시간 동안에도 그동안 해오던 것들이 분명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최신 유행 음악을 잠깐이나마 구경할 수 있는 시간은 자기 전이다. 오늘 해야 할 일이 더 이상 남아있지 않을 때, 침대에 누워 잠이 오기를 기다리기 전까지 들여다보는 핸드폰 속 숏폼 플랫폼이 소통 창구이다. 여기에는 최신 음악을 짜깁기한 수많은 콘텐츠들이 있는데, 센터의 어린 친구들이 즐겨 부르는 ‘나의 X에게’라는 곡이 굉장히 많이 등장하였다.


숏폼 플랫폼이 음원 스트리밍 플랫폼을 사용하지 않는 친구들이, 음원 차트에 관심 없는 친구들이 음악을 접하는 거의 유일한 플랫폼이었던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던 색깔 짙은 노래의 안무들 역시 숏폼에서는 이미 유행 중인 콘텐츠였다.


여기서 또 한 가지 특이점이 눈에 띄었다. 음원 차트의 곡들을 보면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었다. 너무나도 잘 아는 곡과 너무나도 생소한 곡. ‘어디선가 들어본’ 정도 하는 중간 느낌의 곡은 거의 없었다. 그런데 너무나도 잘 아는 곡은 숏폼 플랫폼에도 많이 등장하는 곡이었다.


얼마 전 노래방에 갔는데, 노래방 인기차트를 보니 앞서 말한 너무나도 잘 아는 곡들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었다. 즉, 음원 차트의 곡들과 실제로 체감하고 있는 유행 음악들이 다르다는 것이다. 이어폰 분실 후 음원 차트의 늪에서 벗어난 순간 느껴진 가장 큰 이질감이었다.


이처럼 이어폰 없이 생활한 한 달 동안 많은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이어폰은 나의 인생에, 우리의 인생에 반드시 필요하다. 왜 사람들이 집 앞을 나선 순간 이어폰을 놓고 왔으면 다시 집에 들어갔다 오겠는가? 이제는 새로운 이어폰을 구매할 예정이다. 한 달 동안 배우고 느낀 이 모든 것들에 대한 수업료를 지불했다는 마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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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호준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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