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해보니 웹툰을 꽤 오래 봤다. 십 년이 넘는 기간을 웹툰과 함께 했다. 그때는 '놓지마 정신줄'과 '와라! 편의점' 이 한창 연재 중이었고, '신의 탑'이 지금까지도 완결이 나지 않았을거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나는 보는 웹툰도 항상 많았다. 엄마는 그 많은 스토리를 다 기억할 수냐 있느냐고 물었다. 고등학교 때는 학업에 집중하고자 잠시 웹툰을 끊기도 했다. 수능이 끝나자 수업 시간에 몰래 밀린 웹툰을 정주행하긴 했지만 말이다. 시간은 무색하게 흘러 피아노 학원 구석에 쭈구려 앉아 웹툰을 보던 초등학생은 어느새 취업을 걱정해야 하는 나이가 되었고.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또 나는 여전히 네이버 웹툰창을 꿰뚫고 있다.
요즘 눈에 들어오는 신선한 신작이 많다. 몇 편 나오지 않은 아주 따끈 따끈한 신작들! 그 중 몇 작품을 함께 나누고 싶어 소개하고자 한다.
오사카 환상선
["김용은 우연히 야쿠자의 조카와의 싸움에 휘말리게 되고, 야쿠자의 명령으로 조선인 부락에 잠입하게 된다. 열 흘안에 신분증을 훔치는 임무를 실행해야하지만, 점차 마을 사람들과 동화되어 '오사카에 조국 세우기' 계획에 동참하게 되는데..."]
일제강점기 이후에도 일본에 남아 살아야 했던 조선인들에 대해 생각해본 적 있는가? 일제강점기라는 가슴 아픈 역사는 이미 다양한 매체를 통해 다루어지고 있으나, 재일조선인 커뮤니티를 다룬 작품은 아주 드물다. 역사책도, 다큐멘터리도 놓쳐온 이야기. 혀나현 작가는 재일조선인 소년 김용을 내세워 그들의 삶을 담담하지만 깊이 있게 그려낸다.
김융은 특별영주권을 소지하여 합법적으로 일본에서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일본인들에게 무시 당하고 경멸의 대상이 되며 하루하루를 버티며 살아간다. 그는 '너네 나라로 돌아가' 라는 외침에, '돌아갈 곳이 있어야 가지'라며 반문한다. 남한도 북한도 일본도 싫고, 그저 차별 받지 않을 수 있는 곳으로 떠나고 싶다고 이야기한다. 과연 그런 곳이 있을까- 라고 말하며 말끝을 흐리며 모두에게 질문을 되돌리는 김융은 과연 '나'가 그 자체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 공간을 찾을 수 있을까? 만들어낼 수 있을까?
의미 있는 소재와 만화다운 연출, 페브릭 소재의 질감과 강렬한 색감은 당시 1970년대의 오사카의 상황을 짙게 보여주고 있다. 어딘가 투박한듯하지만 세련된 그의 만화는 마치 잘 만들어진 영화와 같다. 단순히 재일조선인 소재를 통한 역사적 재현을 넘어, 보편적인 메시지와 감정의 층위에 도달한다. 국가와 민족 그리고 소속의 경계에서 정체성의 부유를 겪고 이방인의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을 모두의 이야기.
사사똑
["한 인간의 두 자아가 서로를 마주하게 된다"]
배경 없이 삐뚤빼뚤 그려놓은 사각형 컷 안에서 진행되는 사소한 이야기. 대충 생긴 인물들은 아주 친숙하고 우리의 삶과 닮아있다. 미니멀하고 소박한 그림체와 달리 꼬마비 작가가 던지고 있는 메시지는 결코 단순하지 않다.
취직을 하지 못한 주인공은 돈을 벌기 위해 '인격을 뽑아서 복제하는 프로젝트'에 지원을 하게 된다. 그 곳에서는 스피커 너머로 들리는 질문에 대한 답변을 통해 자아가 디지털화되는 작업을 진행한다. 3개월에서 6개월간 반복하여 주인공의 인격을 고스란히 옮기는데 완성했으나, 주인공은 그 날 퇴근길에 불의의 사고를 당하여 사망하게 된다.
업체에서는 모니터를 통해 주인공의 추출된 인격을 내보내 엄마와 조우할 수 있도록 하였다. 그렇다면, 과연 그는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가? 봉준호 감독의 미키17이 스쳐지나가는 이 작품은, '머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입니다' 라는 작가의 코멘트와 함께 빠른 속도로 달려나간다. Chat GPT를 비롯한 생성형 인공지능이 일상 속에 파고들고 있는 요즘, 내 Chat GPT는 내 말투와 사고 방식 그리고 정서적인 반응까지 모두 학습하고 있으며, 아마 머지 않아 혹은 이미 나보다 더 나같아질지도 모른다. 정말 머지 않은 미래의 이야기, 우리의 자아의 본질은 대체 무엇일까?
오버 더 레인보우
["좌절된 꿈과 우울증으로 인해 삶의 의미를 잃은 영운. 어느 날 정체불명의 감염사태에 휘말려 친구 상구와 함께 '유진 빌딩'에 갇히게 되고, 고립된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발버둥 치며 갈등을 일으킨다. 그렇게 절망과 혼돈 속에서 한달이라는 시간이 흐르는데..."]
만화책을 펼친 것 같은 작화. 한 컷 한 컷 쌓아올리는 섬세한 연출. 아포칼립스 물을 썩 좋아하지 않음에도 보게 된다. 흑백으로 전개되는 이야기 속 흩날리는 무지개 색의 피는 기존의 좀비와는 다른 이미지를 자아낸다.
무엇보다 감정선 표현이 참 좋다. 누가 더 좀비를 잔인하고 기괴하게 그리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재난의 소재는 인간성을 조명하기 위한 장치이니 말이다. 죽음 앞에서 인간이 어떤 감정의 스펙트럼을 드러내는가- 사회 체계가 완전히 붕괴되고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지면서 우리는 인간 자체의 바닥을 마주하게 된다.
지강아 작가는 은유와 상징, 그리고 다양한 구도와 연출을 통해 인물들의 감정과 서사를 섬세히 쌓아나가고 있다. 무채색임에도 느껴지는 프레임 속의 공기와 분위기는 독자들에게 엄청난 몰입감을 선사한다. 좀비물을 즐기지 않는 사람들도, 즐길 수 있는 것들이 풍부한 작품이다.
영화, 드라마, 책, 라디오... 이야기를 전달하는 다양한 매체가 있으나. 그 중에서도 웹툰만이 갖는 장점은 간편함이 아닐까 싶었다. 일주일에 정해진 요일, 5분 내외를 투자하여 스토리의 전개를 따라가는 웹툰의 방식은. 어느새 일상에 스며들어 꽤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몇 년씩 연재한 작품들 속의 인물들과 같이 성장해나가는 나를 발견한 적도 있다. 짧은 호흡으로 간편히 접할 수 있지만, 그리 가볍지 않은 감정과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작품들. 그 친절한 이야기의 매력!을 함께 공유하고 나누고 싶은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