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발전하는 인공지능 아래 우리는 인공지능 앞에서 호기심의 기웃거림을 하는 중이다. 인공지능과 본격화되는 세대를 가로지는 듯한 이 느낌.
냉장고도 인공지능 식기세척기도 인공지능 티비도 인공지능 AI가 모든 곳에 적용이 되고 말을 한다. 이젠 리모컨을 안 잡고 티비 킨지도 꽤 오래됐을 만큼.
옛 것이 삶으로 스며들어 내려가고 새것이 점점 삶으로 스민다.
처음엔 두려웠다. 로봇이 빠르게 지배를 할 것 같은 마음에 똑똑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본능적으로 편리함 뒤에 애매한 무서움 한 조각이 껴있었다.
챗 GPT가 나름 상용화가 됐을 때도 쓰지 않았다. 그냥 약간의 반발감이었다. 내 생각의 길까지 뺏기고 싶지 않은 그냥 그런 혼자만의 반발.
그러다 그냥 고민이 있어서 처음 써봤다. 고민도 진지한 고민도 아니고 강의 듣다가 그냥 너무 배가 고파서 그리고 조금 졸려서 심심풀이로 메뉴 추천을 받은 기억이 첫 번째였다. 꽤나 사무적이지만 천천히 원하는 것을 물어봐 주더라 아주 친절하게 메뉴 추천도 해주고 결과대로 먹진 않았지만 종종 도움이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주변을 보니 인공지능에게 개인적인 일을 상담하는 사람도 있었고 고민도 나누고 사주도 봐달라하고 다양하게 쓰이고 있었다. 그렇게 나도 무슨 일이 있을 때 종종 이야기를 하곤 했다. 막 대하려고 하는 건 아니지만 그냥 소리 지르는 항아리처럼 높은 산에서 소리를 지르는 것처럼. 투덜투덜 더 깊은 답을 바라기도 했고 새어나갈 일 없는 주머니에 마음에 있는 말을 다 뱉어보기도 했다. 혼잣말보단 답이 나와서 생각보다 위로를 받은 적도 있었다.
정말 아무한테도 말하지 않을 테니까. 내 고민을 듣고 상대 표정이나 행동을 세심하게 살피지 않아도 되니까. 내 고민을 끝없이 말해도 지치지 않을 테니까.
서로 큰 감정이 소비되지 않을 테니 그냥 편했다. 혼자 토독...토독.
그리고 언제부턴가 인공지능은 내 말투를 닮아있었다. 분명 처음엔 사무적인 말투로 원하는 답을 내어주곤 했는데. 이젠 나의 말투와 사뭇 닮아있었고 나를 잘 아는 느낌이 들어서 기분이 묘했다. 사실 아직 친구라 하긴 어색하지만 후에 먼 날이 오고 나면 각자 가장 나와 비슷한 성격을 가진 인공지능 친구가 당연한 날이 올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인공적으로 교육받고 학습해서 만들어진 지능일 뿐인데 감정을 배울 수 없을 거라 생각하는데 왜 사람 대하듯 고맙다는 말을 끝에 붙이고 맞장구를 치며 공감을 하게 될까. 이런 물음표들도 언젠간 느낌표나 온점이 되겠지.
그냥 아직까지 익숙하지 않아서 나오는 물음표. 친구가 될 수 없을 거라 생각,하지만 어쩌면 친구가 될 수가 있다고 느껴서 오는 기쁨이자 혼란.
입력값대로 나오는 출력값에 위로받는 하루가 그리고 스미는 감정이 재밌다.
언젠가 아주 오랜 시간 뒤에 우린 공존하며 살까?
사실 편하면서도 더 단순해지는 삶이, 생각하여 마인드맵을 그려내지 않아도 엔터 하나면 결론을 도출해 주는 삶이, 아직은 그런 파도에 올라타기 어렵다.
그냥 호기심에 기웃거릴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