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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나는 평소 전시회를 좋아한다. 미술관이나 갤러리를 찾는 일은 내게 일상 속 작은 여행과도 같았다. 눈으로 보는 감상이 아니라, 한 작품, 한 작가의 삶과 세계를 따라가며 느끼는 시간이 내겐 소중했다. 그래서 이번 일요일에도 자연스럽게 마이아트뮤지엄을 찾았다. 이번 전시의 주인공은 알폰스 무하였다. 전시회 포스터에 담긴 무하의 그림은 한눈에도 환상적이었다. 부드럽고 풍성한 선, 동화 같은 색채 — 포스터를 보는 순간부터 무하라는 화가에 대한 궁금증과 기대가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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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은 주말답게 많은 사람들로 북적였지만, 적당한 웅성거림마저 작품에 대한 기대감을 북돋웠다. 입구를 지나 첫 번째 공간에 들어선 순간, 나는 숨을 가만히 죽였다. 부드러운 빛을 받은 무하의 작품들은 한 점 한 점이 조용히 자신의 이야기를 건네는 듯했다.

 

전시는 총 네 개의 챕터로 구성되어 있었다. 무하의 초기 작업부터 아르누보 스타일 확립, 상업 예술과 민족 서사 작업까지. 마치 한 사람의 인생을 따라 걷는 듯한 구성 덕분에, 작품 하나하나가 단순한 '그림'이 아니라 '삶의 조각'처럼 느껴졌다.

 

가장 먼저 깊은 인상을 준 공간은 <아르누보의 꽃>이었다. 무하는 단순히 그림을 잘 그리는 화가가 아니었다. 그는 당대 산업화, 도시화의 흐름 속에서, 예술을 삶 가까이 끌어온 혁신가였다. 배우 사라 베르나르와의 협업을 통해 무하 스타일을 확립하고, 이후 상업적 포스터, 광고 디자인을 통해 대중과 소통했다.

 

술을 담는 통조차 무하의 손을 거치면 하나의 예술 작품이 되었다. 섬세한 꽃과 곡선이 어우러진 패턴, 부드럽게 번진 색채, 인체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닮은 라인. 제품의 기능보다 브랜드의 감성을 먼저 떠올리게 만드는 힘. 전시를 거닐며 문득 생각했다. "이토록 아름다운 광고라면, 제품을 떠나서도 오래도록 기억하게 되겠구나." 상업적 작품이라고 해서 무하의 철학이 흐려진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그는 '일상 속 예술'이라는 이상을 현실로 만들어냈다. 전시장 한쪽에는 당시 제작된 담배지, 샴페인 라벨, 향수 포스터, 심지어 치약 광고까지 다양하게 전시되어 있었다. 각각이 하나의 독립된 예술 작품처럼 빛났다. 무하는 상업과 예술, 대중성과 고급성의 경계를 허물었던 것이다.

 

하지만 전시를 따라가다 보면, 무하가 단지 상업적 성공을 좇았던 인물은 아니었음을 알 수 있다.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내면과 이상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났다.

 

1904년, 그는 편지에 이렇게 썼다.


"이 삶의 거대한 톱니바퀴에 짓눌려, 꿈과는 다른 일들에 휩쓸리는 고통을 당신은 모를 겁니다."

 

이 문장을 읽는 순간, 나는 발걸음을 잠시 멈췄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그림들 이면에, 무하가 느꼈던 갈등과 고뇌가 고스란히 전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상업적 성공에 안주하지 않았다. 무하는 자신의 뿌리, 슬라브 민족의 역사와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 예술을 바치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이 <슬라브 서사시> 연작이다. 이 대작들은 단순한 회화가 아니라, 하나의 민족 서사이자 무하 자신의 영혼 그 자체였다.

 

또한, 그는 체코슬로바키아가 독립했을 때 새 정부를 위해 우표와 지폐를 직접 디자인했다. 단순히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민족의 정체성을 시각화하고 세계에 알리는 일이었다.

 

그의 작업을 통해 나는, 예술이 단순히 미적 감상을 넘어 민족과 공동체를 위한 강력한 수단이 될 수 있음을 다시 한 번 깨달았다. 전시 마지막 공간에는 동포를 돕기 위해 제작했던 <안젤리카 토닉> 포스터도 전시되어 있었다. 상업 광고이면서도, 연대와 나눔의 마음이 담긴 작업. 그 앞에 오래 머물렀다. 돈을 벌기 위한 작업과, 마음을 담은 작업은 보는 순간 다르게 다가오는 법이다. 전시장을 나서는 길, 무하의 글귀 하나가 깊게 가슴에 남았다.

 

"예술가의 사명은 사람들에게 아름다움과 화합을 사랑하는 마음을 심어주는 것이다."

 

무하는 화려한 장식과 기교를 넘어, 사람들의 삶과 마음에 울림을 남기고자 했던 예술가였다. 그의 작품을 통해 나는 다시 느꼈다. 아름다움은 일상 속에 스며들 때, 비로소 진짜 힘을 갖게 된다는 것을.


이번 전시는 단순히 그림을 '보는' 시간이 아니었다. 그림 너머에 있는 무하의 신념과 고민, 꿈과 좌절, 그리고 끊임없는 도전을 '만나는' 시간이었다. 화려한 색채와 부드러운 선들 속에는 한 인간의 삶이, 시대의 고민이, 그리고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일요일 오후, 따뜻한 햇살처럼 부드럽게 스며든 이 감정은 내게 오랫동안 잔잔한 여운으로 남을 것이다. 그리고 언젠가 또 다른 작품 앞에서도, 나는 오늘의 이 깨달음을 조용히 떠올리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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