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약 2년 정도 에디터로 일했다. 글을 쓰고, 카드뉴스를 제작하고, 말맛을 다듬는 업이었다. 원래도 누가 시키지 않아도 노트북 켜고 앉아서 끄적끄적 글 쓰는 사람이라, 일하면서도 힘든 것보단 재미가 컸다만, 점차 콘텐츠를 기획하고 제작하는 과정에서 분명한 근거를 찾고 싶어졌고, 그래서 퇴사 후 쉬는 동안 3개월짜리 마케팅 부트캠프를 수강했다.
역시 먹고 살아갈 무기 하나 더 장착하는 일은 만만치 않았다. 명색이 마케팅 ‘부트캠프’답게 매일 새로운 개념과 툴을 익히느라 하루하루가 정신없이 흘러갔다. 어제 배운 것도 채 소화하지 못한 채, 낯선 정보를 꾸역꾸역 받아들이는 날들이 이어졌다.
뒤섞인 생각을 문장에 담아 정돈하는 습관이 있는 내게 글 쓸 시간이 잘 주어지지 않자 심리적으로 피로감이 쌓이던 시기, 책 <뇌가 힘들 땐 미술관에 가는 게 좋다>를 발견했다. 여느 때처럼 바로 이 책이 지금 내게 필요한 수다를 펼쳐줄 것이라 기대하며, 바쁜 일정에도 문화 초대를 신청했다.
[1] ‘치유’로의 예술
책은 ‘예술 활동’이 실제로 생리학적 이득을 제공한다고 설명한다. 즉, 그저 엔터테인먼트나 도피 수단으로 여겨지던 예술이, 실은 신체와 정신 상태를 즉각 나아지게 하는 ‘처방’으로의 역할을 수행한다는 것이다.
“예술은 자각의 정수다.”
어떠한 예술 경험이, 어떠한 생리적 이득을 제공했는지 알아보기 이전, 먼저 ‘예술’에 대한 개념을 짚고 가면 좋겠다. 책은 예술에 대해 ‘지금, 이 순간에 머물면서 주변 환경에 감각을 곤두세우는 것’이라 정의한다. 우리가 매일 아침 맡는 바깥 냄새도, 출근길에 마주하는 한강의 윤슬도, 요즘 이 시기에 만개한 길가의 벚꽃과 자목련의 색감도, 퇴근길 듣는 음악도, 자기 전 읽는 글도, 감각을 열어두기만 하면 예술적 경험이 될 수 있다. 예술적 경험을 하기 위해선 ‘현재를 만끽할 줄 아는 시각과 마음가짐’이 전제되는 셈이다.
“예술 활동이나 문화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은 나이가 들어 만성 통증에 시달릴 위험이 낮다는 사실이 연구로 밝혀진 바 있다.”
책은 예술적 경험에 따르는 생리적 이득을 다양한 연구 결과로 풀어낸다. 예를 들어, ‘자연을 보는 것’만으로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분비가 감소했으며, ‘그림 그리기 및 색칠하기’는 ‘편도체 활동을 감소’시켜 불안지표와 불안지각을 낮췄고, ‘시 읽기’는 긴장도를 낮추고 자신을 객관화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며, ‘글쓰기’는 혈압과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추고 통증과 우울감을 경감하는 등의 효과가 있었다.
삶이 버거울 때마다, 예술적 경험으로 회귀했던 순간들을 떠올렸다. 내 생의 문제와 비슷한 곤경에 처한 주인공이 등장하는 책에 몰입하고, 조도를 낮춘 방에서 인센스 스틱을 켜고, 음악이나 미술로 언어가 적확하게 표현하지 못하는 영역을 즐기던, 모든 회복의 순간은 단순히 육체적 쉼 때문이 아니라 예술적 경험의 효용이었음을, 책을 읽으며 알게 되었다.
[2] ‘자아 확장’으로의 예술
“예술은 경험이 더 돌출성을 띠게 해
신경가소성과 신경회로의 연결성, 그리고 한층 깊은 이해를 촉진한다.
예술과 미학이 교육과 일, 삶에 융합되면 우리는 학습 능력을 더 강화할 수 있다.”
예술적 경험은 개인의 쾌락과 치유를 넘어, 학습을 도와 자아를 확장시키기도 한다. 돌출성(뇌에 익숙하지 않은 새롭고 예외적인 자극을 의미)을 띠게 하는 ‘예술적 경험’은, 중요 정보는 더 깊게 연결하고, 덜 중요한 정보는 연결을 제거하는 방식으로 뇌의 신경 회로를 재배선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우리는 매일 성장하고 확장된다.
“능동적으로 경외감을 경험하는 사람은 자기조절 욕구가 덜하고,
불확실성에 대한 내성이 더 크며, 위험성에 대한 내성도 증가했다.”
“연구자들이 학습에 중요하다고 파악한 또 하나의 핵심 요소는 유머다. (…)
우리의 기대가 전복되었을 때, 그러니까 농담에서 영리한 배경 스토리를 깔아놓은 후
제대로 펀치라인을 날렸을 때 감탄과 관련된 뇌 영역에 불이 들어온다.
웃음은 뇌가 더 잘 돌아가게 한다.”
돌출성으로는 호기심, 경외감, 놀라움, 유머, 참신함 등의 감정이 있다. 책에 따르면, 이런 감정은 ‘그들 자신과 세상에 대한 인식’을 바꾸어 궁극적으로 자기 자신 그리고 세상 전체와 일치감을 느끼는 상태, 곧 ‘잘 사는 삶’에 가까워지게 한다. 물론 ‘잘 사는 삶’이라는 다소 추상적이고 거창해 보이기까지하는 단계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해도, 예술적 순간을 통해 날마다 좀 더 흥미로운 자신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히 의미가 있지만 말이다. 예술적 순간 이후 새로운 나를 마주했던 경험으로 미루어, 위 내용을 백분 공감하며 읽었다.
[3] ‘타인과 연결’로의 예술
예술은 타인과 연결에 있어서도 탁월한 매개로 작용한다. 공통된 예술 행위를 하는 집단의 사람들끼리는 그전에 없던 관용 등의 유대감이 증가했고, 예술은 상대를 있는 그대로 바라보게 하여 낙인 효과 또한 감소시킨 바 있다.
“음악과 춤, 퍼포먼스가 가미된 공동체 활동은
뇌에서 남을 생각하는 마음과 연결감을 촉진한다.”
“인류가 소통하는 형식이 끊임없이 진화하는 와중에도
예술로 가치를 전달하는 이런 원초적인 기술은 살아남는다.”
마치며
우리는 종종 ‘내게 좋은 것들’보다 ‘해야 하는 것들’을 먼저 본다. 먹고 살기 벅찬 일상 속에서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장면, 매료되는 작품, 편안함을 느끼는 공간과 같은 감각적인 경험을 온전히 누리는 일은 쉽사리 우선순위에서 밀린다. 그러나 예술이 사치 따위가 아니라는 것을, 살며 힘들 때 반드시 돌아갈 비빌 언덕 같은 존재라는 것을, 경험해 본 이들은 안다.
책이 거듭 강조하듯, 예술적 경험은 내면을 성장시키고, 외부 세계와의 연결을 확장하는 고요하고 섬세한 통로다. 우리가 먹는 것이 우리 몸을 구성하듯, 매일 우리가 보고 듣고 만지는 미학적 감각의 경험은 우리의 사고방식과 세계를 구성한다. ‘나로 살아가는 일’은 ‘내가 어떤 아름다움에 감탄하며 살아가느냐’와 분리될 수 없다.
행복한 사람은 부지런히 삶의 아름다움을 모으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놀랍게도 이와 일맥상통하게 책은 마지막에서, 모두가 자기 삶의 큐레이터가 되어야 한다며, 자신의 미감이 반영된 환경을 조성하고 그 환경을 있는 힘껏 만끽하라고 조언한다.
이 책이 가장 큰 의미를 가지는 지점은, 우리가 왜 하루하루를 ‘내가 좋다고 감각하는 것’들로 채워야 하는지를 다시금 일깨워준다는 데 있다. 책을 읽고 잠시 소홀했던 삶의 아름다움을 좇아봐도 괜찮겠다고 생각했다.
“인간성의 정수는 진정한 자신에게, 그리고 우리 서로의 연결성에 눈뜨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