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을 붙음과 동시에 운이 좋게도 과외 의뢰가 들어왔다. 내가 선생님이라니! 줄곧 부르기만했던 선생님이라는 단어를 들을 수 있게 된다는 사실에 두근거렸다.
그렇게 처음 과외수업을 시작하던 날, 초보 선생님으로서 수업의 질에 대한 걱정으로 철저한 준비를 해갔더랬다. 염려와는 달리 준비도 진행도 꽤나 순조로웠고 재미있었다.
하지만 난처한 상황은 의외로 쉬는 시간에 생겼다.
열심히 진도를 나가고 잠깐 숨을 고르는 시간, 학생이 물었다.
“선생님 근데 공부는 왜 해야 해요?”
이 원초적인 질문은 학년도 성별도 가리지 않고 계속됐다. 순수한 의도로, 때론 회의적인 태도로 아이들이 내게 물었다.
학생의 나이가 어려질수록 더 근본적인 답을 꺼내야 하기에 나도 답하기 어려워진다. 고작 몇 년 조금 더 산 게 뭐라고 선생으로서 멋진 말을 해주고팠다. 그러면서도 혹여 나의 견해가 이 아이의 세계를 좁히게 될까 망설이며 스무살의 나는 입을 뗐다.
“음.. 공부라는 게 살아가면서 계속하는 거거든.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게 공부지. 그거에 대한 연습? 굳이 왜 또 시험 준비를 해야 한다고 하면 지금 정말 확실한 꿈이 없으니까, 우리가 하는 공부는 나중에 진짜 하고 싶은 공부가 생겼을 때를 위해서 준비하는거고.”
고민의 성과가 크게 보이지 않는 대답이었을까.
하지만 변함없는 사실이고 정답이라 생각했다. 어떤 것이든 알아가는 과정이 필요한 것이고 학생 시절 흔히 ‘공부’로서 여겨지는 불리는 학교 공부도 지식뿐만 아니라 무언가 열중해서 탐구하는 방법을 익히게 한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 생겼을 때 무언가 할 수 있다는 자기 효능감, 어디서 많이 중요하다고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지금의 나는 비로소 과거의 내가 했던 말의 의미를 정말 이해했다. 지금의 나는 진심으로 공부가 하고 싶다.
“나중에 진짜 하고 싶은 공부가 생겼을 때를 위해서 준비하는거고….”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만난 나는 여태까지의 경험에 의지해서 최선을 다하고 전진한다. 상투적이고 교과서적인 표현이지만 결국 교과서에 수록된 이유가 있는 법이었다. 공부라는 행위는 연습이 필요하고, 성취했던 경험으로 나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탄탄해진다. 공부가 발휘되는 곳도, 공부의 방식도, 공부의 종류도 사람마다 천차만별이지만 모두 그 과정을 거쳐야만 한다.
과정 속에서 차곡차곡 차오를수록 나의 안에 무수한 공간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 공실(空室)들이 내게 무궁무진한 가능성으로 다가온다.
채워야 할 것의 아득함이 아닌 채울 수 있는 미지의 공간에 기대가 생긴다.
과거의 내가 했던 1의 노력은 지금의 나에게 10의 혹은 그 이상의 경험치로 작용하고 있다. 오늘의 내가 한 1의 노력도 미래의 나에게 몇 배의 무언가가 되어 있으리라는 확신이 점차 생겨난다.
욕심이 생기기 시작했고 열심을 다하기로 마음을 다잡는다.
애써 웃으며 했던 답변이 이제는 단단한 미소와 함께 중심을 찾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