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모델이 누구냐는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못할 때가 많다. 얼버무리다 부모님이라고 대강 대답한다. (부모님을 정말 존경하지만, 내가 생각하는 롤모델의 의미와는 멀었다.)
롤모델이라고 하면 직업적으로 큰 성취를 이뤘거나, 혹은 완벽한 성인(聖人)의 모습을 한 인물을 택해야만 할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아직 확실한 꿈도 없고, 나의 가치관도 잡혀가는 중인데 어떤 한 사람을 보고 나의 이상을 모두 담는 것이 가능한가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나에 대한 고민과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머리가 복잡해지는 무렵, 내 알고리즘에 익숙한 캐릭터들이 보였다. <모피와 친구들>이었다.
모피와 친구들(Mofy and Friends)은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으로, 일본과 이탈리아의 합작 애니메이션이다. 원작은 리락쿠마로 유명한 일러스트레이터 콘도우 아키의 그림책 「うさぎのモフィ」(토끼 모피)라고 한다. 한국에서는 2013년부터 2017년까지 EBS에서 총 시즌 2까지 방송되었다.
케이블 채널이 나오지 않았던 우리 집에서 EBS 애니메이션은 나의 큰 행복이었다. 스마트폰이 생기며 애니메이션들을 향한 나의 열정은 다른 곳으로 옮겨갔지만, 기억 저편에는 여전히 나의 최애 TV 애니메이션들이 남아 있었다.
어린 내게 폭신한 모피와 친구들은 내가 저 세계로 들어가 보고 싶다는 상상을 하게 했다. 초등학교 4학년. 초등학교의 고참이 되어 갈 무렵이었지만 솜으로 만들어진 동물들과 보들보들한 배경, 통통 튀는 움직임에 홀려든 듯이 빠져들었다.
동심으로 돌아가 애니메이션을 즐겼던 어린 시절의 나를 다시 느낄 수 있겠다는 생각에 두근거리며 영상을 클릭했다. 그리고 동심으로 돌아간 내가 아닌 그저 23살의 내가 보면서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었다.
눈물의 이유는 슬픔이 아닌 무언가 모를 부끄러움과 대견함, 고마움, 미안함에서 나왔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바로 캐리 모양의 인형을 주문했다. 내 롤모델이 정해졌기 때문이다.
캐리는 주인공 토끼 모피의 개구리 친구이다. 똑똑하고 조언을 잘해주며 악기 연주에 탁월한 만큼 자신의 주관도 확실한 개구리였다. 여린 ‘모피’와 엉뚱한 ‘리’와 ‘스’는 어려운 일이 생길 때 캐리에게 항상 도움을 받으러 간다. 캐리는 노래를 불러주며 위로를 건네주고, 때론 따끔한 충고를 전해 준다.
여기서 캐리의 모습이 끝났으면 보통의 똑똑한 캐릭터라 생각하고 넘겼을지 모른다. 하지만 내가 제일 와닿은 캐리의 모습은 솔직함이다.
<개미의 교훈> 에피소드를 보면, 노래 대회에서 떨어진 자신을 위로해 주는 모피에게 너무 지친 마음에 심한 말을 한다. 개미들을 보며 포기하지 말라는 모피의 말에, 개미들이 옮기고 있는 음식을 던져 버리고는 “포기 안 한다고 다 잘되는 게 아니라는 걸 보여 주려고” / “쟤들도 실패가 뭔지 알아야 해!” 라고 이야기한다.
항상 의연한 모습이었던 캐리가 부리는 짜증은 누구나 낙담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말로써 위로를 건넸던 캐리마저 말을 뱉어 상처를 줄 수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금세 캐리는 후회하며 곧바로 모피가 참 착한 친구라며 자신이 나빴음을 솔직하게 이야기한다. 똑똑한 캐리는 자신의 체면을 중요시할 수도 있었고, 계속해서 자신의 말과 행동을 힘든 자신의 상황에 맞춰 합리화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잘못됐다는 걸 느낀 순간, 캐리는 먼저 사과하고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했다.
점점 커갈수록 부정적인 마음은 쉬워하고, 긍정적인 마음을 어려워한다. 부정적인 마음은 금세 불평불만으로 표현하지만, 고마움, 기쁨, 사랑과 같은 긍정적인 마음은 표현하기 어려워하는 나를 본다. 크면 더 조리 있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능력이 생길 줄 알았지만, 더 감추고 포장하는 실력만 늘고 있었다.
나를 향한 기준은 엄격하고, 하나의 말실수에 무너진다. 그러다 보니 숨기는 버릇이 늘어났다. 그러다 정신을 차리면 위선적인 나의 모습에 실망하며 자기비하를 하다가 자존감이 낮아지기도, 혹은 역으로 자기연민에 빠지는 악순환에 빠지기 십상이다.
캐리를 보면서 생각했다. 완벽해보이는 캐릭터에게도 때론 어린아이 같은 모습이 필요하고, 나도 끝없이 성장해야 하는 완벽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마주했다. 히스테릭하게 구는 것도, 그리고 사과하는 것도 모두 부정할 수 없는 나이다. 이런 나의 모습을 바로 인정하는 것이 잘못된 행동을 바로잡을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조건이었다. 감정을 솔직히 인정하고 다시 상대방에게 다가간다는 쉬운 것을 회피하고 싶었다. 너무나 당연한 것이지만, 무의식중에 나는 할 수 없다고 단정 짓고 피하고 있었다.
캐리를 통해 용기를 얻는다. 좀 커서 어색하다는 이유로 좋음을 표현하지 못하고, 그런 나를 다시 싫어하는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겠다는 희망이 생긴다. 모피와 친구들이 당연하게 여기는 즐거움과 미안함, 감사한 마음들을 정작 내가 무시하고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때론 가장 간단한 것이 가장 어렵다.
하루가 너무 지치고 세상이 팍팍하다고 느낄 때, 모피와 친구들을 보며 당연했던 따스함을 꺼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