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기는 드라마 정주행하기, 취미는 콘텐츠 서칭.
초등학생 때부터 꾸준히 미디어 중독자로 살아가며, 콘텐츠를 너무 사랑해 문화콘텐츠학과를 목표로 공부하고 결국 입학까지 하게 된 진성 콘텐츠 덕후, 나의 이야기이다. 이런 내게 콘텐츠 추천, 인생작 소개는 입을 근질거리게 하는 질문임이 틀림없다.
맞다. 그런 질문을 듣자마자 나는 눈에 생기가 돌고 입에 시동을 걸기 시작한다. 하지만 금세 급브레이크를 밟는다. 그건 나도 모르게 나의 인생작이 조금 부끄러운 탓일까.
모두 듣고 웃음을 터뜨리는 나의 인생작은 ‘꽃보다 남자’이다.
이 글은 일반적으로 작품성이 높이 평가되는 콘텐츠가 아니라 꽃보다 남자를 인생작품으로 택한 것에 대한 해명을 가장한 추천 글이다.
'꽃보다 남자'하면 대부분 뽀글머리의 구준표와 단발머리의 금잔디를 떠올릴 것이다. 물론 한국 꽃보다 남자를 포함하지만 원작 만화와 일본 드라마까지 즉, '꽃보다 남자' 그 자체가 나 인생작이라고 꼽을 수 있다. 꽃보다 남자는 OSMU(매체전환)가 정말 잘 된 작품으로 같은 스토리를 바탕으로 하지만 매체와 국가에 따라 조금씩 다른 캐릭터가 묘사되어있다는 점이 같은 듯 다른 모두를 사랑하게 만드는 포인트이다.
<만화 꽃보다 남자>
밟아도 밟아도 죽지 않는 잡초 소녀 츠쿠시! 꽃미남 도련님 그룹 F4에 도전장을 내밀다!
원작의 위대함은 역시 지워지지 않는다. 꽃보다 남자 신드롬의 시초인 원작 만화는 소개하는 세 작품 중 가장 작품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36권이라는 순정 만화치고 꽤 긴 분량을 가지고 있으며 완결까지의 모든 스토리가 짜임새 있게 진행된다. 단순 교훈 중심의 내용이 아닌 인물의 감정선을 다각도로 보여주는 에피소드들이 특징이다. 입체적인 인물들의 모습은 독자가 감정이입할 수 있는 여지를 제공한다. 특히, 기존 순정만화의 틀을 깨는 츠쿠시의 행동들과 주변 인물들의 에피소드는 흥미를 놓치지 않고 완결까지 달리게 만든다. 결말 또한 기존의 신데렐라 스토리와 다른 형태로, 이에 큰 의미를 가지는 작품이기도 하다. 만화책 속 도묘지(=구준표)와 츠쿠시(=금잔디)는 많은 에피소드를 통해 어른이 되어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아이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가 부모가 된 것마냥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다.
<일본드라마 꽃보다 남자 시즌 1>
가난한 여주인공과 명문 학교의 후계자 4인방의 청춘 러브 스토리.
배우들이 원작의 뽀글머리와 발차기하는 소녀가장을 완벽하게 소화했다. 맞는 이미지의 캐스팅이 드라마 성공에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군더더기 없이 캐릭터의 주요 에피소드 위주로 잘 정리한 작품으로 성공적인 실사화의 표본이라고 할 수 있다. 방대한 원작 분량과 24부작인 한국 드라마에 비해 11부작이라는 다소 짧은 드라마이지만 캐릭터의 매력을 충분히 살려냈다고 생각한다. 일본 드라마 입문작으로 많이 불리는 만큼 일본 드라마 특유의 과장됨이 만화적 표현과 만나 시너지를 일으킨 성공 케이스이다.
참고로 시즌2와 극장판, 외전 꽃보다 맑음은 열렬한 팬이 되었을 때 보아도 늦지 않다. 의리로 끝까지 본 나를 칭찬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한국드라마 꽃보다 남자>
사립고에 다니게 된 세탁소집 딸과 부잣집 도련님들의 사랑을 그린 드라마.
사실 내게 가장 의미있는 작품인 동시에 아쉬운 작품이다. 7살 때 언니를 따라 본 꽃보다 남자에 홀딱 반해 콘텐츠를 좋아하게 되었다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위의 두 작품에 비해 개연성이 떨어지고 일본 드라마에 비해 어색한 연기를 느낄 수 있다. 용두사미의 결말과 매력적인 에피소드들과 캐릭터들을 너무 짧은 분량으로 등장시킨 후 얼렁뚱땅 무마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하지만 회차가 지날수록 마치 그 캐릭터가 된 듯한 배우들에게 몰입할 수 있고 약간의 한국 정서가 가미된 꽃보다 남자는 유치하지만 한국의 그 시절 감성을 잘 살려냈다는 생각이 든다. 그 시절 윤지후를 응원했던 나에 대한 추억 보정 효과로 더 높이 평가되는 점도 무시 못할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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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들을 모두 볼 의향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한국드라마 – 원작 – 일본드라마 순서를 추천한다. 지극히 개인적인 추천이지만 원작을 먼저보면 한국 드라마가 유치해보일 수 있으며, 일본 드라마를 보고 원작을 보면 캐릭터에 배우의 이미지가 입히기에 위의 순서로 차근차근 감상하기를 추천한다.
여기서 잊지 말아야할 점도 있다. 현대적인 시각에서 본다면 비판적으로 봐야 할 점이 수두룩하다는 것. 여성 캐릭터가 대상화되는 부분이나 폭력과 범죄에 노출된 청소년 등 이런 장면들은 현실에 적용해서도 용납되어서도 안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작에 가까워질수록 오히려 시대를 앞서간 캐릭터성이나 입체적인 인물들이 다양한 인간군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을 개인적으로 크게 산다. 기존의 신데렐라 모티프를 가져가면서도 가냘픈 여주인공과 왕자님의 로맨스에서 벗어난 스토리의 변주가 매력적인 작품이다. 나의 무의식 속에 있던 다방면의 욕구를 채워주는 스토리와 인물들의 개성은 내가 떠올리지 않으려해도 떠오르게 만드는 이유이다.
무엇보다 언제 보아도 웃음이 나오게 만든다는 점은 ‘콘텐츠 볼 때 느끼는 행복’이라는 나의 인생작 기준에 딱 들어맞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 혹시 한국 꽃보다 남자를 보고 약간 실망한 경험이 있다면 만화 꽃보다 남자를 꼭 정독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