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해지나 싶었던 3월, 갑작스러운 눈이 왔다. 찬바람이 숭숭 들어오는 집 창문을 원망하며 하루빨리 따뜻한 날이 되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런 마음을 갖는 것은 나뿐만이 아닐 거란 생각을 한다.
쌀쌀한 날씨가 지칠 무렵, 지금이 여름의 매력을 어필하기 딱 좋은 시기이다.
누군가 내게 가장 좋은 계절이 무엇이라고 물으면 바로 여름이라는 대답을 한다. 나의 주변만 그런 건지 대다수는 이해하기 힘들다는 얼굴을 한다. 지구 온난화로 더 덥고 습해지지만 여름만이 가지고 있는 특색은 아직 여름을 즐길 수 있게한다.
뜨겁지만 그 속에서 느껴지는 나른함, 눈을 가득 채워주는 연두·초록·청록과 푸른 하늘, 온 몸을 울리며 열정 가득하게 우는 매미와 귀뚜라미 소리, 잠들지 못한 열대야에 회전하는 선풍기 소리, 땀을 흘리는 내 입 안에 가득 채워진 달콤한 수박과 복숭아.
모든 감각을 온전하게 느낄 수 있는 계절이다.
하지만 이렇게 여름을 위하는 글을 쓴 나도 처음부터 즐길 수 있게된 것은 아니였다. 친구들에게 여름광인(狂人)이라고 불릴 정도로 여름을 사랑하는 나지만 시작은 오히려 미움이였다.
대학교 2학년 때에 친언니와 함께 살았던 상수동의 집은 여름만 되면 주변 음식점들의 음식물 쓰레기 냄새로 뒤덮였다. 점점 더 습해지는 날씨에 옷이나 이불을 이틀만 바닥에 두어도 좀벌레들이 우글우글 모여있었다. 8월이 되도록 냄새와 땀과 벌레와의 사투는 끊이질 않았다. 여름에 대해서 크게 호이지도 불호이지도 않았던 내게 그 해 여름은 시작과 동시에 미움과 원망의 존재로 전락했다.
그렇게 여름이라는 계절을 미워하며 그 마음은 내 일상으로도 옮겨갔다. 전보다 부쩍 불평이 늘고 사소한 일에 휩쓸렸다. 그렇게 축 처진 하루를 보내고 열대야에 잠 못 이루던 밤에 창문으로 귀뚜라미 소리가 들렸다. 너무 잠이 안 와서일까. 평소 같았으면 시끄럽다 생각했을 터인데 그 소리에 귀기울여 보았다. 일정한 속도로 열심을 다하는 구애의 울음소리가 다른 풀벌레들과 화음을 이루듯 들려왔다. 그 소리를 듣고 있자니 꽤나 행복했다. 열심히 이야기하는 과정을 내가 엿들을 수 있다고 생각하니 지긋지긋했던 홍대의 경적 소리도 여름 밤의 수다처럼 들렸다.
한 번 매력을 느끼고 나니 그 다음의 모든 것이 사랑스러워 보였다. 여름에만 즐길 수 있는 것들이 눈에 먼저 들어오고 내가 싫어했던 점들은 수용됐다. 이렇게 아름다움을 느끼기 위해서는 대가가 필요한 법이라며 웃으며 넘겼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을 더 발견하기 위해 산으로 바다로 자연으로 떠났다. 떠난 곳에서 평생 기억에 남을 순간들을 누렸다. 그리고 여름은 추억까지 가득한 계절이 되었다. 어찌보면 여름을 좋아하게된 나를 발견하며 여름이라는 계절을 기다리게된 것일지도 모르겠다.
각자의 여름이 자신을 너무 괴롭힌다면 다시 오롯이 들여다보자. 사랑할 구석을 찾아서 푹 빠져보자.
뜨겁지만 오감이 살아나는 계절, 여름을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