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을 마지막으로 런던 방문학생 생활의 마침표를 찍게 되었다.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8개월이라는 시간은 나의 예상보다 더욱 빨리 지나갔고 현재는 한국에서의 새로운 생활에 다시 적응 중이다. 밤 10시가 되어서야 해가 지던 6월에 떠나 하루종일 잔디밭에 누워있던 8, 9월을 마음껏 즐기고 때로는 날씨 때문에 우울하던 겨울까지 경험하고 돌아왔다.
누군가 나에게 8개월의 시간 동안 배운 것이 있냐고 묻는다면 전보다 유창해진 영어실력 말고는 눈에 보이는 변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나의 마음가짐과 내면은 그전보다 더 다채로워졌다고 생각이 든다. 나와는 생김새나 살아온 배경환경이 다른 외국인들과 함께 살아가고 대화하며 기존에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나 고정관념이 더 다양한 경험들을 수용할 수 있게끔 바뀌었다. 특히나 나는 한국에서 타인의 눈치를 많이 보는 성격으로, 집단의 색채를 따라가기 바빴었다. 하지만 런던에서는 내가 어떤 옷을 입던, 어떤 생각을 하던 ‘나’ 자신의 고유함을 만드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깨달았다. 사회적 규범에 벗어나지 않는다면 그곳에서는 모든 것이 자유롭게 허용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새로운 스타일의 옷, 화장, 사고방식도 도전해 보고 바꿔나가며 나 자신에 집중할 수 있었던 시간이지 않았나 한다. 더불어, 젠더 갈등이 심해지는 한국 사회에서 관련 기사 혹은 해당 주제의 토론은 대학에서 잘 이루어지지 않는다. 가끔씩은 안타깝다는 생각도 들었다. 런던 대학에서 난 총 3개의 교양과목을 수강했고, 그 세 과목 전부 한 학기 동안 한 주씩 젠더이슈에 대해서 토론하는 시간을 가졌었다. 남녀평등이 잘 구축되어 있는 스웨덴에서 온 친구의 경험과 스웨덴의 정책들을 들으며 각국의 남녀평등의 실현을 위한 정책들을 공유하기도 했었다. 더 나아가 우리 조는 해당 주제를 중심으로 토론 시험도 준비했었는데, 준비하며 한국에서의 대학생활을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되었다.
전 세계에서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나누는 토론의 소재들을 왜 한국에서는 숨기고 감춰야만 하는가에 대한 생각이 멈추지 않았고, 해당 이유 역시 한국 사회는 남들과는 다른 의견 제시에 약하다는 걸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보통 우리가 그런 민감한 이슈들에 대해서 대화하기 꺼려하는 이유는 타인의 기분을 더 우선시 생각하고 내가 해당 집단과는 반대되는 의견이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이 더 큰 것 같다. 그렇기에 해당 주제들에 대한 깊이 있는 생각과 토론이 이루어지기 어렵다. 물론 모든 나라마다 고유한 정체성이 있는 것은 분명 하나, 언젠가는 한국 사회에서도 더 다채로운 주제들의 토론이 자유롭게 이루어지길 바라는 마음이다.
런던 방문학생을 준비하며 물질적, 시간적, 육체적인 도전들에 박차를 가했다. 유난히 걱정과 고민이 많았던 나에게는 준비과정이 힘들기도 했지만 살면서 다시는 없을 나 스스로의 도전 아니었을까? 외국에서 지내며 가장 중요했던 것은 건강한 정신이라고 생각했다. 같은 순간 같은 상황에서도 부정적으로 여긴다면 오히려 한국으로 돌아가는 게 더 나을 수도 있다. 난 매 순간마다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하루하루를 생산적으로 보내기 위해 노력했었다. 그렇기에 런던에서의 생활을 모든 순간 행복하게만 남아있다.
다소 불안정했던 나에게 새로운 도전과 건강한 마음가짐을 가질 수 있게 만들어준 영국이라는 나라는 알 수 없는 정이 간다. 시간이 조금 더 지나 다시 돌아갈 수 있는 날을 기다리며 런던 방문학생 기록을 마무리 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