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사랑을 기억하는 영화 - 메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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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영화 <메모리>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미셸 프랑코 감독의 영화 <메모리>는 ‘사랑’을 다루고 있는 영화이다. 잊지 못하는 여자와 기억하지 못하는 남자. 그들이 우연한 계기로 만나 과거를 치유하고 미래를 떠올리며 현재를 살아가는 따뜻한 이야기였다.
제시카 채스테인이 연기한 ‘실비아’는 과거의 상처를 잊지 못한 채 살아가는 인물이다.
영화의 초반부는 인물들의 행동을 보여주며 그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왔는지 조명한다. 애나와 함께 사는 실비아의 집은 갖가지의 잠금장치로 잠겨있다. 문을 열기 위해서는 여러 개의 잠금장치를 해제해야 하고 그것을 실비아가 하나하나 열어야지만 밖에 있는 사람이 집에 발을 들일 수 있는 구조였다.
이러한 잠금장치는 실비아가 처한, 그녀가 살아가는 현실을 드러낸다. 그녀는 알코올 중독자 모임을 다니고 남성을 무서워하며 고교 동창 파티에서 만난 동창들과 쉬이 어울리지 못한다.
이러한 이유는 그녀가 겪었던 과거로부터 비롯된다. 실비아는 과거의 기억을 잊지 못하기 때문에 마음의 벽을 쌓아둘 수밖에 없었고 그것이 실비아의 행동으로 표출되었다.
동창들과 어울리지 못했던 고교 동창 파티에서 실비아는 우연한 계기로 사울을 만난다. 사울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실바아를 쫓아와 그녀의 집 앞에서 밤을 새운다. 실비아는 불안한 마음으로 창틀에 서서 사울을 바라보고 다음 날이 되어서야 그가 기억을 잃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실비아와 사울의 첫 만남 이후, 실비아는 사울이 자신의 과거에 있었음을 확신한다. 그들은 그렇게 두 번째 만남을 갖게 된다. 사람이 별로 없는 공터에서 실비아는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사울에게, 당신이 나를 성폭행했다고 말한다.
이때 실비아와 사울은 거리를 둔 채 앉아 있다. 영화가 전개되며 그들이 한 장면에 담기는 씬이 많아지는데 초반부의 실비아와 사울은 약간의 거리를 둔 채 자신의 트라우마, 기억, 현재 상황…… 등을 서로에게 이야기했다.
사울은 자신의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실비아의 말에 입을 다물고 실비아는 그런 사울을 보며 자신의 과거를 떠올린다. 실비아의 과거는 그녀에게 있어 크나큰 트라우마였다.
이렇게 끝날 것 같았던 그들의 만남은 사울이 실비아를 성폭행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수면 위로 떠오른 뒤 다시 이어지게 된다. 실비아가 사울에게 사과하기 위한, 세 번째 만남이었다.
자신의 태도를 사과하는 실비아에게 사울은 이것을 기록해 두어도 되냐 묻는다. 과거가 아닌 현재를 기록하는 일. 과거만 보고 살아온 실비아에게 이러한 사울의 행동이 무언의 움직임을 불러일으켰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후 그들은 만남을 이어가며 거리가 점점 가까워진다.
사울이 실비아의 직장으로 찾아왔던 장면에서는, 거리를 두고 앉았던 공터에서와 다르게 그들은 서로를 마주 보며 키스한다.
실비아는 사울을 통해 현재를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사울은 실비아를 통해 과거를 기억하는 법을 배운다. 이들의 만남은 서로가 서로를 치유하는 만남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이어가고자 하는 인연이 쉽게 이루어지진 않았다. 그들을 둘러싸고 있는 주변 인물들이 그들의 과거와 현재를 막고 있는 인물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울의 동생과 실비아의 엄마가 그렇다.
사울의 동생은 사울을 보호하고자 하지만 그 방법이 사울을 위한 것은 아니다. 그는 사울을 현실에서부터 멀어지게 하려 애쓴다. 집에 가만히 있도록 두고 주방에 가지 못하게 하고 실비아와의 만남을 하지 못하도록 한다.
실비아의 엄마는 실비아를 보호하지 못했던 인물이며 그녀가 겪었던 과거를 부정하는 인물이다. 실비아의 엄마는 실비아가 어렸을 적 아빠로부터 성폭행을 당했다는 사실을 믿지 않는다. 실비아가 거짓말을 하고 있고 그것이 실비아의 문제점이라고 말하는 인물이다.
이 두 인물은 사울과 실비아의 현재를 단단한 벽으로 막고 있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그들이 쌓아둔 단단한 벽을 넘으려는 순간, 그들은 다시금 사울과 실비아의 곁으로 찾아와 삶을 지속하지 못하도록 훼방을 둔다.
이때 딸 애나가 그 벽을 뚫을 수 있도록 돕는다.
영화의 결말부에서 그들은 애나의 도움을 통해 다시 만나게 되는데 지금까지 실비아의 곁에서 실비아의 삶을 이해하려 노력하고 묵묵히 돕는 애나의 역할이 인상 깊었다.
애나는 사울 이전에 실비아의 곁에 있었던 그녀가 고이 간직한 사랑일 지도 모른다.
이 영화는 사울과 실비아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애나와 실비아의 사랑 이야기이기도 하다. 마음 따뜻한 사랑은 사울과 실비아에게만 국한되어 있지 않고 딸과 엄마의 이야기로 확장되어 이어진다.
영화를 보며 이 영화에서 담아내고자 한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수 있었다. 인물들의 행동과 그들의 선택, 결정이 하나하나 인상 깊었던 영화였다.
[김예은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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