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미션'이라는 단어는 공연 분야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어다. 연극 속 인물의 서사에 단단히 몰입했다가도, 잠시 일상으로 돌아와 다음 챕터를 흡수할 준비를 하는 것이 관람객이 인터미션을 마주하는 가장 흔한 방식이다.
이 인터미션을 전시에 적용해 보면 어떨까. 단편극을 한데 모아, 단편소설집처럼 한데 엮어두었다면? 우리가 잠시 여행을 떠날 이 단편극의 배경이 머나먼 옛날이라면?
DDP에서는 이처럼 새로운 시나리오를 구현한 미디어아트 전시 '구름이 걷히니 달이 비치고 바람부니 별이 빛난다' 전시가 열리고 있다. 간송미술관의 국보급 소장품들을 생생한 인터랙티브 미디어아트를 통해 만나볼 수 있다.
이번 전시는 대형 스크린으로 미디어아트 특유의 웅장한 영상미를 그대로 살려내면서도, 미디어아트만이 구현할 수 있는 장면들을 골똘히 고민했다.
그 시작이 1관의 훈민정음 해례본이다. 의심의 여지 없이 간송의 혜안을 상징하는 국보로, 둥그런 벽으로 둘러싸인 공간의 정가운데서 관람객을 맞이한다. 앞으로 전시장 안에서 펼쳐질 이야기의 모든 근본이 되는 한글이 훈민정음으로부터 쏟아져내려와 펼쳐지고, 이윽고 다시 빨려 들어간다.
언뜻 통로처럼 보이는 공간 역시 전시장이다. 겸재 정선의 여정이 담긴 '해악전신첩'이 계절에 따라 모습을 달리하고 있어, 정선을 따라 걷듯 금강산을 곁에 둔 채 공간을 느껴볼 수 있다.
해악전신첩 너머로는 혜원 신윤복의 '혜원전신첩'을 훔쳐볼 수 있는데, 마치 남몰래 이야기를 엿듣는 어린아이가 된 듯하다. 기획자에 따르면 옛 사람들이 담장 너머의 장면을 엿보듯, 관람객도 유사한 시선을 경험할 수 있도록 공간을 연출해 두었다.
앞전의 공간들이 몰입감과 역동성으로 미디어아트의 장점을 부각했다면, 원작에서는 볼 수 없는 장면들을 연출한 전시관도 있다.
겸재 정선의 '금강내산'을 연출한 6관은 금강산에 생생히 그려진 당대의 풍경을 바탕으로, 산의 웅장한 모습을 실사로 구현했다. 산의 꼭대기에서부터 헬기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오듯, 상상에만 머무르던 금강산의 웅장한 정취를 실제로 눈앞에 내보인 점이 인상적으로 다가온다.
이번 전시가 여타 미디어아트 작품과 가장 대비되는 지점은 '감각'에 있다.
전시관에는 서로 다른 향이 놓여 있다. '해악전신첩'에는 마른 풀로 가득한 숲의 향이 흐르고, 추사 김정희의 수묵화에는 먹의 녹진한 향이 배어있다. 전체적인 궤를 짠 건 간송이지만, 각각의 전시장에는 다양한 조향사들이 참여해 서로 다른 향기를 머금도록 만들었다.
그리고 그 향이 그리고자 한 영상들이 눈앞을 채우는데, 서로 간에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 받는다. 거침 없는 붓놀림이 코끝을 현란하게 놀리고, 물 안에 잠긴 채 관람객을 지켜주는 듯한 불상의 기운을 느낄 수 있는 (계미명금동삼존불입상) 것은 그 때문이다.
전통 미술은 언뜻 현란하고 역동적인 미디어아트와 거리가 먼 듯 보인다. 전시는 고전 작품만이 가진 깊이와 해학이 미디어아트를 만났을 때 줄 수 있는 방대한 울림으로 이 편견을 누른다. 이 글을 보고 전시장을 방문할 여러분 역시, 전시장의 인터미션에서 생생하게 작품의 매력을 느껴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