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공간의 변주 ①: 오페라 극장에서 EDM 즐기기

공간의 격식과 경계를 넘나드는 예술
글 입력 2024.11.22 14: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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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오페라 극장 트렌드 = 클럽 음악(?)


 

오페라 극장 무대가 패션쇼 런웨이로 바뀌고, 각종 오페라의 의상을 입은 모델들이 마이클 잭슨의 ‘Beat It’, 레이디 가가의 ‘Poker Face’, 신디 로퍼의 ‘Girls Just Want to Have Fun’에 맞춰 춤춘다. <카르멘> 2막의 ‘Couplets du Toréador’가 흘러나오다가 한순간에 AC/DC의 ‘Back In Black’로 분위기가 반전된다. 극장 앞 광장에서는 발레 무용수 여섯 명과 스트리트댄서 여섯 명이 디제이의 음악에 맞춰 치열한 ‘댄스 배틀’을 펼친다. 발 디딜 틈 없이 무대 주위를 가득 메운 수백 명의 관중과 뜨거운 호응은 아이돌 콘서트장을 방불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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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리히 오페라 하우스 24/25 시즌 오프닝 행사 중 'Costume Show'.

지난 12년간 제작한 작품 중 일부의 의상을 활용해 유쾌한 쇼를 선보였다.

©최민서 컬쳐리스트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 시즌 오프닝 파티_댄스배틀.jpg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 24/25 시즌 오프닝 행사 중 'Dancer's Challenge'.

극장 앞 광장을 무대로 발레 무용수들과 스트리트댄서들이 댄스 배틀을 벌이고 있다.

©최민서 컬쳐리스트

 

 

지난 9월 14일,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의 24/25 시즌 오프닝 데이 행사는 이처럼 이질적인 장르를 조화롭게 넘나들며 신선한 경험을 선사했다. 종일 남녀노소 모두를 위한 수많은 공연과 워크숍, 체험 프로그램이 무료로 진행되었는데, 정통 오페라와 발레, 클래식 음악뿐 아니라 대중문화적 요소를 가미해 입문자들에게 친근하게 다가가고자 한 기획이 돋보였다.

 

이처럼 최근 전 세계 유수의 오페라 극장 중 상당수가 파격적인 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특히 디제이와 함께하는 클럽 파티를 여는 경우가 많다. 앞서 살펴본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의 경우 작년부터 화려하고 독창적인 의상을 입은 참가자들이 밤새 춤을 추는 ‘Overdress!’ 코스튬 파티를 개최하고 있으며, 올해는 이 행사에 무려 1,600여 명의 사람들이 운집했다. 또한 베를린의 도이치 오퍼는 올해로 세 번째 ‘플레이그라운드 페스티벌’을 열었는데, 이 역시 공연장을 테크노 클럽으로 변신시킨 파티였다. 클래식-어쿠스틱 악기와 전자음악, 오페라와 클럽 문화, 무도회 드레스와 레이브(Rave, 주로 전자음악을 중심으로 한 대규모 파티나 이벤트) 의상이 어우러지는 특별한 밤이 펼쳐졌다.

 

한편 호주를 상징하는 랜드마크인 시드니 오페라 하우스의 스튜디오는 평소에 카바레, 강연, 어린이 공연 등이 열리는 공간이지만, 매년 5~6월 '비비드 라이브(Vivid LIVE)' 축제 기간 동안에는 역동적인 클럽으로 탈바꿈된다. 스튜디오에는 서브우퍼와 연기 기계가 설치되며 시드니의 유명 디제이와 아티스트들이 공연을 선보인다. 전통적인 공연 공간을 현대적인 클럽 문화와 결합하여 관객에게 감각적인 경험을 제공하는 것이다.

 

 

취리히 오페라 하우스의 'Overdress!' 스케치 영상

©Opernhaus Zürich

 


베를린 도이치 오퍼의 'Playground Festival' 스케치 영상

©Deutsche Oper Berlin


 

 

장소의 파격: 이색 공간에서 펼쳐지는 문화예술



오페라 극장에서 클럽 문화를 즐기는 것처럼, 오늘날에는 기존에 전혀 연관성 없어 보이는 공간과 문화가 만나 독특한 경험을 만드는 사례가 많다. 일례로 런던 자연사 박물관(National History Museum)에서는 무선 헤드폰을 착용하고 디제이 세 명의 음악 채널 중 하나를 택해 춤을 즐기는 ‘사일런트 디스코(Silent Disco)’ 파티를 지속적으로 개최하고 있다. 참가자들은 박물관 중심에 전시된 25미터 길이의 고래 골격 아래에서 춤추는 잊지 못할 경험을 하게 된다. 또한 영국 캔터베리, 길퍼드, 맨체스터 등의 여러 대성당에서도 사일런트 디스코 행사를 개최하고 있으며, 이들은 전통적인 종교 공간에서 펑크 록 음악을 즐길 수 있는 파격적인 시도로 주목받는다.

 


London Natural History Museum_Silent Disco.jpg

런던 자연사 박물관에서 열리는 'Silent Disco' 행사

©Natural History Museum



한편 유동 인구가 많은 교통 중심지를 문화공간으로 재탄생시킨 사례도 많다. 예컨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는 1957년부터 새로운 지하철 역이 건설될 때마다 예술가들이 참여해 플랫폼, 벽, 대기실 등 다양한 공간에 예술 작품을 설치하여 ‘세계에서 가장 긴 예술 전시 공간’으로 자리매김했다. 또한 홍콩의 도시철도(MTR) 역시 1998년부터 ‘Art in MTR’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 예술가 혹은 국제 예술가와 협력한 다채로운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이는 공간의 혁신적인 활용 가능성을 보여주는 동시에 시민들의 일상적인 통근 시간을 예술 작품 감상의 기회로 전환시킨다는 의의가 있다.


 

Visit Stockholm_Stadion subway station.png

스톡홀름 'Stadion' 지하철 역 내 예술 작품

©Åke Pallarp/Bildupphovsrätt 및 ©Enno Hallek/Bildupphovsrätt

 
홍콩의 도시철도에 적용된 예술적 요소와 'Art in MTR' 관련 영상
©South China Morning Post
 
 
 

탈경계화된 공간과 재맥락화된 예술



이러한 사례들에서 나타나듯, 과거에는 대개 어떠한 공간이 특정 용도로만 사용되었다면, 오늘날에는 하나의 공간이 상황에 따라 다르게, 혹은 동시에 여러 용도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공간의 탈경계화’가 일어난 셈이다.

 

대표적으로 물건 판매를 목적으로 하는 백화점이나 쇼핑몰이 각종 예술 작품 전시와 소규모 공연, 체험존, 축제 등의 공간으로 쓰여 고객에게 쇼핑 이상의 경험을 제공하는 경우는 흔히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삼성동 스타필드 코엑스몰의 중심부에는 수많은 책과 독서 공간을 갖춘 ‘별마당도서관’이 개방된 형태로 자리잡고 있으며, 이곳에서 강연과 콘서트, 패션쇼 등 문화 행사도 이뤄져 복합문화공간으로서의 기능을 한다. 카페가 취식과 대화의 장소뿐 아니라 코워킹(co-working) 공간을 겸하거나 전시를 병행하는 것도 자연스럽다. 또한 교량 하부에 방치되었던 공간을 지역 주민들을 위한 예술 전시나 운동 공간으로 변모시켜 도시의 미관과 주민들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도 한다.

 

 

스타필드 코엑스몰 별마당도서관 (STARFIELD).jpg

코엑스몰 중앙에 위치한 '별마당도서관'의 전경.

쇼핑몰과 문화공간이 공존하는 대표적 사례다.

©Starfield

 

 

현대 사회는 이렇게 공간의 경계가 사라졌을 뿐 아니라 모든 학문과 산업, 국가와 문화 간 경계가 허물어지는 ‘탈경계화’ 시대라 할 수 있다. 문화예술 역시 이러한 시대 흐름에 따라 본래의 틀을 벗어나 적극적으로 기발한 시도를 하고 있으며, 이는 문화예술의 ‘재맥락화’와 서로 다른 문화의 융합으로 이어진다. 특히 공간의 탈경계화에 기반해 예술이 재맥락화되는 경우, 예술 작품은 원래의 장소나 용도와 전혀 다른 공간에 배치됨으로써 기존의 맥락이 해체되고 확장된 의미를 부여받는다. 오페라 극장과 EDM 음악의 조합이 새로운 맥락을 통해 관객들에게 더욱 특별한 경험을 선물하는 것처럼 말이다.

 

 

 

익숙한 장소, 낯선 경험



문화적 탈경계화는 단지 트렌드가 아니라 문화의 재발견, 그리고 새로운 세대와의 소통을 위한 중요한 흐름이다. 격식과 비격식,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이색적인 공간과 예술은 그것을 향유하는 이들에게 창의적인 시각과 경험을 선사한다.

 

익숙한 장소에서의 비일상적인 경험은 개인의 고정관념을 깨는 기회를 제공하면서, 이전에 전혀 관심을 두지 않았던 장소와 장르에도 매력을 느끼게끔 한다. 마케팅 측면에서는 전통적인 공간 활용 방식에서 탈피해 참신한 행사를 기획함으로써 새로운 문화 향유층을 개발할 수 있으며, 이는 특히 젊은 세대를 효과적으로 유입시킬 수 있다. 젊은 세대에게는 이러한 시도가 하나의 트렌드로서 ‘힙한’ 문화 소비 방식으로 여겨지고, SNS의 영향으로 ‘핫플’과 유행이 빠르게 확산되기 때문이다.

 

오늘날 문화와 예술은 특정 장소에 국한되지 않고, 우리 주변의 모든 공간에서 새롭게 재창조되고 있다. 평소에는 무심코 지나쳤던 장소에 숨겨진 예술적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곳에서 색다른 즐거움을 찾아보며 자신의 문화적 취향과 인식을 확장해 보는 것은 어떨까? 그 경험이 평범한 일상에 귀한 영감을 가져다 줄지도 모른다.

 

 

*대표 사진은 베를린 도이치 오퍼의 2023년 플레이그라운드 페스티벌 현장.

©Caren Pauli

 

 

 

아트인사이트 컬쳐리스트_최민서.jpg

 

 

[최민서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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