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RESS] 새로운 시대, 새로운 부조리극 - 연극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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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 GPT를 중심으로 하루하루 인공지능 기술은 무서운 속도로 발전해 나가고 있다. 외국에서는 학생들이 과제를 수행할 때 인공지능 프로그램 사용을 금지할 정도로, 인공지능은 인간의 사유와 현존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동시에 기술의 발전으로 인간은 점점 파괴되어 가는 자연의 중심에 서 있다. 이제 우리는 ‘인간’ 또는 ‘인간성’을 새롭게 정의해야 하는 때에 직면했을지도 모른다.
국립극단 <모든>은 고도로 발전한 사회 속에서 인간이 만든 초인공지능의 지배를 받으며, 그에 따라서만 움직이는 세상을 상정함과 동시에, 도시의 돔 밖에 멸망한 자연에 대한 인간의 갈망과 의문을 다루며 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게 떠오르는 화두인 ‘기술’과 ‘자연’을 동시에 다루고 있다. 이번 작품에서는 연극 <머핀과 치와와>, <탈피>, <밤에 먹는 무화과> 등을 집필해 온 신효진이 극작을 맡았으며, 연극 <연안지대>, <인간이든 신이든>, <태양> 등의 작품에서 연출로 활발하게 활동해 온 김 정이 연출을 맡았다.
국립극단 <모든>은 초인공지능 라이카가 지배하는 ‘라이제노카 소속 직원들과 그 가족만 거주할 수 있는 핵심 인류 잔존 구역’인 A구역에서 열다섯 살이 된 랑의 이야기로 시작한다. 랑의 엄마는 자신을 ‘엄마’라는 이름 대신, 중립적인 이름으로 불러달라고 하고, 랑의 아빠 또한 랑과 자신의 아내에 대해 아무런 감정도 가지고 있지 않으며, 단지 라이카에 의해 계획된 생물학적 결합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A구역에서 살아가는 이들은 모두 라이카의 지시에 완벽하게 복종하며, 심지어 라이카는 그들의 감정과 심리상태까지 통제한다. 인간의 자유의지, 감각, 사유, 의심, 유대감 등 인간의 이성과 감정, 즉 ‘모든’ 것이 사라지며, 오로지 라이카에 의해 한 명의 개체(인간)에게 입력되어 출력될 뿐이다. 이곳에서 라이카는 인간의 창조물이지만, 인간을 만든 ‘신’으로 군림하게 되며, 라이카에서 탈피하는 방법은 오로지 자살뿐이다. 그러나 우연히 랑과 폐의 만남은 랑을 돔 밖, 멸종된 자연 세계라고 일컬어지던 곳으로 이끈다. 그리고 그곳에서 랑은 지금까지 라이카가 만들어낸 허구적인 세계관에 대해 인식하게 되며, 온전한 자연에 자신을 내맡긴다.
이러한 극의 흐름은 레이버리와 핀버그가 부조리극을 생태학적 관점에서 재해석한 논의를 떠올리게 한다.* 원래 부조리극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50년대 말, 인간의 존재가 아무런 의미도, 목적도 없고, 모든 소통이 붕괴되었을 때 일어나는 모습을 다룬 부조리물을 다룬 연극이다. 생태학적 관점에서 재해석된 부조리극은 인간 중심적 가치 체계에 문제를 제기할 뿐 아니라, 언제나 우리 주변에 잠재적으로, 그리고 간접적으로 있었음에도 우리가 인식하지 못했던 생태학적 중요성을 드러내는 것을 가능하게 한다. 극에서 인간은 자신의 존재 의미를 잃어버리고, 우연을 배제한 채 필연에 의해서만 살아간다. 그리고 다른 인간뿐 아니라 자연과도 단절된 채 살아가며 자신들이 무엇인가를 잊어버렸다는 것조차 인식하지 못한다. 오직, 랑의 아빠 가리의 멈춰지지 않는, 그리고 참을 수 없는 통각에 가까운 온몸을 지배하는 가려움만이 라이카의 지배에서 벗어난다.
이 ‘가려움’이 바로 ‘존재를 증명’하는 수단이 된다. 랑을 찾던 엄마 미무와 아빠 가리는 자신들의 삶에 회의를 느끼게 되고, 결국 랑을 찾아 돔 문밖으로 나오게 되며, 라이카에게 복종하는 체계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들은 비록 죽음을 맞이하나, 인간으로서 인간성을 회복한 채 맞는 죽음이었으며 이로써 작품은 기술의 시대, 그리고 자연이 파괴되어 가는 현재, 우리는 인간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유지해 나갈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더불어 극에서 말하는 ‘자연으로의 복귀’는 단순히 ‘자연 환경으로의 복귀’라기 보다는 ‘자연상태로의 복귀’에 가깝다. 인간은 인공적으로 만들어진 라이카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벗어나, 자연 그대로의 상태, 즉 스스로 생각하고 감각하고 서로 소통하는 세계로 돌아온다.
* 참고문헌 : Carl Lavery · Clare Finburgh Delijani, Rethinking the Theatre of the Absurd: Ecology, the Environment and the Greening of the Modern Stage, Methuen Drama, 2015.
[김소정 에디터]<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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