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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나의 겨울과 나의 실패

실패는 계절이 가는 것과 같이 자연스럽다.

by 이승윤 에디터
2024.10.22 23:28

 

 

나는 가을이 좋다. 선명한 하늘과 선선한 바람은 나를 좁은 위병 초소 밖으로 이끌었다. 차들이 바람을 날카롭게 가르던 44번 국도에, 부드러운 체인 소리가 들렸다. 저들은 아마 서너 시간 뒤에 미시령 고개를 넘어 속초에 다다를 것이다. 오로지 그들만의 힘만으로 도착할 테니, 자유로움도 만끽하면서 말이다.


일곱 살, 두발 자전거를 배우던 날이 생각난다. 아버지가 계속 손을 놓아버려서, 짜증이 목 끝에서 넘치려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페달을 힘껏 밀었고, 시원한 바람이 내 땀을 차갑게 식히기 시작했다. 나는 자연스레 하늘을 올려다봤다.


오늘도 하늘이 파랗다. 그날과 같다. 저 높은 하늘이 저 위까지 보일 정도로 선명하다. 여기서 나가기만 하면, 가을엔 자전거나 실컷 타겠다고 다짐했다. 상병도 달지 못했던 나였지만, 난 그렇게 미래 계획을 짰다.


막상 복학을 하니, 가을엔 시간이 없었다. 여름엔 코로나에 걸려 비실거렸으니, 장거리 여행이 가능한 시기는 겨울밖에 없었다. 겨울은 두려운 계절이었다. 입대 전이었던 2019년 12월, 나는 이미 한 번 겨울 자전거 국토종주를 다녀온 적이 있었다. 여행 첫째 날, 해는 너무 빨리 졌고, 나는 무덤가에서 길을 잃었다. 자전거 길에는 가로등이 당연히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산 속 지방도에선 ‘빛’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나는 거의 패닉 상태로 숙소로 달렸다. 체력도 부족해서 목표했던 인천까지는 가보지도 못하고 서울에서 멈췄다.


다시 간다고 한들, 완주에 성공할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시간이 지금밖에 없는 걸 어쩌나. 여름을 기다린다고 겨울방학을 날려버릴 수는 없었다. 2024년 1월, 나는 다시 부산으로 향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할 수는 없었다. 나는 철저히 일출, 일몰 시간에 맞춰 움직였다. 출발 전날 미리 부산에 도착해 자전거를 점검하고, 국토종주 과정을 담을 액션 카메라와 보조배터리를 충전했다. 철저한 준비 후 출발한 첫째 날, 나는 길을 잃고 10km를 헤맸다. 부산 낙동강 하굿둑 인증센터에서 출발해, 약 80km 정도 달렸을 때였다. 결국 숙소가 있는 남지읍에는 해가 다 지고 나서야 도착했다.

 

둘째 날도 순탄치 않았다. 추운 날씨에 액션 카메라가 자꾸만 꺼졌다. 국토종주를 영상으로 다 담겠다는 나의 포부가 자꾸만 쪼그라들었다. 결국 카메라를 핫팩으로 녹여가며 영상을 촬영했다. 역풍도 강했다. 갑자기 부는 강한 바람에 자전거에서 넘어졌고, 지도 어플은 공사 중인 산길로 나를 안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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셋째 날에는 한밤중까지 자전거를 타게 됐다. “조금 더 가야한다.”라는 불안함이 내 머릿속을 지배했다. 넷째 날, 나는 똑같이 해가 진 후에도 페달을 굴렸지만, 결국 눈길에 미끄려져 넘어지고 말았다. 이미 발 끝이 시려오고, 페달을 굴리면 무릎도 아팠다. 내일 해가 뜬다고 해도, 눈길에 자전거 라이딩은 무리다. “포기할 때가 됐다. 그만하자.” 나는 자연스럽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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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틀 뒤 저녁 8시 45분, 나는 목표했던 ‘인천 아라서해갑문 인증센터’에 도착했다. 6일간 623km를 달린 결과였다. 돌이켜보니, 실패의 연속이었다. 그러나, 아주 작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첫째 날, 길을 잃고 10km를 헤맸지만, 그날 달린 나머지 98km에 비하면 짦은 거리였다. 둘째 날, 비포장 산길을 올라야 했지만, 이날 달린 평지 포장도로 85km에 비하면 찰나일 뿐이었다. 넷째 날, 눈길에 포기를 생각했지만, 다섯째 날엔 따듯한 날씨가 눈을 녹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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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발 전날 밤, 부산에 사는 친구는 내게 야경을 보여줬다. “예전에 비해 체력이 떨어져서 끝까지 못 갈 거 같아...” 앞으로의 걱정에 야경을 제대로 즐기지 못하는 나에게, 친구가 말했다. “이 야경 봤으니까, 부산 잘 온 거야. 국토종주 실패해도 잘 온 거야.” 다섯째 날, 나는 다시 친구의 말을 떠올렸다. 나는 무리하지 않고 경기도 여주시에서 페달을 멈췄고, 이른 저녁 잠자리에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 날, 나는 여행 중 가장 많은 거리 141km를 달려 인천에 도착했다. 어제의 이른 포기가 오늘의 나에게 순풍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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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할 수 있는 실패들이었을까?” 나는 내게 질문을 던졌다. 길을 잃어버리는 것도, 역풍과 눈길에 넘어지는 것도. 장거리 여행 중엔 당연히 발생할 수 있는 변수들이다. 넷째 날, 나의 조급함이 나를 눈길로 떠밀었지만, 그날 넘어지지 않았다면 나는 다음날 똑같이 무리했을 것이다. “그럼 결국 더 늦게 인천에 도착했겠지. 자연스러웠고, 또 필요한 실패였다.” 나는 내 마음 속으로 답을 정했다.


나는 이제 조용하고 차가운 겨울이 두렵지 않았다. 아무 말 없이 나를 기다려주는 고요한 계절일 뿐이다. 영화 ‘사랑의 블랙홀(1993)’에서 주인공 필은 겨울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체호프는 긴 겨울을 두고, 희망이라고는 없는 황량함과 어두움을 말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겨울은 삶의 순환 속 일부일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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