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view] 밤의 낮을 비추는 그림들 - 물랑루즈의 화가, 툴루즈 로트렉 [전시]

글 입력 2024.10.14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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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누아르 - 물랭 드 라 갈래트의 무도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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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네 - 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따스한 빛이 내리쬐는 가운데 한데 모여 춤을 추는 사람들, 어딘가 공허한 표정의 술집 여인과 그 너머 벽면을 가득 채우며 서로에게 인사 나누는 사람들.


두 그림의 공통점은 사교모임을 사랑하는 파리 사람들의 흥겨운 모임의 장, ‘콩세르’를 소재로 그려졌다는 점이다(폴리 베르제르의 술집, 물랭 드 라 갈레트). 콩세르는 파리의 활기찬 문화를 상징하는 카페를 넘어, 음식과 술을 곁들이며 라이브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바를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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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리 몽마르트에 위치한 물랑 루즈 전경.

 

 

콩세르의 꽃은 강렬한 붉은색 매력의 댄스 공연장, 물랑루즈다. 파리 시내에서 가장 높은 언덕이자 예술가들의 성지로 손꼽히는 몽마르트 언덕 아래 위치해 있으며 수많은 사람들이 주저없이 공연을 즐길 수 있도록 문을 활짝 열어놓았다.


툴루즈 로트렉의 작품은 바로 이 물랑루즈 그 자체다. 그림의 소재로써 물랑루즈를 애정했고, 그 안을 노니는 사람들을 사랑했으며, 그 안의 관계와 질서마저 온전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였다.

 

 

 

밤의 낮, 물랑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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캉캉춤을 추는 여인들. 사진 출처 : 영화 물랑루즈 스틸컷

 

 

모든 일과가 끝난 뒤 어둠이 내려앉은 밤, 물랑루즈 안은 화려함을 좇는 사람들의 기운으로 가득 찬다. 주름이 잔뜩 잡힌 치마를 손으로 잡아 올려 캉캉춤을 추는 무용수가 자리에 활력을 더한다.

 

로트렉은 마치 그들과 함께 춤을 추고 있는 듯 과감한 구도와 굴곡진 선으로 장면을 표현해냈다. 때로는 멜로디에 따라 두껍게, 때로는 몸선을 따라 춤추듯 흘러내리는 선은 유려한 몸짓을 그림으로 그대로 옮겨놓은 느낌을 준다.


그는 단순히 물랑루즈 안의 장면들을 소재로 채택하는 것을 넘어 그 안의 사람들까지 세심하게 조명했다. 특이한 사실은 귀족 집안의 일원이었던 로트렉의 경우 얼마든지 시선을 내리깔 수 있는 위치에 있었지만, 그의 작품을 보면 그가 같은 선상의 일부로써 물랑루즈의 사람들을 바라봤다는 점이 물씬 느껴진다는 점이다.


로트렉이 이처럼 물랑루즈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게 된 배경에는 물랑루즈의 장소성이 크게 한몫했다. 사교와 춤이라는 교집합으로 파리의 귀족과 서민, 부르주아와 노동자에게 차별 없이 공간을 내어주었으며, 음악과 춤으로 이들을 동시에 매료시켰다.

 

다른 카페와 콩세르가 상위층, 혹은 예술가로 그 영역을 넓혀 모객을 이어왔다면 물랑루즈는 모든 계층을 포괄했다는 점에 큰 의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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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 침대에 누워 있는 여인의 옆모습 - 새벽, 엘르 연작. 사진 직접 촬영

 

 

물랑루즈가 강한 색을 뿜었던 19세기 후반은 프랑스 사회에 양극화가 심해졌던 시기다. 만국박람회를 개최하고 국가를 상징하는 에펠탑까지 완공되며 일명 ‘아름다운 시대(벨 에포크)’에 접어들었으나, 도시가 화려함을 갖출수록 가난한 이들은 저편으로 내몰렸다.


로트렉은 전시에서도 ‘휴머니즘’이라는 표현과 함께 강조하고 있는 인간사 뒤안길을 그림에 꾸준히 녹여냈다. 특히 <엘르(여성들)> 연작에는 그가 종종 사창가에서 지내며 마주했던 매추부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이 녹아있다. 무대 위에서의 사람들을 명료하고 유려한 선과 색채로 그려낸 반면, 부드럽고 포근한 선 질감으로 그림을 그려냈다는 점에서 따스한 시선과 섬세함이 녹아있다.


밤 문화를 그린 화가는 수없이 많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밤 문화를 바라보는 시선의 높이가 달랐다. 앞서 서두에 언급한 르누아르의 그림은 귀족들의 우아한 몸짓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며, 마네의 그림은 술집 여인을 측은한 시선으로 관찰했을 뿐, 로트렉과 동일한 시선을 가지고 대상을 바라봤다고 보기 어렵다.


비록 로트렉이 귀족 문화를 충분히 향유하지 못하게 제약을 둔 신체적 환경이 있었지만, 근본적으로 그가 이러한 작품들을 그려낼 수 있었던 배경에는 호기심과 열린 태도가 자리했다. 신체가 온전치 못했다는 배경에 집중하는 대신 로트렉이 물랑루즈에 빠지게 된 심적인 동인을 살펴보게 되는 이유다.

 

 

 

파리의 낮과 밤,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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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리 드 툴루즈 로트렉 - 제인 아브릴. 사진 직접 촬영

 

 

로트렉의 작품은 거리의 자유로움을 상징하는 물랑루즈의 특징까지 고스란히 흡수했다. 거리를 오가는 수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고,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포스터’를 작품의 주요 수단으로 채택한 것이다.


로트렉이 포스터 예술의 부흥을 이끌었다는 사실은 그를 저명한 예술가로 이끈 데에 새로움을 대하는 호기심이 혁혁한 공을 세웠다는 주장을 뒷받침한다. 고급예술보다는 길거리의 산물에 가까운 포스터엔 그가 몸담은 거리에 대한 로트렉의 애정 어린 관심이 녹아있다.


로트렉의 포스터 예술에 특별함을 부여한 ‘자포니즘’ 역시 로트렉의 호기심에서 비롯됐다. 명암과 사실성에 주목했던 유럽 미술과 달리 평면성을 강조하고 때로는 인물을 잘라 마치 만화처럼 연출한 일본의 작품들은 호기심을 유발하기 충분했을 테다.

 

로트렉은 이러한 신문물을 그대로 작품 속에 적용해 인물을 과감히 자르고 조명하는 ‘크로핑’ 기법을 그만의 시그니처로 활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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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걸린 포스터 예술가들의 작품들. 사진 직접 촬영

 

 

전시는 제4부 공간에 로트렉과 함께 포스터 예술을 이끈 쥘 세레, 알폰스 무하 등 다양한 예술가의 작품을 비치해 시선을 전체로 확장했다. 모두 고급 미술과 저급 미술의 경계를 허물고, 상업적인 포스터에 예술성을 더해 세간의 관심을 거리로 끌어당긴 공신들이다.


포스터 예술의 부흥은 계층의 장벽 없이 다채롭게 문화예술을 향유한 로트렉의 삶을 연상시킨다. 거리에 내걸린 물랑루즈 포스터처럼, 배경지식과 관계없이 더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뒤돌아보게 만드는 작품들이 그 수를 꾸준히 더해가고 있다. 밤이 낮이 되고, 낮이 밤이 되듯이.

 

 

[김서현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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