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음악만으로도 공포를 느낄 수 있을까?’
여기 한국인 고유의 정서, 한(恨)을 음악적으로 풀어내는 독보적인 아티스트가 있다. 작곡, 작사, 프로듀싱까지 전부 가능한 싱어송라이터 안예은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납량곡전, 그녀는 매년 여름 우리에게 청각적인 스릴을 선사할 다양한 싱글을 발매하며 호러 송 프로젝트를 이어오고 있다.
그럼, 본격적인 싱글 앨범 소개로 넘어가기에 앞서 우선 한(恨)의 정서가 무엇인지에 관해 짚어보고자 한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의 정의에 따르면, 한은 '욕구나 의지의 좌절과 그에 따르는 삶의 파국 등과 그에 처한 편집적이고 강박적인 마음의 자세와 상처가 의식 · 무의식적으로 얽힌 복합체'를 의미하는 민간용어이다. 한국인이라면 익히 알고 들어보았을 한의 정서는, 여전히 명확하게 개념적인 정의를 내리기엔 모호함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그럼에도 한 가지 매우 확실한 사실은, 한 또는 원한에는 분명한 '맺고 푸는 대립의 공존'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한은 맺힘과 맺음의 두 가지 계기를 전제로 발생한다. 전자인 맺힘은 타인이나 사회제도, 환경 등의 외부 요인에 의해 일방적으로 개인의 욕구나 의지가 좌절되면서 삶이 파국으로 치닫는 상황을 의미한다. 이어서 후자인 맺음은 스스로가 상처와 아픔, 그리고 그로 인한 후회의 감정을 만들며 비롯된 자상을 뜻한다. 물론 앞선 전제가 생성되었다고 모두가 원한이란 응어리에 얽매이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 여기서 비롯된 슬픔, 후회, 분함, 원통함 등의 부정적인 감정을 치유하거나 망각하지 못한다면, 저주나 앙갚음에 편집적인 강박을 보이는 행태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발생한 원한은, 그래도 맺힘과 맺음의 생성 이면에 풀림과 풂이라는 해소가 대척점으로 존재한다는 점에서 사태를 해결할 수 있는 일말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때, 자발적인 의지로 맺힌 자가 스스로 원한을 해소하는 풂은 3가지 양상을 띄는데, 그 중 첫 번째가 원한을 일으킨 자에게 직접적으로 앙갚음하는 ‘복수’이다. 이때, 두 번째와 세 번째 양상은 꽤 독특하다고 볼 수 있는데, 듣기에도 생소한 ‘원한의 흰 빛 전이(轉移)’와 ‘원한의 검은 빛 전이’이 바로 그것이다. 언뜻 용어에서 추측이 되겠지만, 원한의 흰 빛 전이는 한을 좋은 방향으로 전이하는 경우로 자신과 같은 원한을 지닌 자의 감정을 풀어주거나 곧 소유하게 될 자의 편에서 사전에 그를 막아 주는 것을 의미한다. 반대로, 원한의 검은 빛 전이는 자신의 한과 상처를 불특정한 대상에게 오직 전가하는 데에만 집착할 뿐이며 말 그대로 무차별적인 공격을 가하기에 매우 부정적인 측면이 강하다.
한국 고유의 정서로 분류되는 한은 각종 문화∙예술 매체에서 빈번하게 주요 소재로 다뤄지곤 한다. 그렇다면, 서론을 통해 한의 개념과 생성 및 해소 과정을 자세히 알아봤으니, 이를 토대로 ‘귀로 듣는 전설의 고향’ 안예은의 호러 송 프로젝트 4곡을 찬찬히 살펴보도록 하자.
능소화 (2020.08.06.)
해가 일천 번을 고꾸라지고
달이 일천 번을 떠오르는데
오신다던 님은 기별이 없다 죽어서도 원망하리
2020년 8월, 납량곡전의 시작을 알린 이 곡의 제목은 ‘능소화.’ 싱글 앨범 ‘능소화’는 임금의 성은을 입은 여인이 하염없이 임금만을 기다리다 죽어 꽃이 되었다는 설화에서 착안해 쓴 곡이다.
이이이 히이 이이이이 내 사랑이로다
이이이 히이 이이이이 내 사랑이여
나를 잊으셨습니까 평안하십니까 / 나를 지우셨습니까 강녕하십니까
어찌 그리하시오
히이이 히이이 이이이이 서럽구나
잡초만 무성한 무덤이여 / 가엾이 날리는 잿가루여
히이이 히이 이이이이 원통하오
비탄에/혈루에 잠겨 죽으리
해당 곡은 매우 기괴하고 음산한 스트링 사운드가 멜로디의 주를 이루는데, 특히 후렴구에서는 판소리 ‘사랑가’의 일부 구절을 변형하여 사랑하는 이를 향한 화자의 집착과 배신으로 인한 증오를 더욱 고조시켰다. 능소화의 대표적인 꽃말이 기다림, 그리움, 사랑인만큼 뮤직비디오에서도 오랜 세월 사무치는 외로움에 시달리던 여인의 원통함이 구슬프게 울려 퍼진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다. 이에 해당 곡은 단순히 공포만을 자아내기보단, 한 발 더 나아가 가엾고 측은한 여인을 향한 연민의 마음까지 한 데 불러일으다고 생각한다.
창귀 (2021.08.01.)
나는 올해로 스물하나가 된 청년인데
범을 잡는다 거드럭대다가
목숨을 잃었소만
이대로는 달상하여 황천을 건널 수 없어
옳다구나 당신이 나를 도와주시게
호러 송 장르 개척자 안예은의 두 번째 프로젝트 싱글은 ‘창귀’로 호랑이에게 해를 입어 죽은 귀신인 창귀를 모티브로 만든 곡이다. 조선 시대 귀신 설화에 따르면, 창귀가 성불하기 위해서는 오직 자신의 자리를 대신할 새로운 희생양을 끌어들이는 방법밖에 없기에 호랑이의 수발을 들며 산 속에서 길을 잃은 자들을 홀려왔다고 한다. 이에 예로부터 범에 물려 죽은 자가 있는 이들과는 주변 이들이 거리를 두고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다고도 하는데, 아마도 창귀에 관한 설화로부터 구전되어 온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교교하다 휘영청 만월이로세 얼쑤
수군대는 영산에 호랑이님
행차하옵신다
얼씨구 좋다 어절씨구 좋다 그래
어디 한 번 어깨춤을 덩실 더덩실
하찮은 네 놈 재주를 보자꾸나
이곳이 너의 무덤이로다
...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혼령이 되어 또 왔네
눈을 뜨면 사라직 곡두여 이 밤
산군의 길 위에서
너를 데려가겠노라
이 곡의 특히 독특한 이유는 곡을 전개하는 화자가 바로 창귀라는 점이 아닐까 싶다. 흔히 공포의 원인이 되는 초자연적 존재들은 어디까지나 주로 객체의 위치에서 이야기의 주체에 의해 보여지는 바를 서술되는 정도에 그치곤 하는데, 안예은은 설화 속 존재인 ‘창귀’를 다각도로 해석하려는 시도를 보여주었기에 매우 차별적이라고 생각했다. 창귀의 시점에서 청자인 당신마저 홀려버리는 이 곡, 정신을 차려보면 헤어나오기에 너무 늦어버렸다는 것을 뒤늦게 알아차릴 만큼 깊이 있는 몰입감과 흡입력을 자랑하기에 꼭 한 번 들어 보길 매우 추천하는 바이다.
쥐 (RATvolution) (2022.07.20.)
사람의 손톱을 주워먹고 사는
서생원을 아시오
쥐도 아니고 사람도 아닌 것이
묘한 모습이외다
‘능소화’와 ‘창귀’에 뒤이은 세 번째 호러 송은 ‘쥐 (RATvolution)’로, ‘밤에 손톱을 깎으면 쥐가 주워 먹고 사람이 된다’는 둔갑쥐설화에 영감을 받아 만들어진 곡이다. 해당 곡은 부제인 ‘RATvolution’이 매우 인상적인데, 쥐떼가 인간의 손톱을 갉아먹고는 그들의 자리를 넘보며 차지하려는 움직임을 마치 하나의 거대한 혁명에 빗대어 언어유희로 표현한 것이 취향을 저격했기 때문이었다.
쥐 떼가 몰려간다
아니 저건 사람떼가 아닌가
...
얼쑤 역시 어리석구나
얼쑤 거참 아둔하구나
...
쥐떼가 몰려간다
지천을 전부 뒤집으로 간다
잔치를 엎으러 간다
극락의 기둥을 죄 갉아먹으리
세 번째 호러 송 ‘쥐 (RATvolution)’는 앞선 ‘능소화’나 ‘창귀’에 비교하면 훨씬 높고 경쾌한 멜로디가 무게감을 덜어내는 듯해 보인다. 그러나 실상은 뮤직비디오에서도 사람과 쥐의 중간 형태의 분장을 한 이들이 무리를 지어 등장하는 모습이나 가사가 마치 쥐들이 인간을 비웃으며 농락하는 듯한 오싹함을 표현하고 있어, 어찌 보면 불쾌한 골짜기처럼 앞선 곡들보다도 거부감을 자아낼만한 요소가 더 강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즉, 멜로디적으로는 가벼워졌을지도 모르겠으나 실제 곡의 내용만큼은 여전히 납량곡전에 부합하는 기괴함을 갖추고 있다는 의미이다.
홍련 (2023.08.05.)
사랑하는 우리 언니 장화야
온 몸이 젖은 친구들과 있었네
참 반갑구나 원한으로
핏발 서린 눈동자들
그리고 뭍으로 올라오는 두 발
현재까지 발매된 납량곡전의 마지막 곡인 ‘홍련’은 원한이 가장 강하다고 알려진 물귀신, 그리고 이와 동일시되는 처녀귀신을 주제로 쓰여진 곡이다. 이에 그녀는 한국에서 매우 유명한 ‘장화홍련전(薔花紅蓮傳)’의 주인공인 장화와 홍련, 그리고 물 밑바닥에 가라앉아 한을 키워온 모든 물귀신들의 복수극을 그려냈다.
나 억울하오 너무 분하오
이대로 저승에 얌전히 가는 건
말도 안 되지
오라를 받고 죄 갚으시오
작자∙연대 미상의 고전소설 '장화홍련전'은 전 부인의 자식인 장화·홍련 자매와 계모 허씨 사이의 갈등이 주가 된 작품이다. 장화는 계모 허씨의 계략으로, 그녀의 첫째 아들인 장쇠의 손에 죽임을 당한다. 이후 홍련 역시 꿈에 나타난 장화로부터 모든 사실을 알게 되고는, 언니가 죽은 못에 뛰어들어 투신 자살을 하고 만다. 이후 새롭게 부임한 부사 정동우가 해당 사건을 재조사할 때, 자매의 아비와 계모는 또 다시 장화가 낙태로 투신했으며 홍련은 행실이 부정해 가출했다는 거짓 사실을 둘러대어 장화와 홍련 자매의 원한이 더욱 깊어지도록 만들었다. 그러니 곡에서도 반복적으로 억울함에 더해 두 눈에 핏발이 서릴 만큼 짙은 분노가 서려 있음을 말하며 반드시 죄를 갚아야 할 것임을 강조하는 구절들이 나타난 것이라고 볼 수 있겠다.
이후 부사는 또 다시 꿈에 나타난 장화와 홍련을 통해 결정적인 증거를 얻어 음모를 밝혀내고, 계모 허씨는 능지처참에, 그리고 장쇠는 교수형에 처하도록 했다. 또한, 그는 못에서 자매의 시신을 건져 안장하고 비석을 세워 혼령을 위로하는데, 자매는 이에 대한 사례로 부사가 승직해 통제사에 이르도록 도왔다고 한다. 그러니 이야기의 결말을 봤을 때, 위의 가사와 마찬가지로 결국 권선징악을 이루어 냈다는 것을 확인해볼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특히, 앞서 자신들의 목적과 이익을 위해 무고한 희생양을 만들어내는 ‘창귀’나 ‘쥐 (RATvolution)’와는 달리, ‘홍련’은 잘못이나 죄 없이 당하기만 해야 했던 피해자들의 정서를 표출하고 그 억울함을 피력하는 전개이기에 관점의 전환이 일어났다는 것을 눈 여겨 보아야 할 것이다.
삼족을 멸하리라 (내 손으로)
나 원통하오 참 한스럽소
그대가 이승에 멀쩡히 남는 건
말도 안 되지
두 손을 모아 엎드려 비시오
어느 날 해가 서쪽에서 비칠 때까지
영원토록
...
너의 모가지를 든 채
광장을 돌며 춤을 추리라
아! 소리 내어 마음껏 웃게
지옥의 불을 크게 지펴 타오르세
축제로다!
이때, 장화홍련전과 달리 안예은의 ‘홍련’이 지닌 의의는 복수의 주체가 된 자매의 능동성이라고 생각한다. 원작 소설에서는 이미 죽어 혼령만 남아버린 자매는 오로지 꿈을 매개로 주요 인물들에게 자신들의 입장을 전하는 조력자의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었다. 분명 유일한 피해자들은 본인들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그러나 안예은의 ‘홍련’에서는 자신들의 손으로 한을 맺히게 만든 이들을 찾아 삼족을 멸하거나 해가 서쪽에서 뜰지 모를 그 언제까지, 즉 평생토록 그녀들을 향해 용서를 구하며 빌도록 만들겠다는 집착이 엿보인다. 심지어는 그 끝에서 원수의 잘린 목을 들고 광장에서 춤을 추며 축제를 즐기겠다는 발언까지 하는 것을 보면, 그들이 키워온 복수심이 얼마나 크고 무거운지, 그리하여 현재 유일하게 고대하는 것이 이 묵은 감정을 터뜨릴 순간을 마주하는 것뿐임이 느껴져 언뜻 뒷목이 시린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대체불가 뮤지션 안예은, 그녀가 보여줄 한국의 정서는 과연 어디까지 일까?
![[크기변환]1. 안예은 프로필 사진.jpe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405/20240531231926_tpzpztnv.jpeg)
이처럼 안예은은 독보적인 스토리텔링 실력으로 오직 그녀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장르를 개척해 나가는 창의적인 아티스트이다. 여태 그녀가 보여준 한국적인 곡들의 향연이 이를 뒷받침하기에, 앞으로 그녀에게 얼마나 다양한 스펙트럼을 기대할 수 있을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2024년 올해 여름, 과연 그녀는 어떤 공포스러운 음악으로 새롭게 우리를 찾아올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