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2016년에서 2024년까지 - 김윤아 5집 '관능소설' [음악]

김윤아 5집 발매 이후에
글 입력 2024.05.27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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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등학생 때 나는 스마트폰이 없었다. 그 말은 생활의 필수품인 음악을 검색이 아니라 다운을 받는 형식으로만 접할 수 있었다는 의미이다. 먼저 찾아 나서지 않으면 어떠한 좋은 노래도 나에게로 오지 못하였다. 나는 야자(야간자율학습)를 마치고 집에 들어가면 불법 다운로드 사이트에서 이리저리 새로운 음악을 찾아 들었다. 그런 방황을 멈춰준 것은 김광석과 자우림이었다. 이들을 접한 다음 나는 밤중의 끝을 알 수 없는 탐색 대신 그들의 앨범 탐색을 시작했다. 지금은 김광석과 자우림의 음악을 그때만큼 열심히 듣지 않지만 나는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나의 모든 음악 취향은 그들에게 빚졌다.


김광석의 음악이 삶에 대한 위로였다면, 나는 자우림을 통해 록과 펑크를, 김윤아를 통해 하지 못한 말들을 기억하는 법을 배웠다. 내가 지금까지 좋아하는 모든 음악은, 내가 아는 모든 음악은 그들에게 근거한다. 지금은 김윤아의 개인 앨범보다는 자우림의 앨범을 즐겨듣지만, 고등학생 때의 나는 김윤아의 개인 앨범을 더 선호했다. 시작은 수학여행에서 들었던 ‘봄날은 간다’와 피아노 악곡 집으로 먼저 발견했던 ‘야상곡’이었다. 그 노래를 접하기 전 나는 자우림을 통해 김윤아를 이해했다. 그러나 개인 앨범에서 만난 김윤아는 내가 더 만나고 싶던 모습을 보여줬다. 그 노래의 화자들은 상처받았고, 밴드이기에 뒷받침되는 베이스와 기타, 드럼 대신 보컬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처절한 모습이었다.


 

 

김윤아 4집 - 꿈도 다 지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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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아가 밴드 활동 외에 개인 앨범 활동을 한다는 것 역시 알게 되었을 때 김윤아의 4집 <타인의 고통>이 발표됐다. CD 재생기도 없었던 당시지만, 나는 일단 앨범부터 구매했다. <타인의 고통>의 모든 수록곡은 고등학생 내내 나에게 필요한 말을 해주는 이야기가 되었다. 가장 먼저 귀에 들어왔던 것은 일곱 번째 수록곡이었던 <꿈>이었다. 꿈의 가사는 다음과 같다.

 

때로 너의 꿈은

가장 무거운 짐이 되지

괴로워도

벗어 둘 수 없는 굴레

(…)

때로 너의 꿈은

가장 무서운 거울이라

초라한 널 건조하게 비추지

(…)

간절하게 원한다면 모두

이뤄질 거라 말하지 마

마치 나의 꿈은 꿈이 아닌 것처럼

 

<꿈>의 가사는 당시의 내가 하던 고민을 가장 적확한 말들로 정리해 주었다고 생각되었다. 바람이 있다는 것은 무서운 일이었다. 지켜야 할 것이 생겼기 때문이다. 동시에 그 바람을 끌어안고 사는 것은 두려운 일이다. 그것이 바람직한지, 사회로부터 용인될 수 있는 것인지는 나의 의지와 상관이 없기 때문이다. 꿈은 이루어진다는 말이 만연한 세상이지만 우리는 이미 알고 있지 않나. 모든 꿈이 이루어지는 것으로 그 효용을 다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또한 간절함의 크기로 꿈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내가 바라는 것은 세상의 용인을 거스르는 것일 수도 있고, 영영 이루어지지 않는 것일 수 있으며 나를 나아지게 만들기는커녕 비참하게 만들 수 있다. 그 모든 것을 인정하고 나서도 포기할 수 없는 무언가를 대신해서 꿈이라고 부른다. 그렇기에 꿈이라는 말은 이상적이고 아름답기보다는 현실적이며 비루하다. 꿈을 둘러싼 온갖 아름다운 말들에 피곤함을 느꼈던 나에게 김윤아의 <꿈>은 내가 생각해 온 것을 부정하지 않아 위안이 되었던 노래였다.


꿈은 강렬하게 좋았고, 좋았던 순간보다 더 오랜 시간 듣지 못하는 노래가 되었다. 그 어떤 좋은 위안도 고통을 직면하게 하는 종류의 것은, 시시해지거나 그 무거움을 견딜 수 없어지거나 둘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꿈의 시간이 지난 뒤 남은 시간은 4집의 마지막 수록곡 <다 지나간다>가 메워주었다. 이 노래는 여전히 가끔은 재생하는 노래다.

 

다 지나간다

다 잊혀진다

상처는 아물어 언젠가는 꽃으로 피어난다

 

시간이 약이라고. 다 지나간다고. 우리는 오래된 격언을 의심하지 않지만 의심하지 않음이 고통의 시간을 무마시켜 주진 못한다. 나는 집에 가는 길이면 <다 지나간다>를 최대한 볼륨을 높여 들으며 집으로 갔다. 다 지나갈 거라고 믿고 싶었던 일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윤아는 지나감만 말하지 않는다. 내가 잊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내가 겪었던 일로 인한 상흔이 꽃으로 피어난다고 말한다. 과거는 오늘의 나를 구성하는 토대가 되고, 나는 토대가 된 과거마저 잊는다. 그 말보다 더 위로될 수 있는 것이 또 있을까.

 

 

 

김윤아 5집 - 마지막 장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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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아 혹은 자우림을 비하하고 싶은 누군가는 그들의 노래를 사춘기 소녀의 주체할 수 없는 감정으로 비유한다. 나는 이 말에 온전히 반박할 수 없음을 생각한다. 실제로 지금의 나는 고등학생 때의 나보다 김윤아 혹은 자우림의 노래를 필요로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에 나를 살게 했던 음악들이었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때문이다.그 말을 들은 나는 오히려 질문하고 싶다. 그래서? 그 누구도 제대로 잡아주지 않는 시기를 굳건히 지켜주는 음악이라는 의미가 어떻게 비하가 될 수 있으며, 당신이 그때의 혼란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로운 인간이 되었다고 정말로 당차게 말할 수 있는지 물어보고 싶다. 김윤아의 4집 앨범이 나의 고등학생 시기 초입을 지켜주었다면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버린 이제의 5집은 지난 시간을 실감하게 한다.


김윤아의 5집 앨범 제목은 <관능소설>로, 사랑의 탄생부터 절정, 위기, 소멸에 이르는 '사랑의 일생'을 파노라마처럼 담아냈다. 김윤아가 그려냈던 꿈이 아름답지만은 못했던 것처럼 김윤아가 그려낸 사랑 역시 아름다운 모습만은 아니다. 그것은 이미 우리가 알고 있는 모습이지 않은가. 이번 더블 타이틀곡 중 하나인 ‘장미빛 인생’에는 이런 가사가 나온다. ‘마지막이 없다면 그 무엇이 아름다우리’ 인간은 유한함을 살아낸다. 끝이 없다면, 유한함이 없다면 그 무엇이 아름다울 수 있고 애틋할 수 있겠는가. 그렇기에 또 다른 타이틀곡이 ‘종언’이라는 사실은 의미심장해진다.


화사하던 꽃들도 계절을 따라서 사라지네요

다 하지 못했던 사랑이 다만 애처로워 울어요

스러져가는 마음 나도 어쩔 수 없어

그토록 아리던 나를 모두 잊었네

사랑했던 나날은 빛바래져 가고

이제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겁니다.


사랑 이야기를 담았다는 <관능소설>은 사랑이 사그라져 가는 마지막 순간에 주목한다. 종언이 마치는 말이라면, 말조차 허용되지 않는 <마지막 장면>은 전체 앨범의 마지막 수록곡이 된다. 마지막 장면에서 두 사람은 냉정히 입맞춤도 없이 돌아서 가는데, 냉정함과 대비되게도 혼자는 여전히 외롭다. 사랑을 생각할 때 흔히 상상되는 풋풋한 시작의 순간이 아니라 마지막의 순간을 되돌아보는 이번 앨범은 그렇기에 사랑을 재정의하는 힘을 가진다. 여기에서 사랑은 꼭 사람과 사람의 사랑만을 의미하진 않을 것이다. 이렇게 나는 4집의 꿈이 다 지나가는 것을 거쳐 5집의 마지막 장면에 다다른다. 이제 나는 김윤아와 자우림의 노래가 아니더라도 위안을 삼을 여러 방편을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나는 이번 김윤아의 5집 앨범을 보며 지난 4집에 열중했던 시기에 대한 알 수 없는 위로를 받아 안았다.


 

[진세민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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