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우리가 잊고 있던 무언가에 대한 이야기 - 23회 송은미술대상전 [미술/전시]

신진 작가들의 시선을 통해 보는 이야기
글 입력 2024.03.05 0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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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인상 깊게 관람했던 송은미술대상전.

 

2001년부터 매년 운영해온 미술상인데, 지난해 20주년을 맞아 이번에는 20인의 작가가 참여했다. 전시 기간 중 심사가 진행되고 단 1인만이 대상에 선정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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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층계참엔 뜻밖에도 방석 위에 헤드셋이 놓여있다. '헤드셋을 끼고 앉으라는 건가?'자연스럽게 드는 생각대로 해보면 위쪽 벽면에 상영되고 있는 비디오를 어렵지 않게 찾아낼 수 있다. 정서희 작가의 라는 제목의 뉴미디어 작업물이다.


모든 생명체의 공통 조상인 '루카’를 매개로 작품은 태초의 과거인지 미래인지 모를 지구의 이미지들을 보여주는데, 마치 VR기계를 쓴 듯 생생한 무빙 속에서 관람객은 아포칼립스 상태의 지구를 접하고 당연하게 여기던 세상의 모습을 상실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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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층으로 진입하면 가장 먼저 마주하게 되는 남진우 작가의 대형 회화물이다.

 

동화책을 펼친 듯한 오색찬란한 색감이 눈을 사로잡는데, 캔버스 꼭지점에 빼꼼히 고개를 내밀고 있는 귀여운 캐릭터에 눈이 간다. 작품 설명을 읽어보니 애석하게도 악당으로 표현되는 위장에 능한 대왕오징어라고 한다.


중앙에 배치되어 날개를 접고 비정한 현실에 낙심한 듯 보이는 '선'의 인물은 오히려 구석에서도 단번에 눈에 띄는 '악'의 대왕오징어보다도 존재감이 미비하다.

 

어떻게 보면 뻔한 주제인 선과 악의 대립이지만 눈앞에서 벌어지는 연극을 보는 듯한 작가 특유의 표현법이 참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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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나무 조각들 사이를 걸어본다.

 

문이삭 작가의 속이 빈 통나무 오브제들로 연출된 설치 작품인데 어딘가 깎이고 빛바랜 듯한, 나와 키가 비슷한 나무 조각들 옆을 지나치며 어쩐지 쌀쌀한 겨울 바람을 맞은 듯 기분이 가라앉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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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본 작품의 계절감이 겨울이라면 박형진 작가의 해당 작품은 여지없이 생동하는 봄의 기운을 담고 있다.

 

언뜻 보아서는 온통 녹색 색체만 가득한 추상미술 같은 이 작품은 작가가 봄부터 일정한 주기로 호두나무를 관찰한 후 의도적으로 구체적 형태를 소거 후 색체만을 남긴 것인데, 작품의 캔버스 빈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일정한 간격으로 날짜가 기록되어 있다.


함께 걸려있는 작가의 관찰일지를 들여다보는 것도 이 작품의 별미다. 날짜별로 호두나무에게 일어나는 변화를 작가는 놓치지 않고 기록했고, 그에게 이 호두나무는 단 한순간도 같은 모습이었던 적이 없다.

 

일지를 읽고 작품을 유심히 들여다보면 조금씩 다른 색체들의 질서정연한 조합이 조금은 다르게 다가올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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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지의 우주 너머 에일리언을 그린 듯한 이 작품은 새로운 '여성상'을 제시하고 있다.

 

창조의 신으로서 절대적인 영향력을 가졌던 마고할미, 그녀가 가졌던 힘을 상징화한 저 기괴한 인물은 단연 '여성'이다. 사회에서 규정된 여성의 이미지와 동떨어진듯한 이 형상은 눈이 아플만큼 강렬한 색채로 존재감을 과시하며 '나는 아직 건재하다'고 외치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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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면에 감춰진 것', '잊혀진 것', 그 어떤 것보다 희미한 존재감을 가진 것들이 전시장의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생명을 잃은 듯 힘없이 밧줄에 뒤엉키어 바닥에 놓인 도자 새들, 그 끝에 부서진 흙더미들을 울컥울컥 쏟아내고 있는 듯한 단단히 묶인 형상까지.


이은영 작가는 이 작품을 통해 어떤 잊혀진 존재들에 대해 말하고 싶었을까? 문득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 학교 앞 정문에 로드킬을 당한 청설모를 둘러싸고 옹기종기 모였던 아이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는 길 위에 죽어있는 작은 생명들을 익숙하게 그저 피해 지나갈 뿐인 나를 포함한 행인들의 모습을 새삼 되새김질 해본다.


커튼 사이 그려진 문양의 접힌 부분을 펼쳐보고, 작품의 뒤로 돌아가서도 관람해보고, 미미한 존재감을 가진 그 무엇들 앞에 잠시 서서 잊고 있던 존재들에 대한 심심한 묵념을 해봄으로써 조금은 애도의 마음을 가져보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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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나무 위에 자라난 비식용 버섯, 인간의 필요로 고안된 스마트팜의 현주소.

 

어항을 연상케 하는 유리 상자 안에 매달린 나무 위에 자리잡은 버섯들은 도무지 살아있는것처럼 보이지가 않다. 껍대기만 생물의 모습을 한 채 정말 '전시'되어 있는듯한 모습이 조금은 생경하면서 무서울 정도였달까.


사슴 뿔을 박제한 것 처럼 전시장 벽면에 걸려있는 나뭇 가지들도 생물(이었던) 모습이었는데 동물을 박제해 걸어놓은 걸 보듯 꺼림칙했다. 작품을 보면서 그러고 보면그동안 무심하게 지나친 거리의 가로수들도 어쩌면 이런 모습이었을까.

 

그것이 과연 공존이 맞을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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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장에서 가장 다양한 장르와 재료를 활용한 작품이 아니었나 싶었던 신제현 작가의 <물의 소리>.

 

우드판 위에 인스타그램 릴스를 그대로 옮겨놓은 듯 움직이는 디스플레이, 그 옆의 빔프로젝터로 상영되고 있는 영상, 천장으로 시선을 옮겨보면 낡은 배와 철갑 고래의 행잉 오브제까지 다채로운 이 모든 요소들은 말 그대로 인간이 떠난 섬의 '물의 소리'을 들려준다.


무인도가 되어가는 섬에서 가져온 폐품에서 취한 목재들로 이루어진 오브재들은 쓸쓸한 섬의 풍경을 단편적으로나마 보여주는 듯 하다.

 

또 폐품을 활용해 탄생한 악기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운 선율이 아이러니하게도 다가올 미래 디스토피아 속 환경을 상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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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다온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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